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영적 의무를 행하면서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즐거움이 있는가?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6. 27. 11:03


우리는 이러한 질문을 던져야만 합니다. “우리의 기도가 내면적인 은혜의 샘에서 나온 영적인 생각들로 행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또 “우리가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라는 확신을 어떻게 가질 수 있는가?”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을 비추어 볼 수 있는 영적인 빛을 조금이라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들이 감당하고 있는 영적 의무들 안에 믿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있는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의 영적 생각의 근거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지를 알아차릴 수 있다는 말입니다.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습니다(요일5:10). 믿음은 그 자체로 반드시 모습을 드러내어 보이기 마련입니다. 그러한 원리를 전제로 믿음의 존재 여부를 검증할 수 있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감당한 어떤 영적인 의무에 대해 그 행위 자제로 만족합니다. 자기들이 감당했던 의무의 근거가 어디로부터 나온 것인지, 그 속에 은혜가 작용하고 있는지 돌아보지 않습니다. 그런 그들이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어떠한 확신도 가지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영혼이 여러 가지의 의무들을 감당하면서 신령한 만족을 얻고 있다면, 영적인 생각의 은혜를 힘입고 의무들을 감당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예레미야 31장에서 선지자는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로운 메시지를 받습니다. 그 메시지는 교회에 대한 애절한 권고와 놀라운 약속으로 가득한 것이었습니다. 그 메시지는 “이는 내가 피곤한 심령을 만족케 하며 무릇 슬픈 심령을 상쾌케 하였음이니라”라는 말씀으로 마무리 됩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깨어 보니 내 잠이 달았더라.”

 

그것은 기도의 의무를 감당하면서 하나님과 진정한 교통을 하고 있는 영혼만이 느낄 수 있는 만족입니다. 그것은 심령이 느끼는 영적인 상쾌함입니다. 그것은 정말이지 달콤한 것입니다. 이러한 상쾌한 만족과 안식이 기도하는 신자들의 기쁨의 샘이 되는 것입니다. 그들은 기도하는 일을 억지로 감당할 의무로 여기지 않습니다. 또 무엇이 필요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들이 기도하는 이유는 기도하지 않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은 마치 매일 먹어야 할 음식을 먹지 않는 것과도 같습니다. 다른 것에서는 그러한 안식감과 만족감이 주는 즐거움을 찾지 못합니다.

 

은혜의 작용을 통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은 하나님의 살아 계시다는 영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모든 영적인 유쾌함과 안식과 만족의 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영혼의 달콤한 미각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은 ‘생명 샘’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 생명 샘은 생명과 은혜를 새롭게 하는 생수가 솟아나는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만족과 기쁨 안에서 하나님의 ‘광명’ 의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만족이란 이러한 것입니다. 참된 신자들이 자기들의 영적 의무를 바르게 감당할 때 이러한 신령한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행하는 모든 의무 가운데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사랑과 즐거움이 있다면 그러한 만족을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새로운 피조물이 살아가야 할 삶입니다.

 

-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pp 65-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