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박형호의 포토에세이 182

숲속의 여름

산을 오른다. 사람들이 많이 오르지 않는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는 맛이 제법 좋다. 숲 속 어딘가에서 실려오는 향긋한 내음..... 어딘가 꽃이 피어있다는 것이다. 참 좋은 느낌, 숲 속에 와야 느낄 수 있는 느낌이다. 한발, 두 발 오르며 자연에 녹아드는 사이 온몸이 땀에 젖는다. 쏟아지는 땀을 식히려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알몸으로 계곡물에 몸을 담가 본다. 보는 이 없으니 이 또한 얼마나 자유로운 일인가. 물에 몸을 담근 채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 보니 녹색의 잎에 가려진 하늘에서 언뜻 언뜻 쏟아져 내리는 햇빛이 눈부시다. 쉰두 살의 여름이 싫지만은 않다. 하산길의 털중나리가 예쁜 모습으로 잘 가시라 인사를 한다.

냉이꽃 합창

냉이꽃 합창 연둣빛 숲길을 오른다.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숨은 차오르지만 하늘을 가린 고운 나뭇잎들의 반짝거림에 즐거움이 앞서고, 그렇게 한참을 오르다 이마에 한줄기 땀이 타고 내릴 때쯤 바위에 걸터앉아 숨 고르기를 한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앞을 보니 작은 꽃들의 노래소리가 보인다. 가녀린 숲바람에 살며시 몸 흔들며 눈부신 봄빛 소리로 합창을 한다. 사진 싸리냉이꽃, 2016. 5. 14. 덕유산

동강할미꽃

동강할미꽃 불현듯 달려갔다. 동강할미꽃을 촬영하기 위해 몇 년 전 두어 번 먼 길을 달려갔으나 개화시기를 맞추지 못하였다. 꼭 한번 제대로 핀 모습을 만나야지 하는 마음을 늘 갖고 있었다. 진주서 동강까지 승용차로 족히 다섯시간이 넘게 걸리는 길...... 혼자서 가기는 쉽지 않아 쉬이 나서지 못하였다. 서울서 지인 몇 분의 사진 지도 요청을 받고 망설이다 동아리의 정기 촬영이 겹쳤지만 불현듯 꼭두새벽 서울을 거쳐 동강행에 합류하였다. 점심때가 지나 도착한 동강, 굽이굽이 때묻지 않은 봄바람이 나를 감싸고 반짝이는 강빛은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모래길과 오솔길, 자갈밭을 지나니 절벽 군데군데에 발을 묻고 새초롬한 표정으로 서있는 예쁘디예쁜 꽃들을 만났다. 할미꽃이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탐스럽다. 봄..

매화(2)

매화 그님이 왔습니다. 싸늘한 찬 바람에 한 발 내딛기조차 힘든 마음에 그님이 왔습니다. 고운 얼굴 단아한 미소에 뽀얀 마음을 갖고 왔습니다. 꼭 다문 그 입술, 그 마음이 열릴 줄 몰랐습니다. 미동도 없이 오래 동안 굳게 닫은 그 입술에 찬바람만 스치고 있었습니다. 마음속까지 아픈 냉기가 파고 든 듯 잔뜩 웅크린 채 옆도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짧지도 길지도 아니한 시간에 그저 말없이 참고만 있는 듯하였습니다. 그러던 그님이 왔습니다. 환한 웃음 띤 얼굴로 왔습니다. 지난 찬 겨울의 아픔 긴 밤 사랑으로 풀어진 마음으로 왔습니다. 도톰한 입술로 촉촉한 내 마음에 입 맞추며 왔습니다. 바라만 보아도 행복한 그님이 왔습니다.

춘당매(春堂梅)

춘당매(春堂梅) 입춘이라 하면 봄을 알리는 절기이지만 아직은 얼어붙은 겨울 마음이다. 그렇지만 찬바람 물리려 진군하는 봄의 장군 춘당매(春堂梅)의 기세는 감당하지 못한다. 봄이 왔다 호령하며 남쪽바다를 내려다보는 그 꿋꿋함과 추위에 떨지않는 그 기개에 봄은 두려움 없이 오고 있다. *춘당매(春堂梅) -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피는 매화(白梅)로 알려져 있으며 현재 거제도의 옛 구조라초등학교의 교정에 4그루, 마을 입구에 1그루가 있다. 입춘 전후에 만개를 하며 수령이 120~150년 정도 된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