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기도를 싫어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섭리를 믿지 않는 사람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기도 무용론자)은 간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곤란이 무엇이고, 우리의 유익이 무엇인지 아시지 않느냐고 반문하며 기도 무용론을 주장한다. 더 나아가서 우리의 기도로 하나님을 움직이게 한다는 것은 부당하며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외친다. 하나님을 귀찮게 하고 믿지 못하는 태도라고 한다.
이렇게 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무슨 목적으로 기도를 하라고 명령하였는지 모르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도를 명령한 이유는 그분 자신 때문이 아니고 우리 때문이다.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 모든 유익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며, 그 통로가 기도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을 경배하며 기도할 때에 영적 유익은 우리에게 온다. 거룩한 조상들은 인생의 험로에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면서 더 은혜를 받기 위해 기도하겠다는 생각이 간절하였다. 엘리야의 실례로 충분하다. 그는 아합 왕에게 비가 올 것을 선언한 뒤, 하나님의 뜻을 확신하였지만 무릎 사이에 머리를 넣고 힘써 기도하며, 사환을 일곱 번이나 보내면서 확인하게 하였다(왕상 18:42).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은 것이 아니라, 믿음이 졸거나 태만하지 않도록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자기 의무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은 자기 불행이나 자기 원함에 대해 인지해야 하고, 그 해결 방안도 알아야 한다. 자연 인간은 신(神)을 만들어 자기 결핍을 보완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만든 인간은 창조주께 반역하여 결국 구속주의 회복으로 정당하게 나가며 간구할 수 있게 되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원하지 않아도 돕겠다는 교묘하고 게으른 생각을 버리고 하나님께 적극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성도는 자기 유익을 위해서 공급해주는 주께 항상 기도해야 한다.
첫째 우리의 심장이 진지하고 열정적으로 구하려는 의지가 불꽃처럼 타오르게 한다. 기도를 하면 더 기도하게 된다. 이렇게 되려면 곤란한 일이 당할 때마다 하나님을 거룩한 닻으로(sacram anchoram) 믿고 모든 필요를 그에게서 찾아내는 습관을 갖는다.
둘째 하나님께 아뢰지 못할 부끄러운 욕망이나 소원이 우리 마음에 침투하지 못하도록 한다. 기도는 하나님의 눈 앞에(coram eius oculis) 모든 소원을 내놓으며 모든 것을 말해야 한다. 거룩한 자 앞에 설 때 자기 거룩을 정진해야 하기 때문에 부끄러운 욕망을 절제할 수 밖에 없다.
셋째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은혜를 주실 때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태도를 갖기 위함이다. 기도는 우리가 모든 유익이 하나님의 손으로부터 온다는 것을 기억하게 한다(시 145:15-16).
넷째 우리가 구한 것을 얻고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해주셨다는 확신으로 그의 친절(benignitas)을 더 열심히 묵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다섯째 기도로 얻었다고 인정하는 것들을 더욱 큰 기쁨으로 받기 위함이다.
여섯째 우리의 기도 응답이 연약 정도에 따라서 취하는 방법을 인지하여 그의 섭리를 확인하도록 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결코 버리지 않겠다는 약속(견인), 우리가 곤경에 있을 때에 구할 길을 열어두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언제나 도와주시며 지켜주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여러 이유에서 지극히 자비하신 아버지께서(clementissimus pater) 결코 졸거나 게으르지 않으시며, 졸리고 게으른 우리를 훈련시키신다. 주께서는 게으르고 나약한 백성을 훈련시켜 구하고, 찾고, 두드리도록 훈련시켜가 가장 큰 선을 갖도록 한다.
사람의 마음에 기도를 떠나게 하려고 어떤 자들은 하나님의 섭리(Dei providentia)가 모든 일을 지키시며 우리가 귀찮게 간청하는 것은 무익한 짓이라고 떠든다. 그들의 행동은 너무도 미련하고 악하다.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시 145 : 18)라고 하여 주께 간구함이 헛되지 않음을 밝혔다. 기도무용론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주께서 하시기 때문에 기도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주께서는 기도를 원하시는 것을 밝히고 있다. 시편에 기도를 요구하는 말씀은 많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시34:15). 경건한 이들이 구원을 스스로 열심히 돌보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찬양하면서, 동시에 사람들의 마음에서 나태한 경향을 깨끗이 씻어버리는 믿음의 훈련을 격려한다.
하나님의 눈(Dei oculi)이 곤란하고 눈먼 자들을 돕기 위해서 지켜보고 계시지만,우리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더 잘 증명하기 위해 우리의 신음 소리를 들으려 하신다.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시 121:4). 주는 우리가 바보처럼 무기력한 것을 볼 때에 마치 우리를 잊어버린 것처럼 느낄 소극적인 행동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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