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347

“ 꿈꾸는 아이 ” (창세기 37:3-11)

오늘 본문 말씀은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 소년으로서 그의 형제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로 시작합니다. 보통 족보라면 아브라함부터 시작해야 하는데 십 칠세 소년 요셉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담겨진 뜻은 과연 무엇일까요? 아브라함, 이삭, 야곱 모두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그 험난한 인생길을 신앙으로 이겨냈지만 그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을 완전히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야곱의 생애가 요셉의 꿈에 의해서 진정으로 시작된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아무리 큰 업적을 이뤘다고 하여도 내 자녀들이 엉망이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내가 시원찮아도 자녀들이 잘되면 부모의 삶도 영광스러운 것이 됩니다. 믿음의 대를 잇는 것, 이것처럼 소중한 것이 없습니다. 대를 이어가되 선대보..

“ 세겜에서 벧엘로 ” (창세기35:1-5)

예수님의 영성은 종교에 뿌리박은 영성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입니다. 종교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갈 때 하나님의 뜻과 창조 세계의 본질을 보게 되며 자연히 종교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향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모든 종교행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그분과 깊고 행복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을 향유하기 위한 가장 소중한 방편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살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여 혼란에 빠진 세상과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리더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동안 야곱은 20년의 길고 긴 고난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사람..

두려움과의 화해

개인이건 국가건 모두에게 풀기 어려운 난제가 있습니다. 우리들은 그 문제와 씨름하는데, 하나님께서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접근하십니다. 즉 그 문제 자체보다는 그 문제를 다루는 우리들과 씨름하십니다. 야곱은 천신만고 끝에 성공하여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그러나 오매불망 그리던 고향 땅을 눈앞에 두고도,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는 것은 형 에서와의 풀어야 하는 문제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십 년 전에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빼앗은 일과 눈물로 복수를 다짐하던 형 에서의 무서운 얼굴이 그의 발목을 잡은 것입니다. 머리를 감싸며 고뇌에 빠져 뒹구는 그 날 밤, 하나님의 사람이 나타났고, 야곱은 그를 알아보고 하나님의 축복을 요구하며 매달렸습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부조리한 세상을 이기는 길

주위를 둘러보면 비리와 부조리가 난무합니다.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런 세상을 향하여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누구든지 네 오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너희 원수를 사랑하고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속고 속이는 이 부조리한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 없이, 어떤 손해가 있어도, 그 어떤 명령도 지켜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을 ‘지고한 묵종’이라고 합니다. 곧 예수님께서 하신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연약하기 그지없는 지고한 묵종을 하라 하실까요? 지고한 묵종은 문제해결과 함께 아..

하늘로 통하는 문

하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문은 자동문입니다. 그 세계 안에 들어가기를 원하는 사람이 그 문 앞에 서기만 하면 그 문은 저절로 열립니다. 바보나 똑똑한 사람이나, 부자나 가난한 사람이나 전혀 차별이 없습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한 사람이나, 교회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조건은 단 하나, 그 문 앞에 바짝 다가서는 것입니다. 아담이 선악과를 먹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몸을 떨면서 간신히 아룁니다.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하나님께서 조용히 반문하십니다.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혹시 내가 너더러 먹지 말라 명한 그 나무의 실과를 네가 먹은 것이 아니냐?” 그러나 아담은 한사코 그 과일을 먹은 사실을 은폐하려고 합니다. 아무리 그것을 은폐한다고 하여도..

바보 이삭의 승리

‘이마고 데이’라는 라틴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의미합니다. 즉 ‘하나님의 이미지’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우리 인간들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들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내가 하나님의 형상을 이룰 때 하나님의 복을 받아 번성한다는 뜻입니다. 우리들이 그리스도의 몸이라면, 스스로의 이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야합니다. 내 자신을 증명하려고 애쓰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스런 형상을 입으려 노력해야 합니다. 곧 그리스도의 형상을 덧입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궁극적인 승리를 이룰 수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는 바로 그 이야기입니다. 이삭은 “벼 이삭”처럼 유약한 사람..

경박한 에서와 간교한 야곱

의미 요법을 창안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생의 참 의미, 제대로 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한 인생의 참 의미는 오직 고난 가운데서만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뛰어난 리더 가운데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으며, 오히려 고난이 리더가 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삭과 결혼한 리브가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성장하면서 다른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에서는 털이 많은 더 강한 사냥꾼으로 들판을 휘집고 다녔고, 야곱은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대조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으므로 힘이 세고 활발한 에서가 훨씬 성공할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는 장자로 태어났..

하나님의 예정

아브라함의 자녀 중에 욕산과 미디안이 있습니다. 이들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그 행위의 선악을 불문하고 중요한 역할을 담당합니다. 욕산은 앗수르 족속의 조상이 되는데, 앗수르는 이스라엘이 남북왕국으로 나뉜 다음 북왕국 이스라엘을 정복한 포악한 나라였습니다. 하나님은 이 앗수르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의 죄악을 심판하셨습니다. 미디안은 더욱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집트 사람을 죽이고 광야로 도망한 40세의 모세가 숨어든 곳이 바로 미디안 광야였으며,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는 모세의 장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드로는 모세가 위대한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기까지 여러 가지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한 개인은 절대로 하찮은 존재가 아닙니다. 나는 악한 욕산입니까, 선한 미디안입니까? 사람들은 많은 일들이 우연히, 또는..

‘따로’ 그리고 ‘함께’

어느 날 아브라함은 청지기 엘리에셀을 불렀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환도뼈 밑에 손을 집어넣게 하고 맹세를 시켰습니다. 이는 고대에 행하던 관습으로 남자들 간에 행하던 가장 친밀하고 가장 굳은 언약식입니다.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내 아버지의 집과 내 본토에서 떠나게 하시고 내게 말씀하시며 내게 맹세하여 이르시기를, 이 땅을 네 씨에게 주리라 하셨으니, 그가 그 사자를 네 앞서 보내실지라. 네가 거기서 내 아들을 위하여 아내를 택할지니라.”(창 24:7) 백세 때 얻은 아들 이삭을 위한 배필을 구해오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가나안 여인 중에서는 선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가인과 이스마엘은 자신들이 원하는 여인들과 결혼하였습니다. 그리고 제 갈 길로 감으로써 그들은..

모리아 산에 올라

아무리 훌륭한 말과 마차, 철저한 준비와 유능한 마부가 있다고 하더라도 방향이 틀리면 영원히 목적지에는 도착할 수 없습니다. 오히려 목적지에서 점점 더 멀어질 뿐입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이런 잘못을 흔히 발견할 수 있습니다. 성수주일과 십일조, 기도와 말씀생활, 교회 봉사에도 몸을 아끼지 않습니다. 목사님의 말씀에도 철저히 순종합니다. 흔히 이런 사람들을 가리켜 믿음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믿음이 가장 좋다고 자타가 인정한 사람들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예수님도 바리새인들의 열심을 인정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 5:20)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그 믿음이 좋다는 바리새인들과 예수님은 늘 충돌하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