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힌 것으로 인하여 논쟁이 있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바울은 논쟁의 내용이 그리스도에 대한 것임을 알았기에 감사하였습니다. 사랑으로 하든 비방으로 하든 자신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가 증거된다는 사실에 감사하였습니다.
바울은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기를 기도하였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가 살고 자신은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고백합니다.
바울은 사는 것과 죽는 것 사이에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차라리 죽어서 주님 품에 안기는 것을 원하였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아직은 육신으로 있어야 하는 이유를 알았습니다. 교회를 세우기 위함입니다. 아직 연약한 교회를 생각할 때 살아있음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신의 욕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삶의 고백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랑할 것이 풍성하게 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이 영원히 죽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가장 영광스러운 시간에 주님의 부르심을 받습니다. 그러나 사명이 남아있기에 고난이 있어도 살아있어야 합니다.
죄악된 세상, 본성상태의 세상에서 구원받아 은혜의 상태로 살아가는 신자들의 삶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존재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사는 것이 죄를 쌓는 것이 됩니다.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하는 것이 신자의 삶입니다. 그리고 살아서나 죽어서나 그리스도가 참된 위로가 됩니다.
이러한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살아있는 동안도 주님과 교제하고 죽어서는 영원히 주님과 동행하는 복있는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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