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존 오웬, 『영의 생각, 육신의 생각』, 서문강역, 청교도신앙사, 2011

새벽지기1 2016. 6. 25. 09:46


추천의 글 (총신대학교 윤종훈교수)

 

본 작품은 ‘Grace and Duty of Being Spiritually Minded’(영적 사색자의 은혜와 의무)를 번역한 것입니다. 1681년에 완성된 저작으로서, 존 오웬이 병들어 사역활동에 매우 불편해 하던 시절에 회중을 대상으로 직접 설교한 내용을 담고 있는 보배와 같은 책입니다. 저자는 책이 완성된 후 7년 뒤에 죽었습니다.

존 오웬은 청교도의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청교도들의 작품은 오늘날 베스트 셀러로 호평받는 책들과는 본질적으로 차원이 다릅니다. 청교도들은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예배, 성령의 임재를 매순간 체험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된 임재를 경험하는 예배를 드리는 것을 생명보다 더 귀하게 여긴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당시 로마 카톨릭과 영국 성공회(Anglican)의 예배 방식과 제도를 거부한다는 오해를 받아 화형 틀에 매달려 장렬한 순교의 잔을 마셨습니다. 그들은 단두대의 형장의 이슬로 이생을 마감하면서도 그것을 영광스런 천국입성으로 여기던 이들이었습니다. 청교도들은 당시 영국 최고위층의 성직계급과 국가 주요직의 제안을 거부한 일로 귀와 손과 팔과 다리가 잘리면서도 ‘오늘이 마지막이라’는 믿음으로 확신 있고 담대하게 말씀을 선포하였습니다. 그 선포된 내용들이 오늘날 작품으로 남아서 우리의 손에 들려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비본질적인 일로 헛되이 다 투느라 혈안이 되어 목숨을 거는 것 같은 현상과는 얼마나 다른 모습입니까!

 

한국교회여! 얄팍한 입술만의 개혁주의 신학에만 머물지 말고, 삶의 신학과 신앙으로 승화시켜라!

 

본서는 오웬이 로마서 8:6의 말씀,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라는 말씀을 집중 강론하여 성도의 신앙과 삶의 본질과 정체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오웬은 이 작품을 통하여 개혁주의 신학의 성경중심성과 객관성이 어떻게 삶의 신학으로 이어질 수 있는가에 대한 뚜렷한 대안을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본서 전반부는 육적인 신자와 영적인 신자의 분명하고도 단호한 차이점과 그 결과, 그리고 영적인 신자로 살도록 성령께서 시여하시는 은혜의 방편들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자세하게 그려주고 있습니다. 후반부에서는 전반부에서 다룬 것의 실천적이고 체험적인 부분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실상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개혁주의를 주장하고 복음주의를 강조하는 목소리는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개혁주의적인 복음주의 신앙고백과는 너무 동떨어져 있습니다. 세상에 속한 이들 마저도 주저할 만큼의 세속적인 삶의 방식이 교회와 기관, 각종 모임,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공동체 속에서 버젓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이 현실을 목도하면서 개탄해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놓여있습니다.

 

존 오웬이 본서에서 역설하고 있는 바에 비추어 보면 현재 한국교회의 장막이 무너져 내리는 원인이 무엇인가가 극명하게 보입니다.

 

“오늘날 정말로 많은 이들이 자신을 속이고 있습니다. 들려지는 말씀을 단순하게 지적(知的)으로만 찬동할 뿐, 정작 그들의 양심은 그 진리의 세력 안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진리들을 통하여 자신들의 영적인 실상과 조건을 돌아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들이 생명과 평안을 누리고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있다고 느낄지 모르겠습니다만 사실 단 한 음절의 말씀도 믿질 않습니다. 만약 그들이 말씀의 진리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 진리에 비추어 자신들을 돌아보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정말 믿는 자라면 마지막 날에 그 진리가 자기들에게 어떻게 작용하며 찾아올 것인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약1:23,24).”

 

위 내용은 참으로 현대 한국교회를 꿰뚫어 보고 있는 듯합니다. 실로 그 혜안이 담긴 귀한 보물과 같이 심화된 지적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마치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는 것처럼 행사하며 단지 기독교가 문화종교, 전통종교로 전락해버렸음을 존 오웬은 17세기의 신학자로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여!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사랑하는 독자 여러분! 왜 한국교회가 이런 모습을 보이며, 어쩌다가 이렇게 더 이상 망가질 수 없는 데까지 철저하게 타락하게 되었습니까? 오웬은 본서를 통해 ‘육신의 생각’ 과 ‘영의 생각’이라는 두 개의 진단을 한국교회에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 모든 인류는 마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요8:44).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과 성자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로 받아들여진 성도들은 하나님을 감히 아바 아버지로 부를 수 있는 놀라운 특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특권을 가진 성도들을 가리켜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벧전2:9) 부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을 위시하여 성도들이 아직 육신의 감성과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육신의 열매를 맺고 있으며, 부패의 처절한 열매가 나타나고, 세상에 속한 이들의 질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존 오웬의 이 책에서 우리는 그 원인과 실상에 대한 극명한 진단과 그에 대한 유효한 처방을 얻게 됩니다.

 

오웬은 말합니다. 한국교회가 과거의 구습인 육신의 생각을 버리고, 새로운 신분인 영에 속한 생각을 지속적으로 삶의 표준으로 삼는 날이 온다면, 영원한 파멸에서 영원한 복락으로 바뀌게 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웬은 본서를 통해 영의 생각을 추구하는 신자가 되기 위해서는 성령님을 통하여 베푸시는 은혜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을 구체적이며 열정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선자의 의무들”을 절대로 간과해선 안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럼, 오웬이 제시하는 신자의 의무이자, 성령의 시여수단인 은혜의 수단들은 무엇일까요?

첫째로, 말씀과 기도입니다. 말씀은 영혼의 영적 양식이며 은혜의 작용을 유도하는 기회를 불러 일으킵니다. 또한 기도는 믿음과 사랑의 은혜의 원리를 자극하고 부추겨 신자로 하여금 거룩한 생각과 영적인 생각, 하늘의 신령한 정서를 갖추게 하는 엄청난 은혜의 수단입니다. 또한 회복된 양심의 가책은 육적인 생각을 멈추게 하고 악한 생각들을 줄이고 영적 사고방식이 넘치게 합니다. 또한 자아부인과 자아 점검, 자아억제 등 은혜의 수단들은 육신의 생각을 포기하고 하늘에 속한 것들에 동화되어 가는 정서를 창출케 할 것입니다.

 

독자들이여! 거룩한 하나님의 공동체들이여! 하늘에 속한 신령한 것들을 사모하자!

 

오웬은 신자들이 영적 사고방식을 추구하는 과정 속에서 사용되는 은혜의 수단들을 단순한 의무감에 따라 간헐적으로 추구하면 “영의 생각의 허울로 둘러 쓴 육적인 생각”으로 전락될 수 있음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에 속한 하나님의 사람들이 이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삶을 살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영광스런 하늘의 영적 세계에 대하여 날마다 묵상하고 깊이 숙고해야 할 시대적 사명과 의무가 있음을 오웬은 힘주어 강조하고 있습니다.

참 신자는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주님께서 우릴 위해 준비하신 영광스런 하늘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늘을 사모하며 희구하는 영적 사고방식을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신자는 진정한 ‘칭의의 생명’을 기반으로 ‘성화의 생명’(롬5:18,엡:2:1-5)을 이 땅에서도 누리는 복을 받게 될 것이며, 보편적이자 절대적인 의미에서의 ‘평안의 복’(롬5:1,골1:20,엡2:1.14,15)을 함께 향유하게 될 것입니다.

 

오웬은 말합니다. “영적으로 생각하는 사고방식은 우리의 육신의 생각과 정서를 완전히 깨뜨리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의 줄에 완전히 매여 고정되는 놀라운 역사를 창출하게 될 것입니다”.

바라기는. 온 한국교회 신자들이 이 책을 가슴으로 깊이 묵상하며 숙독하심으로 무너진 한국교회가 새롭게 재건되고 회복되는 놀라운 축복의 역사가 펼쳐지기를 두 손 모아 간절히 기원 드리는 바입니다.

 

- 동서, pp 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