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1973

해 질 때 (막 1:32)

'저물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자를 예수께 데려오니' (막 1:32) 시몬의 장모는 이제 온전한 정신을 차렸습니다. 동네 사람들에게 이 사건이 얼마나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졌을는지는 볼을 보듯 분명합니다. 이 동네 저 동네 이 소문이 삽시간에 퍼졌겠지요. 사람들은 병자들과 귀신 들린 사람들을 예수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그 때가 “저물어 해 질 때”라고 합니다. 야간 조명이 거의 없었던 고대 사회에서 해가 진다는 건 낮에 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을 접어야 할 때입니다. 낮과 밤의 경계인 바로 그 순간에 예수님에게는 일거리가 많아진 셈입니다. 어린 시절의 저는 “해 질 때”를 무척 좋아했습니다. 낮의 역동성과 밤의 평화와 달리 이 저녁은 저에게 신비롭게 다가왔습니다. 가정환경이 좋지 못했던 까닭이..

섬김의 본질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막 1:31) 열병이 치료된 시몬의 장모는 예수님 일행에게 수종을 들었다고 합니다. 수종을 들었다는 건 밥과 음료를 대접하고, 편히 쉴 수 있도록 시중들었다는 말이겠지요. 열병에서 치료되자마자 곧 그렇게 활동할 수 있을까, 하고 이상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본문은 예수님의 능력으로 열병이 치료되었다는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지 그 치료가 즉시 이루어졌는지 상당한 시일이 지난 것인지를 말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이 본문에서 세 가지 사건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손을 잡았고, 열병이 떠나고, 시중들었다는 게 그것입니다. 열병이 떠나 제정신을 차린 증거가 바로 시중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는 시중들기보..

예수의 손 (막 1:31)

'나아가사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열병이 떠나고 여자가 그들에게 수종드니라.' (막 1:31) 복음서의 정보에 따른다면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서 장가 든 이는 시몬 한 사람입니다. 바울의 편지에는 이와 약간 다른 정보도 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전 9:5) 이 구절에 의하면 아내가 있는 사도들이 제법 되는 것 같습니다. 이들이 처음부터 결혼한 상태였는지 아니면 훗날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꾸리면서 결혼한 건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초기에는 시몬만 장가들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그의 장모가 돌연사할지도 모를 위험에 빠졌으니까 예수님 일행이 그녀를 돕기 위해서 시몬의 집으로 왔다는 건 자연스러운..

시몬의 장모 (막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여수께 여짜온대' (막 1:30) 시몬의 장모가 열병에 누웠다는 보도만 염두에 둔다면 예수님 일행이 시몬 형제의 집을 방문한 이유가 분명해집니다. 이 여자는 왜 딸의 시댁에 온 것일까요? 사돈댁에서 산다는 건 아주 불편한 일인 텐데 말입니다. 이 여자의 운명이 좀 기구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돈댁에서 살게 된 것인지 아니면 병이 들어 일시적으로 잠시 들른 건지 우리는 지금 정확한 걸 모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사람들을 잘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는 소문을 듣고 사위를 통해서 도움을 받기 위해 사돈집으로 찾아온 것인지 모릅니다. 우리의 상상력을 조금 더 발휘해볼까요? 이 여자에게는 딸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이 딸을 믿음직..

시몬 형제의 집 (막 1:29)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막 1:29) 회당에서 나오신 예수님은 야고보 형제와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셨다고 합니다. 앞서 17,18절에서 시몬 형제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물을 버려두고 따라나섰습니다. 그것은 영적인 세계를 위해서 세속적인 세계를 버리는 일종의 출가(出家)입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종교적인 진리를 선택한 사람들은 출가를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일종의 구도는 자신의 온 영혼을 투자해야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불교에서는 승려의 나이를 따질 때 실제의 나이보다는 법력을 따진다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자연인으로서의 나이보다는 종교적인 세계로 나선 이후의 나이가 중요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이런 점에서 시몬 형제들이 사람을 낚는 ..

예수의 소문 (막 1: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막 1:28) 21절부터 시작한 예수님의 회당 사건이 이제 28절에서 끝납니다. 마가복음 기자가 여기서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핵심이 바로 28절 말씀이겠지요.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갈릴리의 한 촌 나사렛에서 자란 예수에 관한 소문이 아직 유대까지는 못 내려갔지만 공생애 초기 단계에서 갈릴리에 전 지역에 퍼졌다는 건 대단한 일입니다. 그만큼 예수 사건이 쇼킹했다는 뜻입니다. 그 당시 사람들의 눈에 예수님은 어떻게 비쳤을까요? 복음서의 보도에 따르면 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따랐던 적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소위 오병이어 사건 당시에는 남자 성인만 5천명이 모였다고 하니까, 그런 보도가 아무리 과장되었다고 하더라도 상당이 많은..

귀신이 순종하는 언어의 능력 (막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마가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공생애 사건 중에서 시몬 형제와 안드레 형제를 제자로 삼은 것 말고는 최초의 이야기가 바로 이 회당 사건입니다. 이 회당에서 사람들을 놀라게 한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가르침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능력입니다. 이걸 한 마디로 줄이면 ‘언어의 능력’입니다. 예수님의 언어는 앎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동시에 능력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사람은 권위 있는 앎을 경험했으며, 귀신 축출이라는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말씀이 안고 있는 존재론적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귀신에게 명..

서로 묻다. (막 1: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막 1:27) 오늘 본문의 구조는 22절과 흡사합니다. 두 구절이 모두 예수님의 권위에 사람들이 놀랐다는 사실을 지적합니다. 22절의 가르침과 27절의 명령에 권위가 있었다는 건 곧 기존의 것과 달랐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은 서기관들과 다른 걸 가르치셨으며,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축귀능력을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이 서기관들의 가르침과 전혀 다른 권위를 확보하고 있었다는 건 이해가 가지만, 축귀능력 문제는 약간 혼란스럽게 보이는군요. 왜냐하면 그 당시에는 이렇게 귀신을 내어 쫓는 사람들이 제법 많았을 테니까요. 이런 문제는 훨씬 복잡한 역사비평을 거쳐야 하니까 여기서는 접도..

귀신 발작 (막 1: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막 1:26) 귀신 이야기가 계속되고 있습니다. 요즘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별로 하지 않지만 옛날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그런 이야기를 한 것 같습니다. 요즘도 어린아이들, 특히 소녀들이 귀신 이야기를 자주 하긴 합니다. 심지어는 가족사진에 오랜 전에 죽은 사람이 나타났다는 식의 이야기들은 공중파를 타기도 합니다. 그런 걸 생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우리의 삶이 불안하기도하고, 불확실하다는 의미이겠지요. 오늘 이야기도 묘사된 그것만을 따른다면 어떤 사람이 실제로 귀신이 나가는 장면을 직접 보고 쓴 것 같이 보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보이지 않는 영으로 생각하듯이 귀신도 역시 보이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를..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막 1:25)

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막 1:25) 예수님은 귀신들린 사람을 향해서 잠잠하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귀신들린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 안에 자리하고 있는 귀신을 향한 말씀이겠지요. 이런 묘사만을 근거로 본다면 결국 귀신은 장소 이동이 가능한 어떤 실체인 셈입니다. 군대귀신(레기온) 들린 사람 이야기에서도 그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와서 돼지 떼에게로 들어간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성서의 이런 보도를 귀신의 실체에 대한 근거로 제시할 수 없습니다.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계를 이해했던 고대인들의 생각을 문자의 차원에서 우리가 그대로 추종할 필요는 없습니다. 예를 들어봅시다. 여기 인형과 놀고 있는 한 여자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