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영성은 종교에 뿌리박은 영성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입니다. 종교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고 닮아갈 때 하나님의 뜻과 창조 세계의 본질을 보게 되며 자연히 종교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자유를 향유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모든 종교행위들은 하나님과의 만남과 소통을 통해 그분과 깊고 행복한 관계를 맺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복을 향유하기 위한 가장 소중한 방편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온 몸으로 살아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성장하여 혼란에 빠진 세상과 사람들을 빛으로 인도하는 위대한 리더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동안 야곱은 20년의 길고 긴 고난을 잘 참고 견뎠습니다. 얍복강 가에서 하나님의 사람과 씨름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당당히, 겸손히 형 에서와 화해하였습니다. 최대 난제까지 해결된 것입니다. 함께 살자는 에서의 제안을 간곡히 거절한 야곱은 “숙곳”이라는 곳에 정착을 하였습니다. 몇 년 후에는 세겜에서 하몰의 아들들로부터 은 일 백 개를 지불하고 땅을 사는 일까지 행했습니다. 은 한 개는 양 한 마리의 가치로, 그 땅은 대단히 넓은 곳입니다. 그야말로 불행 끝 행복 시작입니다. 하지만 세겜에서 예기치 않은 일이 생깁니다. 야곱의 딸 디나가 밖으로 나갔다가 험한 일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야곱이 땅을 산, 그 지방 추장 하몰의 아들 세겜에게 강간을 당한 것입니다. 여동생이 당한 일에 대하여 오빠들이 대노하였습니다. 그리고 속임수로 승리를 얻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아들들이 마치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신앙의 승리를 얻은 것으로, 그들은 정당화 되고, 다른 이들은 부러워하고, 나도 그리 하리라 결단까지 합니다. 이렇게 야곱의 아들들은 승리에 환호성을 올렸으나, 야곱은 그 승리가 재앙의 전조임 알아차렸습니다. 야곱은 그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이 땅 사람에게 냄새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 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려니 그리하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세기 34:30)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단을 쌓으라.”(창세기 35:1) 세겜을 떠나 벧엘로 가라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위한 숙곳을 떠나 하나님을 만나고 동행하는 벧엘로 가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난제의 유일한 해결책입니다.
야곱은 그의 식솔들에게 다음과 같이 명령합니다. “너희 중에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바꾸라.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나의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나의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단을 쌓으려 하노라.”(창 35:2-3) 이러한 야곱의 결정을 보면서 야곱이 왜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게 됩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의도를 정확히 즉각적으로 파악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바로 깨달았습니다. 야곱은 영민한 사람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영적으로 민감한 사람입니다. 야곱은 식솔들을 거느리고 하나님이 가라하는 벧엘을 향하여 길을 떠났습니다. 양 백 마리 값을 치르고 산 땅과 자신들이 애써 점령한 세겜 땅도 깨끗이 포기해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불러 “가라” 하십니다. 이것이 모든 인간에게 주어진 “일반 소명”입니다. 하나님의 가라하는 곳은 사람들에 따라 각자 다릅니다. 이것이 “특별 소명”입니다. 내게만 주어진 특별 소명을 찾아내고 그 소명을 성실히 이루는 것이 인생입니다. 곧 벧엘로 가는 여정입니다. 내가 가야할 벧엘은 어디입니까? 각자 찾고 가야합니다. 하나님의 가라하는 곳을 향해서 열심히 평생 동안 가야 합니다. 중도에 멈추는 것은 세겜에 머무는 것이며, 어두움에 머무는 것이며, 이것이 곧 죄입니다. 죄란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그 뜻은 “과녁을 빗나가다.”입니다. 죄는 악한 행위를 의미하기 이전에, 마음과 영혼의 불안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과녁에 빗나가고 있기 때문에, 부르심의 목적에 타당하지 않는 삶을 살기 때문에, 영혼의 평정이 깨져버린 것입니다. 세겜에서의 정착은 하나님의 과녁으로부터 빗나간 것이었습니다. 야곱은 벧엘로 향하므로 그 궤도를 수정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의 다양한 목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부르심이 우리가 맞춰야 할 과녁이고 내 삶을 수정해야 할 좌표입니다.
“너희를 불러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다.”(고전 1:9)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위해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십시오.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골 3:15) “오직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셨느니라.”(벧전 2:20,21)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고 닮으라고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그리하여 마침내 하나님의 영광에 돌입하라고 우리들을 부르셨습니다.
숱한 말들이 난무하는 총체적 혼란의 시기입니다. 은밀한 말과 행동도 모두 밝혀지리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을 창조하시고 운행하시는 하나님께서 전면에 나서신 것입니다. 노아의 때를 기억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은 혼란의 시대에는 참 하나님의 사람들을 사용하셔서 시대를 정리하십니다. 곧 우리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참 지혜와 지식을 공급받아 각 처소에서 혼란을 하나님의 평강과 영광으로 전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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