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비가 내린다. 선천적 성격인지 후천적 심성인지는 잘 모르지만 언제부턴가 비 내리는 날을 좋아하고 있었다. 촉촉이 땅이라도 젖게 되면 우산 하나 받쳐 들고 이 동네 저 동네를 헤매어 걷기도 하고, 고요한 절 숲을 서성거려 보기도 한다. 비 냄새.... 뭐라고 단정지을 수 없지만 낙엽 부스러기나 젖은 땅의 독특한 냄새는 사람의 마음을 끌리게 하는 무언가가 있다. 짙으면서도 표현하기 힘든 특유의 냄새, 진한 커피의 향과 다른 듯 다르지 않는 냄새, 그 냄새에 잔뜩 취한 기분은 딱히 뭐라고 결정지어 말하기가 쉽지 않다. 그냥 싸늘한 가을날 혀에 감기는 신선한 예가체프 한잔의 느낌이라 하자. 그렇게 비의 느낌들은 나를 부르고 길을 따라 나서게 한다. 물기를 가득 담은 공기는 안개라는 포장지로 세상의 풍경을 무채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