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박형호의 포토에세이 182

열정

열정 미쳤나 보다 내가 미쳤나 보다 단단히 미쳤나 보다 그놈의 사진이 뭐라고 허구한 날... 새벽부터 나돌아 다닌다 휴일마다 틈마다 밤에도 낮에도 카메라 들쳐 메고 산에서 해변에서 강가에서 늪에서 뷰파인더를 들여다본다 황금연휴 집나 온지 삼일째 감기 기운에 그러거나 말거나 새벽을 열고 다닌다 구름에 가린 하늘도 쳐다보고 희미한 안개도 쳐다보고 따스한 기운 느끼고 뛰쳐나온 봄꽃들과 인사하느라 땅바닥에 배 깔고 등 깔고... 늦은 아침은 오후 세시반 라면 한 그릇 미쳤나 보다 내가 미쳤나 보다 단단히 미쳤나 보다 거울을 보니 새빨간 토끼눈 양 눈의 실핏줄이 다 터졌다 내 마음의 열정처럼 빨갛게 물들었다

우포 어부

황량하고 쓸쓸한 겨울.... 우포는 그 겨울의 느낌을 스케치하고 있다. 물결 위로 작은 쪽배가 장대질에 밀려오고, 어부는 무심히 그물만 걷어 올린다. 걸린 물고기를 떼어낼 때 멈칫할 뿐 표정 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그의 얼굴에서 오랜 삶의 고단함이 풍겨져 온다. 하늘에서 햇빛이 쏟아진다. 눈이 부시다. 그 빛 속을 지날 때도 익숙한 장대질만 반복한다. 반짝이는 물결 속에 한숨이 녹아든다. 잠시 생각에 잠겨 본다. 내 아버지의 삶도 저렇게 고단하고 외로웠으리라. 나의 삶도 때로는 즐거움과 행복함에 때로는 힘든 마음의 짐 때문에 고독함에 묻힌 적이 있었지. 고요한 정취 우포의 긴 세월만큼 어부의 애환도 깊어만 간다.

"창"

"창" 벽을 볼 때마다 막막함을 느꼈다. 나를 막아선 그 경계 너머가 궁금하기도 하였다. 벽은 사람과의 관계일 수도, 물질적 한계일 수도 있지만 마음속 한계가 먼저이다. 살면서 많은 벽을 느끼고 부딪혀야 하는 현실, 극복 여부를 부여받은 그 벽은 영원한 삶의 과제이다. 겨울 오후 작은 숲속을 지나서 들린 커피하우스 진한 커피향과 더불어 앞에 홀연히 나타난 그림 같은 창, 벽에 생명을 불어넣은 그 창에 한참 동안 마음을 빼앗겼다. 2016. 1. 2. 커피박물관 "바움"에서

우연

우연 여름날 새벽 잠시 틈을 내어 인근에 있는 산을 오른다. 끈끈한 한여름 습기가 주변을 감싸고 쏟아지는 땀은 열기를 뿜는다.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자욱한 안개가 몰려왔다 걷히며 숲 속은 천상이 된다. 내가 신선인 듯 착각에 빠져 정신없이 걷는다. 저만치 가다보니 낙엽더미에 황금색 꽃이 피었다. 구르듯이 달려가니 노란색 그물 망토를 두르고 있는 망태버섯이다. 어쩌면 저렇게도 신기하게 엮었을까? 멋진 자태에 넋을 잃고 이리저리 살펴본다. 노란색 망태버섯을 찍으려 수없이 이산, 저산을 돌아다녔으나 만날 수가 없었다. 우연이란 이런건가 보다. 만들고자 하여도 되지 않는데 이렇게 만나고 보니 어느새 습기의 끈적함도 상쾌함으로 바뀐다. 언제 올지 모르는 우연, 마음이 즐거운 일이다.

타래 란초

타래 란초 밤새 비가 내렸다. 새벽에 찌뿌둥함을 떨치려 우산 하나 챙겨 들고 산책길을 나선다. 이슬비가 촉촉이 내린다. 나뭇잎, 풀잎에 맺힌 빗방울이 싱그럽다. 우산 위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도 상쾌하다. 항시 그 자리에 있는 자연이지만 늘 새로움을 주는 것이 기특하다. 한 발, 두 발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들숨, 날숨도 빨라진다. 싱그런 초록 사이로 작은 꽃들이 피었다 진다. 피는 꽃들마다 귀엽고 앙증맞다. 시들은 꽃잎은 애처롭지만 외면하게 된다. 간사한 마음이지만 어쩔 수 없다. 숲을 지나 풀밭을 지나니 분홍색 작은 꽃이 반긴다. 눈에 클로즈업되어 들어온다. 타래 란초다. 꼭 이맘때면 찾아온다 약속이나 한 것처럼.... 연분홍 작은 꽃이 나선형으로 춤을 추며 올라가고 작은 꽃에 매달린 아기 사마귀, 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