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유종의 은혜 (사도행전20:17-35)

새벽지기1 2017. 1. 12. 12:36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 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는 도중 밀레도에서 에베소의 장로를 청하여 하신 말씀 중 『내가 곧 달려갈 길을 다하기 위하여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어기지 아니한다. 내가 내 사명을 마치기 위하여 생명을 초개 같이 여긴다. 내가 달려갈 길이 있는데 중도에서 그치지 않고 이 사명을 마치기 위해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는다』는 것이 본문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한 후 약 20년 되어 로마 옥중에서 늙은 몸으로 얼마 안 되어 순교할 것을 내다보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즉 디모데 후서 4장 7절에 있는 말씀『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었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음으로 주 곧 의로 운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에게니라』한 것입니다. 오랜 후, 20년 후 세상 떠남을 앞두고 제자에게 유시(遺示)로서,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키었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을 예비해 두셨다고 했습니다.


이 두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 변할 수 없는, 움직일 수 없는 결심이 섰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달려갈 길을 마치겠다는 것입니다. 도중에서 그치지 않고 마치겠다는 그 결심이 바울의 마음 속에 깊이 있었습니다. 자나깨나 사명을 마치기 위하여 살고, 죽기 전에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겠다고 하였습니다. 이 두 성경 말씀을 기초로 생각하면, 마치려고 하는 결심이 뚜렷합니다. 잘 시작하는 것이 귀하나,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첫째, 경주하는 사람은 시작할 때가 중요하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마지막 코스를 마치는 것입니다.
둘째, 학교에 입학하는 것은 귀하고 기쁜 일입니다. 그러나 그보다도 이 다음에 졸업하는 것은 더 귀합니다. 마치는 것입니다.
셋째, 전쟁도 그렇습니다. 시작 잘하는 것, 대적(大敵)을 쳐 물리치는 것이 귀합니다. 히틀러와 일본은 전쟁의 시작을 잘했으나, 망하였습니다. 마지막에 전쟁을 잘 마치는 것, 승리로 마치는 것이 더 귀합니다. 그래서 나폴레옹은 최후 5분간에 달려 있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 말을 하는 것은 우리 사람의 일생도 이것과 꼭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경주를 잘하는 것, 학교를 잘 마치는 것, 전쟁을 승리로 마치는 것과 같이, 우리 사람도 잘 시작하는 것이 귀하나 마지막 마치는 것은 더 귀합니다. 이스라엘의 사울 왕은 키가 다른 사람보다 어깨 위에 올라오고 힘이 세고 모든 것이 초월한 사람이어서 모든 사람이 왕으로 추대할 때 모든 백성이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에 어떻게 되었습니까?


로마의 네로 왕은 보통 악한 왕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와 바울이 그에게 순교 당했습니다. 어머니와 그 부인을 암살한 왕입니다. 네로의 처음이 어떠하였습니까? 로마의 제일 가는 대 선생 시세로 에게 배웠고, 어릴 때부터 노래와 시에 능하였고 예의가 단정해서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았고 행정을 어떻게 잘했는지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그러나 후에 점점 나빠져서 로마 성을 불질렀습니다. 마지막에는 자살로 끝을 마치었습니다.


가룟 유다도 보통 나쁜 사람으로 생각하지만, 하여간 12제자 중에서 신임을 받았습니다. 전대(錢帶)를 맡는 회계로 신용이 좋고 시작을 잘했으나 마지막이 어떠했습니까? 시작하는 것이 귀하나 잘 마칠 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신앙 생활도 그렇습니다. 유년주일 학교를 거쳐 학습(學習)을 받는 아이가 몇입니까? 학습인 백 인 중 세례 받는 이가 몇 분이나 됩니까? 세례 후 끝까지 신앙을 지키고 끝마치는 이가 몇입니까? 믿음으로 잘 마치는 것이 귀합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우고 믿음으로이기는 것이 귀합니다.


요한 의 제자 중의 한 사람인 서머나 교회 교부(敎父) 폴리캅이 큰 핍박이 일어나서 지방 관리에게 불려 나갔을 때에 나이가 어떻게 많은지 불쌍히 여겨서 예수를 안 믿겠노라고 한 마디만 하면 놓아주겠다고 하니, 그의 대답하는 말이『86년 동안 내 주 예수를 믿고 은혜를 받았는데 내가 내 주를 어떻게 배반하겠는가?』하고 순교하였습니다. 잘 마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선한 싸움을 잘 싸우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직분도 그렇습니다. 직분을 처음으로 맡는 것도 귀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귀한 것은 직분을 잘 감당해서 마치는 것, 내가 받은 사명과 직분을 잘 마치는 것이 더 귀합니다.


영국의 종교개혁자 크렌모 감독은 헨리 8세 때에 구교를 반대하고 종교개혁을 하였지만 다음 감독에게 구교로 돌아오면 고직(高職)을 주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불응하자 투옥되었습니다. 이 감독은 감옥에서 오래 고생하고 있는 중 어떤 문서에 사인만 하면 무사히 석방하겠다고 하자 그 조건이 자기의 주장과 비슷하므로 사인하였습니다. 다음 재판 때 검사 측에서『그대는 구교로 돌아오겠다고 하였다』할 때 이 감독은 일어나서『내가 사인한 그 성명서는 인정할 수 없다. 내 양심으로 그 성명서를 취소한다』고 하여 결국 사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화형을 받게 되어 불이 펄펄 타 올라올 때에 그는 먼저 자기 손가락을 내밀어 태우면서『손가락이 그 성명서에 사인을 했으니』하며 순교하였습니다.


오늘도 우리는 마치는 것이 어떻게 귀한 것을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우리는 남북통일도 마쳐야 되겠습니다. 부산 영락교회는 성전 건축 시작을 잘했습니다. 처음은 깡통 집을 지으려다가 돌로 짓게 되어 잘 시작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칭찬합니다. 아담스 선교사도『영락교회에 영광 또 있게 되었소』라고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성전을 시작한 것은 큰 뜻이 있습니다. 피난성도(避難聖徒)의 믿음의 상징으로, 우리의 사랑의 결정으로, 부산 왔다가 선물로 드리고 가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은 정성을 다 바치고 전 정력을 다 바쳐야겠습니다.
(1953년 5월 17일·부산 영락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