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박영돈목사

부목사가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교회

새벽지기1 2016. 7. 3. 14:59


부목사가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교회


한국교회에 부목사가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잘 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지금도 그런 괴담이 교회에서 암암리에 불문율처럼 작용하고 있다. 만약 부목사가 담임목사보다 설교를 잘해 교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그들의 사랑과 존경을 가로채 가면 담임목사는 사울처럼 시기심의 화신으로 돌변한다. 결국 그 부목사는 교회에 오래 붙어있지 못한다. 그러나 그런 담임목사를 비열한 인간으로 너무 쉽게 비난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비판하는 이도 그 자리에 가면 별 수 없이 그렇게 될지 모른다. 이런 시기심에서 자유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여기서 인간의 죄성과 연약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오직 은혜만이 이 부패성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한다.


내가 어떤 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할 때의 일이다. 다른 부목사가 설교하는 날이었는데 교인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그런데 거기에 교인들이 은혜를 받을수록 은혜가 떨어지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였다. 목사로서 교인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으면 마땅히 기뻐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런데 그것을 시기해서 견디지 못해하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런 자신이 너무도 비참해서 괴로웠다. 그럼에도 그런 치졸한 마음을 내가 어찌 할 수 없었다. 그 때 나는 작은 지옥을 체험했다. 독한 시기심의 포로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뼈저리게 절감하였다. 그 영혼의 어두움 속에서 주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구했고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시기심의 결박에서 자유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도 이런 부패성은 온전히 사라지지 않고 여전히 내 안에 도사리고 있다. 나는 명예심과 인기에 대한 욕망이 많아 항상 내가 부각되어야 행복했다. 내가 가장 인기 있는 교수여야 했고 내 자리를 밀고 들어오는 이에 대한 은근한 경계심을 품었다. 그래서 다른 이의 잘됨을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했다. 그게 나를 불행하게 했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내 안에 부패성이 한 풀 꺾인 것인가. 아니면 별 승산이 없으니 자포자기한 것인가. 그보다는 주님의 긍휼이 좀 더 내 안에 머무는 것 같다. 이제는 젊은 교수들이 잘 되는 것에 별로 배 아파하지 않는다. 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조금씩 생긴다. 나에게는 대단한 변화이다.


우리 교회에서는 내 제자 목사들과 돌아가며 설교를 한다. 무겁고 딱딱한 내 설교보다 그들의 설교를 교인들이 더 듣기 편해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내가 못하는 부분을 채워주니 감사하고 흐뭇하다. 나는 그들이 마음껏 설교하고 사역할 수 있도록 일체 간섭하지 않는다. 자유하니 편해진다. 그렇지 않고 내 제자들이 잘 하는 것을 보며 배 아파 한다면 나 자신이 얼마나 비참하고 비루한 존재가 되겠는가. 그 지경에까지 추락하지 않게 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할 따름이다.


이런 마음의 자유가 어떻게 온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결국 사랑이 시기를 서서히 밀어내는 것 같다. 주님의 교회를 사랑하고 교인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는 시기가 사그라진다. 제자들을 사랑하는 내 아들 같이 여기면 그들이 잘되기를 당연히 바라게 된다. 또한 나 자신이 교인들의 평판과 인기에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기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사람들의 평가와 상관없이 나는 아직 내 설교와 사역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 교만한 말이지만. 양해해주기 바란다. 나는 교인들이 그다지 환호하지 않을지라도 내가 생각하는 정도를 우직하게 따르려고 한다. 우리는 자신감이 없을 때 상대에 대해 위협을 느끼고 시기하게 된다.


우리 교인들도 교역자를 대하는데 좀 더 사려 깊은 성숙함을 가졌으면 좋겠다. 교역자들을 비교하여 어떤 특정인을 띄우고 환호함으로 교회 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의식과 갈등을 조장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 교역자들도 여전히 부패성을 가진 연약한 인간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설교자마다 다 특색이 있고 장점이 있기 때문에 상대 평가와 비교를 절대 하지 말아야 한다. 잘 하는 교역자들은 너무 부풀어 오르지 않게 해야 하고, 오히려 약하고 부족한 이들에게는 힘과 격려를 실어주어야 한다. 이것이 교회에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어가는 길이다.


<박영돈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