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오웬

신자들의 최고의 특권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 존 오웬

새벽지기1 2016. 6. 21. 10:43


이 세상에 태어나 영원한 세계에 이르기까지 신자들이 누리는 회고의 특권과 진보 가운데 하나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다.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기시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이는 ‘저희가 내 영광을 보고, 또 묵상하기를 원하나이다’라는 말씀이다. 이 영광스러운 특권이 하늘에 상태에서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이 땅의 신자들에게도 적용된다는 것이다.

 

신자들은 먼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점차 그 영광을 닮아 가고, 그런 다음에 영원한 세계에서 확증된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바로 여기에 현재 우리의 위안과 장래의 복락이 달려 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의 영혼의 생명과 상급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알기 때문이다(고후4:6).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방식과 그 정도는 두 가지이다. 성경은 그 두 가지를 구별한다.

하나는,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는 것으로, 그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히11:1)이다.

또 하나는, ‘봄’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주목하는 것이다. 즉 영혼 속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우리가 담대하여 원하는 바는 차라리 몸을 떠나 주와 함께 있는 그것이라”(고후5:7,8).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아야 하는 이유는 세 가지이다.

 

1) 믿음으로 어느 정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한 사람은 이후 영혼 세계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수 없다.

은혜는 영광을 위해 필요한 준비요, 믿음은 보기 위해 필요한 준비이다. 우리 영혼이 은혜와 믿음으로 미리 단련되지 않는다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볼 수 없다. 그 영광을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사람들은 그것을 소원할 수가 없다. 아무리 그런 체한다 할지라도 말이다. 그들은 자기들이 그의 영광을 보고 싶어한다고 상상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속이고 있을 뿐이다.

 

2) 영광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현재 우리가 가진 조건으로는 너무 높고도 기이하며 신비한 일이다.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영적 시각의 개념에서 볼 때, 영광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보는 것은 너무나 눈부시고 큰 일이다. 마치 태양을 직접 바라보면 우리의 시야가 오히려 어두워질 뿐, 그것이 우리의 시각을 강하게 하거나 돕지 못하듯이 말이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서는, 하늘에서 직접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참되고도 영적으로 이해할 수 없다. 그 어떤 방식이 우리 마음에 들어오더라도 그것은 추측이나 상상일 뿐이다.

 

장래의 영광에 대해 아무리 생각한다 할지라도, 이 세상에서 미리 맛보거나 지각되거나 체험되거나 어떤 증거를 가진 것이 아니라면 영혼이 혼란만 겪을 뿐 힘을 얻지는 못할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하늘에 있는 것을 이 세상에서 체험해 보지 않고서는 그것을 고대할 수가 없다.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 충분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면, 그들이 직접 그것을 다 맛보아서가 아니라 하늘에 속한 것들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행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하기에 믿음의 효력을 통해 자기 속에서 그 영광을 조금이라도 맛보지 못한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여러 형상과 그림과 음악으로 가득 채워 자기들이 하늘에 대해 공상하는 것으로 그 영광에 대해 무엇인가 아는 체하기 마련이다. 그런 사람들은 참된 영광을 기대할 수 없고, 그것을 가질 수도 없다. 왜냐하면 그들 스스로가 참된 영광의 능력을 전혀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 이 땅에 있을 때에는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것을 하늘에서 직접 보게 될 때 얼마나 복 될지를 가늠할 수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찬미하고 감탄하게 되며, 그 영광을 누리고자 간절히 소원하게 된다.

 

3) 우리가 지금 신자들을 세우는 목적은 주로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려는 것이다. 왜냐하면 믿음의 삶과 능력이 바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데 가장 탁월하기 때문이다.

주로 그런 믿음의 행사에서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우러난다. 만일 우리가 힘 있는 믿음과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져 우리 영혼에 진정한 만족과 평안을 얻고 싶다면, 부지런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온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다른 방식으로는 그런 믿음의 역사를 기대할 수 없다. 생각과 정서 속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지런히 묵상하는 삶을 살 때, 그분의 영광에 비하면 이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렇게 해야만 이 세상에 속한 모든 것들을 십자가에 못박고, 급기야 그런 것들이 내 속에서 주고 형편없는 것들이 되어 어떤 방식으로든 애착을 느끼지 못하게 되는 정도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유익은 네 가지이다.

 

1)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하늘나라에 걸맞는 인격으로 변모해 간다.

진실로 신자들이 이 세상에서 그의 영광을 보기 시작한 것과 그 후에 영광의 충만함을 누리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과 은혜의 전능하신 행사를 통해서 서로 연결된다. 하나님께서는 신자들에게 전달되는 그 영광을 받아들일 수 있는 방식과 방편을 주셨다. 그 방식과 방편이 바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이다. 우리의 모든 현재의 영광은 장래의 영광을 준비하는 데 있다.

 

2) 그리스도의 영광을 진실로 봄으로써 덕을 입게 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봄으로써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하게 하는 능력 안에서 덕을 입게 될 것이다.

 

3)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한 부단한 묵상은 영혼에 안식과 만족과 행복을 준다.

영혼이 이 영광스러운 대상에 대한 생각과 묵상에 고정되어 있다면, 그 영혼은 거룩하고도 진지한 영적 상태를 유지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롬8:6)이기 때문이다. 영의 생각이 생명과 평안인 것은, 우리가 누릴 기업의 위대한 가치와 아름다움과 영광에 비추어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을 비교해 보는 관점을 통해서 우리의 마음이 이 땅에 있는 모든 것들에 집착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빌3:7-11).

 

4)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것은 우리의 영원한 복락의 샘 근원이요 원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있으면서 그의 영광을 보고 거기에 참여하는 것이 우리의 영원한 복락이다.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뵙는 영광을 누리는 것을 일반적으로 ‘기쁨에 넘치는 비전’이라고 칭한다. 바로 그것이 복된 상태에서 우리 영혼이 움직일 수 있는 유일한 근원이다.

 

참된 신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상태를 미리 맛볼 수 있다. 때로는 말씀과 성령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창조 이전에 가지고 계셨던 그 영광에 대한 시각을 얻게 되기도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비춰진 하나님의 영광은 우리의 영혼을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감동시킨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을 맛보게 되는 것이다(빌4:7). 또 신자들 속에 계신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께서’ 신자들로 하여금 영광의 첫 열매를 맛보게 하신다. 때로는 그들의 영혼을 생명수 샘물로 적시고, 또 때로는 자신의 우편에 있는 즐거움의 강물을 마시게 하신다.

 

그런 은혜를 맛보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게으름과 무지 때문이다. 그래서 영광의 빛이 우리 영혼 속에 더 많이 비치지 않는 것이다. 이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자극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을 묵상하는 일에 정진하도록 만든다.

 

“아버지여, 내게 주신 자도 나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전부터 나를 사랑하시므로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로 보게 하시기를 원하옵나이다”(요17:24).

 

- 존 오웬, 『그리스도의 영광』, pp 42-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