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 유다와 며느리 다말 ” (창세기 38:20-30)

새벽지기1 2021. 5. 12. 03:56

성경에는 때때로 전혀 관련이 없는 사건이 불쑥 등장하기도 합니다. 창세기 36, 37장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미디안 사람에게 팔려 가는 꿈꾸는 청년 요셉의 관한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가 애굽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린 일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그리고 38장에서는 뜬금없이 시아버지 유다와 며느리 다말이 벌인 대단히 불쾌한 사건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다시 39장에서 보디발의 집안에서 살아가는 요셉의 이야기가 계속됩니다.

요셉의 꿈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허락하신 “믿음의 장자권”을 의미합니다. 이 “믿음의 장자권”이 창세기 38장을 바르게 이해하도록 하는 키워드입니다. 야곱의 열 두 아들의 순서는 이렇습니다. 르우벤, 시므온, 레위, 유다의 순서입니다. 이것이 장자 계승권의 서열입니다. 그런데 장자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통간하는 사건으로, 두 번째, 세 번째 아들인 시므온과 레위는 창세기 34장에 기록된 사건, 즉 할례를 빙자하여 디나에게 몹쓸 짓을 한 세겜의 집안을 몰살시킨 죄로 인해 장자권에서 각각 떨어져 나갑니다.

이제 유다가 야곱 집안의 실질적인 장자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창세기 38장에서는 그 유다마저 장자권을 상실하게 되는 과정을 자세히 보여줍니다. 여기서 우리는 혼란을 종식시키는 하나님의 원칙을 배우게 됩니다.

유다는 먼저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아내로 삼는 잘못을 범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을 전혀 고려치 않은 채 이방여인과 결혼함으로 이스마엘과 에서의 실패 원인을 답습하게 됩니다.

그에게는 세 아들 엘과 오난과 셀라가 있었습니다. 큰 아들 엘은 다말이라는 가나안 여인과 결혼하였지만 하나님 목전에 악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을 거둬 가셨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둘째 아들 오난으로 하여금 당시의 풍습에 따라 형수 다말을 아내로 삼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난도 “형에게 아들을 얻게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땅에 설정하는 잘못을 범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생명도 거둬 가셨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막내 아들 셀라뿐이었습니다. 하지만 유다는 셀라마저 죽을까봐 그가 어리다는 핑계로 며느리 다말을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계속되는 불행의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찾지 아니한 것입니다.

유다의 불신앙을 보여주는 또 다른 증거가 있습니다. 가나안 여인 아내가 죽은 다음, 유다는 딤나로 가서 한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그 여인은 거리의 여자로 변장한 며느리 다말이었습니다. 우리말 “창녀”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의미의 “조나”와 이방신 아스다롯을 섬기기 위해 헌신된 “케데솨”로 나누어집니다. 당시 사람들은 케데솨와의 관계를 통해 생식력을 관장하는 아스다롯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유다는 다말을 아스다롯에게 속한 여자로 알았습니다. 쾌락 외에도 아스다롯의 번영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로서는 두 아들과 아내마저 죽었으니 더 많은 자식을 원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석 달이 지나 고향으로 돌려보낸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여 잉태하였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당시 간음죄는 사형에 해당됐기 때문에 유다는 다말을 끌어내어 불사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말과 동침한 사람이 본인임을 알게 된 후 더 이상 그 책임을 묻지 않게 됩니다. 그리고 달이 차서 다말은 쌍둥이 세라와 베레스를 낳게 됩니다.
이런 잡다하고 소소한 이야기를 통하여, 첫째는 유다는 장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3 말씀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를 낳고, 유다는 다말에게서 베레스와 세라를 낳고, 베레스는 헤스론을 낳고, 헤스론은 람을 낳고”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는, 요셉의 혈통이 아닌, 유다와 베레스로 이어지는 혈통에서 출생하였습니다. 죄악 중에 출생한 베레스가 하나님의 구속사의 주역으로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느니라.”(로마서 3:23-24) 창세기 38장의 사건을 통해 육신의 장자권은 무의미하다는 것을 재천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마엘은 이삭보다 열 세 살 많았고, 에서는 야곱보다 먼저 태어났으며, 르우벤과 시므온과 레위, 유다는 요셉보다 먼저 태어났고, 장자의 표식인 붉은 줄은 세라가 가지고 있었음에도 모두 믿음의 장자권은 허락받지 못했음을 다시 확인하고 있습니다.

해바라기는 언제나 태양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래서 튼실한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믿음의 장자인 성도들은 언제나 주님만을 바라봅니다. 그러는 동안 참 신앙의 튼실한 알곡을 추수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롬 8:19) 이 혼란의 시대에 하나님의 자녀들인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의 원칙을 깨닫고, 우선 내 자신이 하나님의 원칙을 바로 세우는 ‘믿음의 장자’가 되는 일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통하여 혼란을 정리하시고 새로운 세계를 조금씩 열어 가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장자로서 하나님 영광의 선두와 그 중심에 서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