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로마서강해

롬3:21-31 [로이드존스-로마서 강해]

새벽지기1 2016. 3. 6. 10:09


1. 위대한 전환점 “이제는”(21~31)


본문은 이 서신서 중의 새로운 부분이면서 3장에 있어서도 새로운 대목의 시작입니다.

① 1:16~17에서는 바울이 복음을 너무나 기뻐하고 자랑스럽게 생각하며, 또한 복음을 전파하는 것을 기뻐하였다는 것이 나타나 있습니다.

② 1:18로부터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나타난 하나님의 진노에 관한 엄청난 진술이 시작됩니다.

③ 1장의 나머지 부분과 2장 그리고 3장의 첫 부분을 계속하여 써 내려가면서 이 부분이 유대인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똑같이 해당된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④ 3:20에서 어느 누구도 결코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의롭게 되었거나 앞으로도 될 수 없다는 것을 못 박아 두었습니다.
⑤ 우리는 3:18을 다 읽고 나서 완전히 절망적인 처지에 있는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데, 어느 누구도 자기가 전혀 소망이 없음을 깨닫지 못하거나, 절망과 무력함을 알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에게 오는 것”에 대하여 말하는 것은 무익한 일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께 나아갈 오직 유일한 이유가 되는 것은 어떤 육체라도 하나님 보시기에 율법에 의해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⑥ 그렇다면 우리에게 전혀 소망이 없는 돌이킬 수 없는 운명인가? 라고 자문하게 될 수밖에 없는데, 사도는 지금 바로 그 대답을 하려고 “이제는”이라는 말을 꺼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킹 제임스 성경에 “그러나 이제는”이라는 번역이 원문의 뜻을 훨씬 더 드러나 보이게 합니다. 이제까지의 나의 조건은 ⑤번과 같은 조건에서 소망이 없었는데, “그러나 이제는”이란 말로 그 상황은 완전히 전환되어 감탄을 불러일으키게 됩니다.

⑦ 우리의 영혼은 눈멀었고 벙어리였으며, 죽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든 것이 변했는데 그것은 복음이 왔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저주와 양심의 가책, 그 외에 우리를 저주하고 짓누르는 어떤 것에 대해서도 대처하는 신앙의 답변은 언제나 “그러나 이제는” 이라는 아주 경이로운 말입니다.

⑧ 그러면 우리는 그가 로마 교인들에게 펼쳐 보이려고 하는 이 경이로운 기쁜 소식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구원받는 길

     ꊧ 하나님께서 전에 준비하시고 약속하셨던 의를 나타내 확증시킨 것

     ꊨ 우리의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되는 것

     ꊩ 이 길은 모든 사람들에게 차별 없이 열려 있다는 것

     ꊪ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진 일이라는 것

 

위대한 구속의 특징

     ꊧ 구속의 길이 하나님의 성품과 일치한다는 것

     ꊨ 이 길은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길이라는 것

     ꊩ 모든 세상과 모든 족속의 하나님이 되심을 보여 주는 길이라는 것

     ꊪ 그 길이 율법을 영예롭게 하고 굳게 세우는 방법이라는 것


2. 사죄 보다 더한 것(21~3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다.”는 본문 말씀이 이렇듯 감격스러운 것은 이전에는 실마리만 보이고 어떤 모형으로 표현 되었으며, 그림자만을 비추어 주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열려 졌고 완벽하게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아들이 세상에 오심으로서 모든 역사에 위대한 전환점이 정말 일어난 것입니다.

① 유대인들이 열심을 다하여 도달하려 했던 것은 하나님을 만족시킬 만한 의였으며, 그 밖의 사람들은 그들의 도덕성과 철학으로서 그것을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였지만 바울은 그 모든 것이 헛것이라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전적으로 새로운 입장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온 의로서 그것만이 효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② 우리가 죄사함을 받았다는 것 그 자체로는 하늘에 들어갈 허락을 얻지 못하는데, 그 허락을 얻으려면 필연코 의로 옷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왕의 결혼 잔치에 예복을 입지 않고 참여한 사람이 쫓겨난 것과 같습니다(마22:1~14).

③ 우리는 적극적인 의를 필요로 하는데,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는 이 위대한 교리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실 뿐만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간주해 주신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④ 하나님의 의가 우리의 것이 될 수 있는 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만족시키신 결과를 우리에게 전가 시켜 주심으로서 가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세우지 않고는 구원이 있을 수가 없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의 의를 입지 않으면 결코 구원을 이룰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신앙이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행하신 일과 구원을 위해서 행하신 것을 신뢰하는 것으로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를 얻는 유일한 길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은 더 이상 자신을 바라보지 않으며 자신의 어떠한 것들을 바라보지 않습니다.

⑥ 그러나 구원을 받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 안에는 여전히 죄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구원 받은 믿음의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말할 수 없는 죄를 지었고, 나는 죄의 생활을 해왔으며, 신성모독 자였으며, 행악 자였고, 비열한 사람으로, 내가 범하지 않은 죄란 거의 없었다. 나는 아직도 내 안에 있는 죄를 알지만 내가 내 자신의 의로서가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나의 의이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의를 나의 것으로 간주하신 것이다.” 그는 전혀 자신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행하신 것만을 의지하고 바라봄으로서 이러한 고백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들을 들추어내어 그것들을 살펴보고 그리고 인식하고 그 모든 것을 부끄럽게 여기며, 더 나아가서 그 모든 것들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⑦ 죄란 ❶표적(거룩한 표준)을 잃어버리는 것이며, 표적을 맞추지 못하는 것, ❷범법 하는 것, ❸ 바르지 못하여(옳지 못함) 똑바로 가지 못하는 것, ❹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자신의 뜻대로 사는 것, ❺ 본래 악하고 그 자체가 나쁜 것, ❻ 계명을 어기는 것(요일3:4)입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의 영광을 보고 기뻐해야 하는데 믿지 않는 사람들은 그 영광에 대해서 모릅니다. 왜냐하면 한번도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그 영광이 열려 나타냄을 받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 무언가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기뻐하는데, 그에게는 그것을 누리고 참여하는 것이 전부이며, 모든 것 중에 가장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죄는 사람을 불의하게 만들 뿐만 아니고 그로부터 하나님의 영광을 빼앗아 갑니다.

⑨ 내 안에 있는 새 사람은 계속해서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될 것이며 나의 육신마저도 영화롭게 되는 더욱더 경이로운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가 전에 어떠하였든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완전히 행하신 일을 믿으면 우리는 그의 의로 옷 입으며,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 가운데 이식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한 자(벧후1:4)가 되는 것입니다.


3. 오직 값없는 은혜로(24)


구원이란 “의롭다 함을 얻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안에서 죄로 양심이 가책을 입고 있으니 자신이 의롭다 함을 얻은 신분이라는 것을 의심합니다. 칭의는 우리들 안에서 실제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우리들에 대한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것은 우리들의 행함에서 오는 열매가 아니라 우리를 위해 행해진 어떠한 일, 즉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의롭다고 간주해 주시고 의롭다고 선포하시는 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② 그렇다면 이 구원이 어떻게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사실 “은혜”라는 말보다 더 놀라운 말은 없습니다. 그 말은 전혀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아무런 조건 없이 준 과분한 총애나 자비를 뜻하는 것으로 하나님의 자발적인 사랑의 실천에서 나온 결과입니다.

③ 죄의 결과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심판을 당하게 되는 것 뿐 아니고, 죄와 마귀의 노예가 되어, 이런 처지에 있는 인간은 무능하며, 완전히 노예의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에 대한 응분의 댓가를 지불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감사할 것은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고, 우리의 주님은 그 율법에 대하여 완전하게 순종하셨으며, 또한 우리를 대신하여 속전의 값을 지불하심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4. 화목제물(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라는 말씀에서 “세웠다”는 말의 실제 어휘는 “제시하였다.”는 의미를 가진 말이지만 본문에서는 세웠다는 표현이 더 적합합니다. 그것은 바울 사도가 갈보리 위에서의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묘사하는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일어난 것을 공적으로 선포하신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① “화목제물”의 화목이 의미하는 것은 진노를 진정시키고 달래고 유화 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청교도의 존 오웬 박사는 어떤 화해에도 본질적인 요소가 있는데, 그것은 ❶ 가해를 중단하고, ❷ 피해자를 유화시킬 필요성을 느끼고, ❸ 가해자는 상해에 대한 책임을 지고, ❹ 가해를 사유케 하는 희생이나 다른 수단을 써야 한다고 하는데, 이 네 가지는 화목제물에 대한 전체 관점에 다 적용이 됩니다.

② 화목의 개념은 속죄의 개념보다 더 크고 깊은 것입니다.

[참조 : 속죄제물의 의미 = 죄가 속해 지기 전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진정한 관계가 성립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화목제물의 의미 = 죄가 존재하는 동안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행복이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③ 사도 요한은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라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2:1~2)라고 증거함으로서 단순히 우리가 우리의 죄가 속죄될 필요가 있다는 것만을 말하지 않고, 대언자가 있어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대언자가 하는 일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인격적 관계에 관련된 어떤 일, 즉 화해일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대언자가 필요합니다.

④ 화목이란 말은 누군가가 공격을 당했고, 누군가가 손해를 보았으며, 상해가 있었으며, 양편에 무언가 필요한 것이 있다는 관념을 전달해 줍니다. 가해자 측에서 뿐만 아니라 피해자 편에서 다 함께 어떤 일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진노를 터뜨리시고, 또 한편으로는 죄인이 구원 받도록 하는 길을 마련하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우리가 해를 끼친 바로 그 하나님께서 범죄자를 해결하여 주실 길을 제공하셨다는 것을 가르칩니다.

⑤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구원 받을 수 있도록 제공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인과 죄를 향한 분노와 진노는 풀어졌고 진정되었으며, 이제 그분은 그럼으로써 사람을 그 자신에게 화해시킬 수 있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화목제물”이 뜻하는 의미입니다.


5. 예수 그리스도의 피(25)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는데, 어떻게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들을 속량할 수 있었습니까?

그 대답은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해 “화목제물로 세우셨다”는 데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피”로 그렇게 하셨다고 합니다.

① “예수 그리스도의 피”는 흔히 우리의 구속과 구원에 관련하여 강조되어 언급되어 있는데, ❶ 행28:8에서 하나님이 자기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를 쳐야 한다고 했으며, ❷ 롬5:9에서는 우리가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입었은즉....... 라고 하고, ❸ 엡1:7에서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사함을 받았으니.......라고 하며, ❹ 그리고 히9:12,14,19; 벧전1:19; 계1:5에서 그것을 봅니다.

② 바울은 여기서 “”라는 말을 사용함으로서 구약의 가르침과 일치한다는 것을 깨우쳐 주는데, 하나님도 같고 또한 구원도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과 신약은 시대와 형식에 있어서는 다르지만 구원은 항상 한가지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볼 때 주님은 구약의 레위기의 가르침 가운데서 예시되고 암시되고 예표된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루시고, 다 끝내셨으며,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구약에서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 받고 죽음 가운데서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야 하실 것이 구약에 쓰여 있었고, 그래서 주님은 마땅히 고난을 받아야 했고, 3일 만에 부활하셔야 했습니다.

③ “피”란 “죽음으로 끝난 생명”을 의미합니다.

피는 짐승이 고난 받아 죽었다는 것에 대한 적극적인 증거가 되며, 유대인들에게 임했어야 할 심판이 짐승에게 대신 임하여 죽음의 사실을 증거하기 위해 드려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피”란 “희생죽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④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희생적 죽임을 명하셨는데, 그 죽음의 목적은 ❶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바친 것이며, 그 점이 하나님과 화목하려는 그들의 의향이었습니다. ❷ 화목을 얻는 것은 속죄로 말미암아서인데, 죄가 도말 되고 씻어지면 이제 화목 된 하나님께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❸ 가해자에 의해 가해자를 위해 그의 죄를 대체된 동물에게 전가시켜 희생물에 대한 여러 가지의 심판으로 인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❹ 희생제사의 효력은 범죄 자에 대한 용서와 하나님의 은총의 회복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로서는 죄를 처리하지 못하고 단지 죄를 간과하고 덮어두는 하나의 방편에 불과하며, 구약의 제사와 희생 제물들은 일종의 육체적인 정결을 위한 것들로 의에 이르게는 하지 못하였으며, 하나의 의식적인 결례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할 수 있게 도움을 줄 뿐이었습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에 대해 사람을 참으로 화해시킬 수 있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믿지 않고는 그들은 구원 받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성도들도 오실 메시아를 믿지 않고는 의인이 될 수가 없었습니다.

구약의 성도들을 구원에 이르게 한 것도 신약시대와 같이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믿음입니다.[예 : 안나(눅2:36~38), 시므온(눅2:25~31)]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선고는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죽음을 떠나서는 죄가 처리 될 수 없으니 피 흘림을 떠난 죄사함은 없습니다.

⑥ 우리가 죄를 지은 바로 그 하나님께서 친히 대체물을 제공해 주셨는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로 세우신 것입니다.

  ❶ 그의 생명은 죄를 위한 제물이 되었습니다.(사53:6)

우리의 죄악이 그에게 짊어진바 되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죄가 그에게 전가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부어졌습니다.

우리에게 임하게 될 심판이 우리의 죄성과 죄악으로 인해서 그분에게 임한 것입니다.

  ❷ 하나님은 자신의 진노에서 아들의 사정을 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은 것입니다.

그것은 단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그가 담당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맛보아야 하고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될 것을 아셨기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워하셨던 것입니다.

  ❸ 그는 자기의 피를 가지고 “가장 거룩한 하늘 지성소”에 단번에 들어가셨고 그의 피를 드리셨으며 그것이 열납되었던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은 충분하셨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전부 쏟은바 되었습니다.

⑦ 우리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그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죄짓고 부정하게 되지만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항상 깨끗하게 하셔서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할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그 피는 우리의 양심까지도 깨끗하게 하여 줍니다.(히9:13~15)

⑧ 우리는 새 언약에 속한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더 이상 옛 언약에 속해 있지 않으며, 새롭고 더 좋은 언약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피”가 주어졌습니다.


6. 자랑할 데가 어디뇨?(27~31)


구원의 방법은 우리의 입장 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입장에서 더욱더 많이 고려되어져야 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의로우시며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임”을 나타내는 데에 있습니다.

① 구원은 언제나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나타나는데 그것이 첫 번째 특징입니다.

그리고 구원의 길은 모든 자랑을 배제시킵니다.

출신 성분을 자랑할 수 없습니다.

  ❶ 유대인은 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라고 말하며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랑하며 이방인들을 “들개”로 취급했습니다.

  ❷ 자기의 의를 자랑할 수가 없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을 다른 사람들과 다르게 생각했고, 자신들의 경건한 삶과 도덕적인 삶을 자랑했습니다.

② 구원의 길에 대한 해석은 더욱 영광스러운 방식으로 자랑을 빼앗아 버립니다.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 없느니라” 그것은 하나님 법정에서 단번에 쫓겨났습니다. 그것은 결코 다시 나타나서는 안 됩니다. 구원의 길 안에는 그것을 위한 한 치의 땅도 없습니다.

③ 우리를 구원하는 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완벽한 공로입니다.

그리고 그의 완전한 삶이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존전에 그리스도께서 나아가심이 우리를 구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의 것으로 전가시키심으로 말미암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가 의에 이르게 하는 통로요 매개체로서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단지 우리를 구원하시는 그리스도의 의와 우리를 연결시켜주는 통로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는 의는 그리스도의 의이며 믿음은 단순히 그것을 우리에게 전가시켜주는 매체입니다.


7. 차별이 없느니라.(29~31)


구원에 있어서 우리는 자기의 공로나 출신, 성공, 이해력 등 아무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는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서 구원 받는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 다음으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은 사람들 사이의 모든 차별을 폐하셨다는 것인데, 이것이 구원 방법의 두 번째 특징입니다.

구원에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귀한 자나 천한 자, 어떠한 상태에 있든, 어떠한 위치에 있든지 차별 없이 똑같이 적용 됩니다.


8. 세워진 율법(31)

이제 하나님의 구원 방법의 특징으로 묘사해 온 것 중 마지막 세 번째 예증을 대면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 구원의 길, 즉 하나님께서 그를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화목제물로 세움으로 이루어진 이 구원의 길을 율법으로 세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효력을 잃게 되고 폐하여지거나 무익하게 되었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는 것이 바울의 논리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새로운 믿음의 법을 맞이했기 때문에 이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말한다면 그것은 율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을 허물고 방치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믿는 구원의 방법이 어떠하거나 우리가 고집하는 속죄 교리가 어느 것이든지 간에 반드시 율법을 “세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율법을 세워주고 붙들어 견고하게 하는 것은 “복음”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합니다.

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의롭다 선언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은 율법을 존귀케 하며 세우는 것입니다.

② 우리 주님 자신이 모든 면에서 율법을 이루심으로 율법을 세우셨습니다.

유일한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며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로 말미암고, 구원은 율법과 마귀와 사망의 올무에서 건져내기 위한 속전인 주님의 피로 인한다는 이 구원과 구속의 길이 다른 무엇보다도 모든 면에서 율법을 존귀케 한 것입니다.

  ❶ 주 예수 그리스도는 그의 자발적인 순종 가운데서 율법을 존귀케 했습니다.(갈4:4)

  ❷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케 하심으로 존귀케 하셨습니다.

  ❸ 주님은 가장 거룩한 순종의 생활로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하고 철저하게 존귀케 하셨습니다.

  ❹ 갈보리 언덕의 십자가상의 수난의 순종 속에서 율법을 더욱더 뚜렷하게 높이셨습니다.

  ❺ 우리의 죄에 대한 모든 요구를 자기 위에 메우신 하나님께 불평이나 도망가지 않고 순순히 복종하심으로써 율법을 세우셨습니다.

  ❻ 율법의 제일 되는 기능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의를 나타내 보이는 것이었는데, 십자가는 그렇게 율법을 세우며 그 점을 나타냅니다.

③ 십자가는 죄에 대한 심판으로 주어졌으며,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를 화목케 함으로서 율법을 세웠습니다.

④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분이 율법을 세우신 모든 것들이 전가되어 율법을 세우는 일에 동참하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를 믿음으로 율법을 세우는 것입니다.

출처 :skdmltkfkdwnsla님의 플래닛입니다. 원문보기 글쓴이 : 하영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