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10절은 유다의 회복에 대한 예언이다. “임신하지 못하고 아기를 낳지 못한 너”(1절)는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상징이다. 바빌로니아에게 멸망 당한 후, 유다와 예루살렘은 자녀가 없는 여인과 같은 처지가 되었다. 중상류층 유대인들은 모두 포로로 잡혀가고 하층민만 남겨졌기 때문이다. “많은 자녀를 볼 것이다”라는 말은 포로로 잡혀 갔던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라는 뜻이다. 그 때가 되면 유다는 이방 나라까지 세력을 뻗칠 것이다(2-3절). 유다 백성은 더 이상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 다시는 부끄러움을 당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4절). “온 세상의 하나님”이 유다 백성의 남편이 되어 줄 것이다(5절).
유다는 마치 젊은 나이에 남편에게 버림 받은 여인과 같다. 아내의 간음(유다의 우상 숭배)으로 인해 그 남편은 잠시 아내를 버렸으나, 그의 “영원한 사랑”으로 그 여인을 다시 부르실 것이다(6-8절). 홍수로 심판하신 후에 노아에게 다시는 물로 심판하지 않겠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주님은 유다를 또 다시 버리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약속하신다(9-10절).
11절부터 17절은 유다를 회복시키신 후에 행하실 일에 대한 예언이다. 예루살렘이 “고난을 당하고 광풍에 시달려도 위로를 받지 못한”(11절) 이유는 그들의 우상숭배 때문이다. 그로 인해 하나님은 유다를 주변 열강들에게 내어 주셨다. 예루살렘을 회복시킬 때 주님은 무너진 성벽을 온갖 진귀한 보석으로 재건하실 것이다(11-12절). 그 때가 되면 모든 백성이 주님의 제자가 될 것이고 공의 위에서 번영과 평화를 누리게 될 것이다(13-14절). 그들을 공격하는 자들이 있겠지만, 더 이상 주님께서 그냥 내버려 두지 않으실 것이다(15절). 어떤 무기도 그들을 해하지 못할 것이고, 어떤 말로도 그들을 모욕하지 못할 것이다(16-17절).
묵상:
54장의 예언은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예언 중에 가장 강력하고 화려합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은 11절부터 17절에 묘사된 모습 그대로 이루어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고 기대합니다.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지금의 예루살렘을 보면 통곡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예루살렘 시는 여러 민족과 종교로 찢겨져 있고, 성전터에는 이슬람 모스크가 버티고 있으며, 솔로몬의 성전은 서쪽 벽의 일부만 남아 있습니다. 근본주의적인 유대교인들은 기회만 있으면 성전터를 탈환하려 합니다. 성취되지 못한 예언을 미사일과 폭격기로 이루려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온 세계를 공멸의 위기로 몰아넣을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분명히 “내가 하겠다”고 하십니다. 이 예언은 종교적 열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힘을 합하여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 예언을 주신 분이 “너를 지으신 분”이요 “너를 구속하신 분”(5절)임을 믿는다면 그분께 돌아가 그분의 뜻 안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의 “제자”(13절)가 되어 “공의의 터 위에 굳게 서서”(14절) “번영과 평화”가 모두에게 임하도록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예언을 믿고 바라는 사람들이 지금 해야 할 일입니다. 그런 일에는 불성실 하면서 무기를 개발하고 테러 훈련만 하고 있으니, 이 예언의 성취는 자꾸만 미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는 이 예언을 읽으며 사도 요한이 보았던 “새 하늘과 새 땅”을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날에 대한 환상 속에서 새 예루살렘의 모습을 보면서 사도 요한은 “그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에 싸였고, 그 빛은 지극히 귀한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습니다”(계 21:11)라고 적어 놓았습니다. 이사야가 예언한 그 영광스러운 미래는 역사 속에서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보게 될 미래의 일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더욱 열심을 내어 이 땅에서 하나님의 제자로 살아가도록 힘써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이 공의의 터 위에서 번영과 평화를 누리도록 우리가 할 일을 찾아 행해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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