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매일 묵상 1973

예수가 오신 이유? (2)(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8) 어제 우리는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 오셨다는 명제에 관한 몇 가지 생각들을 정리했습니다. 우리는 오늘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해서 크게 영향 받지 않은 것으로 보이는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는 말씀에 관심을 기울이려고 합니다. 이 구절은 십자가 사건의 기계적 결정론과 달리 예수님의 역사적 계기를 매우 정확하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본문에 따르면 예수님은 “전도하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너무나 단순하지요? 이 문구는 제 말이 아니라 오늘 성서 본문이 스스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설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오셨다고 말입니다. 앞서 병자를 고치거나 귀신을 내쫓..

예수가 오신 이유? (1)(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8) 예수님이 당신을 찾는 사람들에게 반응하지 않으셨다는 건 그에게 인간미가 없다는 게 아니라 훨씬 근원적인 것에 마음을 두었다는 뜻입니다. 물론 이 본문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른 대답이 나올 수도 있겠지만 필자의 생각에는 그렇습니다. 다른 마을로 가자고 말씀하신 다음에 예수님은 그곳에서도 전도할 것이며, 그것이 바로 자신이 세상에 온 목적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 본문은 예수님의 오리지널 말씀에 가깝습니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아직 케리그마의 영향이 없어 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이 말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단순히 전도하기 위해서 ..

다른 마을 (막 1:38)

'이르시되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거기서도 전도하리니 내가 이를 위하여 왔노라 하시고' (막 1:38) 사람들이 당신을 찾는다는 제자들의 말을 들은 예수님은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다른 가까운 마을들로 가자.” 예수님의 이런 말씀은 상황적으로 볼 때 약간 이상합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찾는다고 한다면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게 당연한 건데 예수님은 동문서답의 반응을 보이셨습니다. 사람이 크게 실망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의 전도 사역이 시급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게 아닌가 하고 생각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에 하루가 급한데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들을 일일이 만날 수는 없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전도 사역 때문에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고 ..

주를 찾는 사람들 (막 1:37)

'만나서 이르되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막 1:37) 예수님의 기도 장소까지 따라간 시몬과 동료들은 예수님에게 이렇게 말씀을 드렸다. “모든 사람이 주를 찾나이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는 이유는 앞서 예수님이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셨기 때문이다. 복음서 기자들의 이런 설명에 따르면 예수님을 통해서 발생한 이러한 사건들이 바로 사람들이 예수님을 주목하게 된 이유들이다. 예수님을 통해서 왜곡된 삶이 정상으로 돌아오는 사건은 바로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알려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런 사건들은 모두 잠정적이라는 사실을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된다. 예수님을 통해서 병이 낫는다거나 귀신들림에서 놓임을 받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여전히 삶의 근본적인 한계에서 벗어나..

따름의 맹목성 (막 1:36)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예수의 뒤를 따라가' (막 1:36) 오늘 본문에 따르면 “시몬과 및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이 기도하러 가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고 합니다. 여기서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누구일까요? 앞에서 제자로 부름 받은 네 명 중에서 시몬을 제외한 세 명을 일컫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그들은 안드레, 야고보, 요한이겠지요. 그들이 제자들뿐이라고 했다면 마가가 그들의 이름을 거명했을 겁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그와 함께 있는 자들”은 이들 세 명의 제자들만이 아니라 예수님 일행과 합류한 그 이외의 사람들일 가능성도 높습니다. 그들은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고 계신 예수님의 “뒤를 따라”갔다고 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기도하시던 한적한 곳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걸까요? 아니면 예수님..

예수님의 기도 (막 1:35)

'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예수님이 새벽에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셨다는 오늘 본문의 보도는 예수님에 관한 설명 중에서 매우 특이한 경우입니다. 물론 예수님이 기도에 대한 비유도 말씀하셨고, 실제로 ‘주기도’를 가르쳐주시기도 했으며, 변화산 아래서 간질병 아이를 고치실 때 기도 외에는 이런 종류의 능력이 나갈 수 없다고 말씀하시기도 했지만 당신 자신이 기도를 드리셨다는 이야기는 별로 없습니다. 공생애 시작 전에 있었던 40일 간의 광야생활은 기도보다는 금식과 사탄의 시험이 중점적으로 언급된 이야기입니다. 그 보도를 자세하게 읽어보면 예수님이 광야에서 기도하셨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사족으로, 요즘 40일간의 금식 기도를 드리면서 예..

새벽 (막 1:35)

'새벽 아직도 밝기 전에 예수께서 일어나 나가 한적한 곳으로 가사 거기서 기도하시더니' (막 1:35) 오늘 본문은 예수님이 새벽에 일어나 한적한 곳으로 가시어 기도하셨다고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매일 새벽에 일어나셨는지, 그리고 정기적으로 그렇게 기도하셨는지 정확하게 알지는 못합니다. 예수님이 늦잠도 주무셨을 거라고는 상상하기 힘들군요. 복음서 기자들은 예수님의 삶을 자세하게 전달하려는 게 아니라 그분이 바로 구약성서가 예언하고 있는 메시아라는 사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복음서를 바탕으로 역사적 예수님을 복원한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다만 우리는 예수님이 그 당시 율법주의자들이나 금욕주의자들처럼 어떤 종교적 경건에 모범을 보인 분은 아니지만 고도로 영적인 분이셨기 때문에 나름으로..

귀신 (막 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막 1:34) 예수님은 앞서 회당에서도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고, 이제 시몬의 집에서도 역시 많은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복음서의 이런 보도 앞에서 지성적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는 약간 당혹스럽습니다. 과연 이런 보도를 그대로 믿어도 될까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성서 텍스트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탈신화화(脫神話化)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고대인들의 신화적 표상으로 묘사된 이런 보도를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그 신화 자체에 묶이지 말고 그 신화의 실존론적 세계로 들어가야 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서 텍스트에서 실존만 건지고 만다면 도대체 그리스도교 신앙이 살아..

병 고침 (막 1:34)

'예수께서 각종 병이 든 많은 사람을 고치시며 많은 귀신을 내쫓으시되 귀신이 자기를 알므로 그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시니라.' (막 1:34) 복음서에는 예수께서 많은 병자들을 고치셨다는 보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개별적인 치료 행위도 나오고, 그것에 대한 일반적인 묘사도 나옵니다. 오늘 본문은 후자의 경우입니다. 이런 보도만 따른다면 예수님의 활동은 거의 질병 치유에 치중한 듯이 보입니다. 도대체 메시아로서의 예수님과 질병 치유는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이런 질문은 질병에 대한 고대인들의 생각과 연관됩니다. 이미 복음서에도 그런 단서가 나옵니다만 히브리인들은 병을, 특히 난치병을 죄와 연결시켰습니다. 그 죄는 악한 영이 활동한 결과입니다. 욥기서는 욥이 당한 대재난을 하나님의 징벌로 설명합니다. 그..

그 문 앞 (막 1:33)

'온 동네가 그 분 앞에 모였더라.' (막 1:33) 마가가 보도하고 있는 예수님의 초기 공생애는 매우 드라마틱합니다. 제자 네 명과 함께 시작한 하나님 나라 운동은 회당에서 새로운 교훈을 전하시고 귀신을 내어 쫓는 일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회당에서 나온 예수님은 시몬의 집에서 대기하고 있는 시몬의 장모를 치료하셨습니다.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이 ‘해 질 때에’ 모든 병자와 귀신 들린 이들을 예수에게 데리고 왔습니다. 이런 상황을 마가는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온 동네가 그 문 앞에 모였더라.” 예수님 일행은 아직 시몬 형제의 집에 머물고 있는 중입니다. 여기서 ‘문’은 이 집을 뜻합니다. 온 동네 사람들이 시몬의 집 앞에 모였습니다. 시몬의 부모들과 형제들은 생전 처음 보는 장면에 깜짝 놀랐을 겁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