좋은 말씀/한경직목사

크리스마스의 별 (마태복은 2장 1-12절)

새벽지기1 2017. 3. 20. 07:42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뇨

우리가 동방에서 그의 별을 보고 그에게 경배하러 왔노라』(마2:2)

예수께서 탄생하시던 해에 이상한 별이 하늘에 뜬 사실을 설명하기 위하여 여러 가지로 노력하는 사람도 없지 않아 있습니다. 그러나 과학적으로 이 별을 설명할 수 있는 것이 문제가 아닌 줄 압니다. 하나님의 아들 되시는 예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세상에 내려오시는 그와 같은 초자연적 일에 대하여 하늘에서 천군 천사가 찬송을 불렀다고 할 것이면 초자연적인 별이 나타났다는 것도 특별할 일이 아닌 줄 생각합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것이면 이렇게 기록한 말씀이 있습니다. 묵시록 22장 16절을 읽으면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 한 새벽 별이라.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는 별이올시다. 예수는 어두운 밤을 비추는 밝은 별이올시다. 예수는 허위가 많은 이 세상에 진리의 새벽 별이올시다. 예수는 사망으로 침륜(沈淪)하는 이 세상의 별이 됩니다. 예수는 절망의 심령에서 허덕이는 이 인류들에게 소망의 별이 되는 것입니다. 높고 높은 것은 별이올시다. 별은 너무 멀어서 별의 거리를 측량할 때에는 광년으로 그 표준을 삼습니다. 빨리 가는 광선이 일년 동안 흘러가는 거리를 한 단위로 삼는 것입니다.


우리가 별을 처다 볼수록 더 높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한 때에 역시 이러한 감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리켜서 지식에 넘치는 사랑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그 깊이와 그 넓이와 그 높음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라고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 했습니다. 말로 다한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사라고 이렇게 또한 기록한 것입니다. 너희는 위에 있는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고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의 높이는 쳐다볼수록 더욱 높습니다. 그리스도의 성결의 높이도 쳐다볼수록 더 높습니다. 그리스도의 자비와 긍휼, 그리스도의 그 인격은 쳐다볼수록 별과 같이 높습니다.


우리가 최고 이상을 구합니까? 그리스도의 얼굴을 쳐다보세요. 우리가 이 세상에서 최고의 선을 구합니까? 그리스도의 생활을 바라보세요. 이 허위와 가식이 가득 찬 세상에서 참된 진리를 탐구하시렵니까? 그리스도를 바라보세요. 높고 높은 별과 높고 높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별은 이렇게 높은 것 같으나 또한 매우 가까운 감이 있습니다. 별이 그렇게 먼 곳에 있지만 별빛은 바라보는 이의 얼굴을 은근히 비추어줍니다. 그 신비한 별의 광명은 우리 동공을 뚫고 우리 안벽에 비추어 줍니다. 별은 일견 높은 것 같지만 바라보는 자에게는 별처럼 가까운 것이 없는 줄 생각합니다. 그리스도가 역시 그러합니다.


그리스도의 성격이 그렇게 높고 그리스도의 생활과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그렇게 고상하지만 그리스도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병든 자를 고쳐 주시고 주린 자를 먹여 주시고 갇힌 자를 놓아주시고 세리와 죄인이 친구가 되신 것입니다. 높고 높은 그리스도는 낮고 천한 인생들을 가까이 하시고 그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같이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같이 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까지 바치신 어른이신 것입니다. 별은 우리에게 방향을 가리켜 줍니다. 지남침(指南針)이 없을 때 밤에 넓은 바다를 향해 가는 사람은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아는 것입니다. 넓은 사막 길을 걸어가는 여행자들이 밤에 오직 별을 보고 방향을 찾아서 사막 길을 걸어가는 것입니다. 이 캄캄한 밤 파도가 높은 세상에 참된 인생의 갈 방향을 알기 원하십니까? 별 같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여기 특별히 그리스도를 새벽 별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새벽 별은 아침에 선구자가 되는 별입니다. 아침을 예고하는 것이 새벽 별입니다. 새벽 별이 나타나게 되면 벌써 어두운 밤은 거의 지나가고 광명의 아침이 가까운 것을 우리가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소망의 별입니다. 오늘날 전 세계의 인류는 절망 가운데 허덕이고 있습니다. 지난 세기까지 과학에 소망을 두던 사람들, 교육에 소망을 두던 사람들, 과학이 발전되면 인류의 세계는 좀더 아름다운 사회가 되고 평화가 오리라고 교육을 잘 시키면 이 세상은 점점 아름다워지리라 이와 같은 소망을 가지고 많이 노력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이상한 것은 20세기가 들자마자 가장 과학이 발달되고 가장 교육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 독일이 나치로 화하게 되었고 나치주의는 인류 역사에서 볼 수 없는 가장 포악한 모든 금수의 행동을 하는 현상을 20세기는 찾아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과학의 첨단인 원자탄을 환영하는 사람은 많지만 오히려 이 원자탄으로 말미암아 온 세계 사람들은 더욱 불안과 공포에 싸이게 되었습니다.
원자 전쟁이 일어나면 인류가 멸망할 줄을 뻔히 알면서 평화를 가져올 길은 보이지 아니합니다. 절망 기에 빠진 세계 만방들은 그저 맹목적으로 원자탄 만드는 경쟁만 벌이고 있습니다. 이 결국이 어떻게 될 것은 오직 하나님만 아는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러할뿐더러 우리 한국 사람들은 오히려 이보다 더 큰 절망의 시련에 빠지게 된 것입니다. 온 세계가 이러한데 그 중간에 38선을 막아놓고 사는 우리의 앞길이 어떠하겠습니까? 38선이 열린 소망은 멀기만 합니다. 이와 같은 절망 가운데 빠진 사회 상태와 이러한 심리는 혹은 강력범으로 나타나고 자포자기하며 자살로 나타나고 부패한 정치로 나타나고 말할 수 없이 타락하고 퇴폐 된 사회의 기풍으로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인류는 너 나 할 것 없이 절망에 헤매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캄캄한 밤에 아무리 땅을 들여다볼지라도 거기 소망이 보이지 아니합니다. 이러한 세상에서 아무리 세상을 바라볼지라도 거기에서 소망을 찾을 수 없습니다. 캄캄한 밤에는 눈을 들어 위를 바라볼 때에 거기에 소망의 별을 발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이 험악하다고 할지라도 사람의 근본 되시는 하나님이 이 우주를 지배하시는 이상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까지 보내신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십자가에까지 못 박히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우편에서 인간의 역사를 지배하는 동안 우리 인간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아무리 세상을 바라봐야 세상에 소망은 없는 것입니다. 눈을 들어 하나님과 그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에만 우리의 마음가운데 새로운 소망이 있습니다. 사실 인간의 절망이 하나님의 역사의 시작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우리 인간은 할 수 없다고 하고 우리 인간은 다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인간의 절망이 최고조로 달했을 때 그 순간부터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고 하나님의 섭리가 나타나고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실 아침 전이 제일 어둡다고 합니다. 제일 어두운 시기면 벌써 새벽의 서광이 가까운 증거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가 절망에 빠질 필요는 없습니다. 개인으로나 민족적으로 그러합니다. 나 개인으로 모든 환경이 아무리 절망 같아 보이지만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십자가의 죽음가운데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믿을 때는 그 사람에게 새로운 소망이 비추입니다. 아무리 더러운 죄악에 빠지고 아무리 고질적인 악습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리스도를 믿고 그를 의지하는 자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절망의 인류에게 새로운 소망, 구원의 소망, 생명의 소망, 진리의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크리스마스별은 동방 박사들을 인도해서 예수님 나신 곳으로 동방 박사들을 가게 한 것입니다. 이 박사들은 별을 따라 갈 때에 마지막에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오늘 이 크리스마스별을 여러분께서 바라보시고 그리스도에게 나아와서 그를 참으로 경배하고 동방 박사가 예물을 드린 것처럼 내게서 가장 귀한 심령을 그리스도에게 드린다고 하면 여러분께서 어떠한 자리에 있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절망적 상태에 빠졌다고 할지라도 여러분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진리의 별이올시다. 그리스도는 소망의 별이올시다. 이 빛나는 별이 여러분의 생애의 지평선에 항상 같이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955년 12월 25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