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컬럼3

경박한 에서와 간교한 야곱

새벽지기1 2021. 5. 4. 06:52

의미 요법을 창안한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생의 참 의미, 제대로 된 목표를 추구하는 사람만이 제대로 건강하게 행복하게 살 수 있고, 또한 인생의 참 의미는 오직 고난 가운데서만 배울 수 있다.”고 말합니다. 뛰어난 리더 가운데 고난을 겪지 않은 사람들이 없으며, 오히려 고난이 리더가 되는 필수적인 조건이라는 것입니다.

이삭과 결혼한 리브가는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하였고, 하나님은 리브가에게 쌍둥이를 주셨습니다. 야곱과 에서는 성장하면서 다른 모습이 더욱 두드러지게 나타났습니다. 에서는 털이 많은 더 강한 사냥꾼으로 들판을 휘집고 다녔고, 야곱은 집안에서 조용히 지내는 대조적인 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유목민이었으므로 힘이 세고 활발한 에서가 훨씬 성공할 조건을 갖춘 사람입니다. 더욱이 그는 장자로 태어났으므로 성공은 보장되어 있었고, 아버지의 편애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성공을 보장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둘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는 어린 자를 섬기리라.”(창 25:23). 왜 모든 조건에서 훨씬 유리한 에서가 약한 야곱을 섬기게 된다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운명을 그렇게 결정하셨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기독교는 그 어떤 운명론도 거부합니다. 하나님께서 태어날 때부터 그렇게 정하셨다면 결코 ‘공평하신 하나님’, 무엇보다도 ‘사랑의 하나님’이 아닙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라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른 요건을 충족시켜야 하며, 그 요건은 그 누구도 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성경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이 계시되어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계시는 특별하고 총명한 사람만이 이해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불공평한 처사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는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실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훗날, 여러 유리한 조건을 갖춘 에서가 불리한 야곱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 원인을 성경은 단 한 마디로 밝힙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 25:34) 에서의 경박성이 결정적인 문제였습니다.

야곱은 집에서 붉은 죽을 맛있게 끓였습니다. 그 때 에서가 사냥을 나갔다가 허기진 채로 돌아 와서 야곱에게 “그 죽 좀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야곱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렇게 제안하였습니다. “형의 장자의 명분을 오늘날 내게 팔라”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고픈 에서는 장자의 명분을 팔고 맹세까지 합니다. 그렇게 해서 장자의 명분은 야곱에게 넘어가 버렸습니다. 에서는 강한 육체와 능력과 장자로서의 특권에도 불구하고 경솔한 사람, 경박한 사람이었습니다. 본질을 보지 못하는 이러한 경박성은 저주처럼 사람들을 실패로 몰아가며 비극적인 파국을 맞게 합니다.

예수님의 두 가지 가르침을 마음에 새깁시다. 첫째,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예수님 고별 설교의 마지막 당부입니다. 둘째,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 10:16) 이 두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준비하면 이리들이 득실거리는 세상에서도 얼마든지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담대하라. 순결하다. 지혜로워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교회와 목회의 사명은 성도들을 ‘준비된 선’으로 아버지께서 선물로 주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누리며 베풀며 살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뜻과 마음을 먼저 정확히 읽어내야 합니다. 이를 훼방하는 것이 바로 기복신앙입니다. 기복신앙의 맹점을 정확히 인식하셔야 합니다. 기복신앙은 경박성과 피상성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의 영성은 종교에 뿌리박은 영성이 아니라, 현실에 뿌리박은 영성입니다. 기도를 노동처럼 하면 노동 없이 잘 산다는 뜻이 아니라, 기도하는 마음으로 노동, 즉 맡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곧 지혜를 구하며 맡은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준비된 선’이 되는 유일한 길입니다. 당연히 부와 명예가 보너스로 주어집니다.

야비한 야곱에게서 배울 점이 하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리라.”(마 11:12)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그것을 얻기를 갈망하는 사람에게 결국 천국이 허락된다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간절한 마음이 있었고 에서는 없었습니다. 야곱은 장자권을 얻기 위해 고투를 하는 동안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고, 그 장자권에는 엄청난 것이 들어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이런 말을 합니다. “곧 육신의 자녀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롬 9:8)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이 사물의 본질과 자신의 깊은 중심을 보는 것입니다. 깊은 것을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령의 도우심을 필요로 합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하나님의 말씀의 깊고 깊은 데까지 도달한 사람은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곧 삶의 의미를 찾은 것입니다. 이 건강한 신앙인은 닥친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받아들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목해야 하는 것은, 리브가의 뱃속에 에서와 야곱이 함께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의 내면 깊은 곳을 들여다보십시오. 에서의 경박성과 야곱의 간교함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기에 달려 돌아가실 때, 양옆의 두 강도도 십자가에 달렸습니다. 한 강도는 예수님께 간청합니다.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생각하소서.”(눅 23:42) 그러나 또 다른 강도는 주님을 조롱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그리스도가 아니냐? 너와 우리를 구원하라.”(눅 23:39) 이 두 강도의 심정은 우리 안에 있는 두 마음입니다. 구원받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과 함께, 아무렇게나 살고 싶은 충동도 함께 있습니다. 에서와 야곱의 치열한 싸움의 현장은 다름 아닌 바로 내 마음입니다. 이 싸움은 죽음의 순간까지 계속되는 끈질긴 싸움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8) 사도 바울은 그 동안 유익하다고 여기며 자랑하였던 그 모든 것들을 해로운 것으로, 배설물로 여기며 과감하게 버렸습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가장 소중한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그 귀한 것을 세상 것과 바꾸지 않기를, 예수님을 닮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무한 은혜를 향유하며 고귀한 삶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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