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가리라 (로마서 15:22~33)

새벽지기1 2023. 3. 15. 05:35
오늘 본문에 이르러서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한 중요한 목적이 나타납니다. <로마서>는 복음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서신입니다. 그런데 복음을 설명하는 목적이 교리적인 논쟁 그 자체를 위해서가 아니라 선교적 목적을 위해 설명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복음이 선교의 도구라는 말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 자체로 선교적인 영향력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의 능력을 체험한 이들은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전해지도록 하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만일 이 일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복음을 들어야 할 대상자일 수 있습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선교에 참여하고 있지 않다면 선교 대상자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을 듣고,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은 복음 전하는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기쁨의 일입니다. 

지난 주 본문에서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제사장 직무를 받은 일,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을 받은 일을 ‘은혜’라고 고백했습니다. 내가 받는 은혜가 있고, 나를 통해서 은혜가 전달되는 은혜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를 기록한 중요한 목적을 소개합니다. 바울이 3차 전도여행 중에 고린도에서 주후 57년경 <로마서>를 썼습니다. 고린도에서의 사역, 로마 제국 동쪽 변방에서 사역을 마치고 이제 서쪽 스페인으로 가서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이 예루살렘이 기근으로 인해 극심한 가난 가운데 처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으로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로마 교회를 방문해 성도들과 얼마 동안 교제하고, 기쁨을 나누고, 서로 격려하고,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아서 스페인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바울이 4차 전도여행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교회가 곧 선교단체
“내가 스페인에 갈 때 여러분을 방문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지나는 길에 여러분에게 들러 얼마간 여러분과 기쁨을 나눈 후에 여러분의 후원으로 그곳에 가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24절). 
바울이 고린도에서 이제 서버나(스페인) 동쪽에서 서쪽으로 나아가는 길에 로마 교회에 들러 함께 기쁨을 나누고, 신령한 은사를 함께 나누기를 원한다(롬 1:11)고 했습니다. 또 그들과 함께 머무르면서 얼마 기간 동안 휴식을 취하기를 원한다고 했습니다. 고린도 지역에 영적 전쟁이 매우 심했고, 많은 어려움을 겪었기에 바울에게도 휴식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휴식도 취하고, 로마 교회의 후원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로마 교회의 후원을 기대하는 이유는스페인이 복음의 불모지였기 때문입니다. 당시 로마 제국의 중심지인 로마 교회는 그래도 재정적으로 여유가 있었습니니다. 그래서 그들의 후원을 받아 최종 목적지인 스페인으로 가기를 원한다는 목표를 분명히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로마서> 마지막 부분에서 후원에 관한 것을 잠시 언급한 것 외에 <로마서> 전체를 통해서 복음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집중적으로 했습니다. 그 이유는 로마 교회에게 후원을 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로마 교회가 복음으로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복음 안에서 하나 되고, 복음으로 건강하게 세워지면 복음을 전하는 일에 후원하는 것이 당연하고, 기쁨의 일이며, 논란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복음 안에서 세워지지 않은 교회는 무슨 일을 하든지 논란이 되고, 다툼이 되고, 어려워집니다. 온전한 복음을 깨닫고 체험하는 교회는 곧 선교 단체가 됩니다. 바울 시대에는 선교 단체가 따로 없었습니다. 교회가 곧 선교단체였습니다. 안디옥교회가 곧 안디옥 선교회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 교회를 복음 안에서 잘 세움으로 로마 교회가 곧 로마 선교회 역할을 해주기를 원했습니다. 지금 바울은 고린도에 있지만 미래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또 자신이 로마를 여러 차례 방문하고자 했지만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로마 동쪽 지역에 회개할 일을 계속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동부 지역의 일이 잘 마무리 되었고, “여기까지다”라는 하나님의 신호를 확인했기에 새로운 지역, 서쪽을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과거 아메리카 대륙 동부 지역에 정착한 청교도들이 서부를 향해 개척해 나가듯이, 당시 로마 제국에서 스페인은 문명 지역의 거의 끝부분, 당시로 말하면 땅 끝과 같은 곳이었습니다. 물론 미개척 된 많은 땅이 없다고 생각한 것은 아니지만, 로마 지역에서는 땅 끝과 같은 지역이 스페인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서쪽을 향하여,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그 지역을 향해서 나아가고자 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스페인으로 가는 길에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자 했는데, 하나님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주셨습니다. 예루살렘교회를 먼저 방문해서 마게도니야, 아가야 지역 성도들이 보낸 헌금을 전달하고 스페인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당시에는 오늘날처럼 은행에서 송금하는 체계가 없었기에 사람들이 일일이 전달해야 했습니다. 
바울의 향후 일정과 계획 등을 보면 자신의 뜻과 하나님의 뜻을 명확하게 구별할 줄 아는 영적 분별력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뜻도 넓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바울이 하고자 하는 것은 로마 교회를 방문하고, 스페인으로 가는 여정이었습니다. 넓은 차원에서 하나님의 뜻 가운데 있었습니다. 구체적인 실행 단계에서 로마 교회를 먼저 가고자 했는데, 하나님이 동쪽 지역에 더 초점을 두도록 했고, 예루살렘교회를 가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2차 전도여행 때도 그는 아시아 지역에 더 머물며 사역하고자 했는데, 성령님이 막으시고 유럽으로 건너가게 하셔서 빌립보교회가 탄생하고, 마게도니아 대륙으로 건너가 사역해야 했던 경험도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님께 민감한 사람들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과 하나님이 시급하게 하고자 하시는 일들을 잘 분별합니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계획이 있었습니다. 스페인으로 가고, 로마 교회를 경유해서 가는 나름의 계획이 있었는데 정반대인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하는 상황에 있습니다. 그래서 잠시 예루살렘에 들러 구제헌금을 전달하고, 그들과 함께 서버나(스페인)로 가고자 한다는 계획을 편지에 담아둔 것입니다. 
지금 사도 바울은 세 개 지역을 동시에 바라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로마, 스페인입니다. 이 세 지역을 사도 바울은 마음에 품고 기도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복음을 전할 때 늘 포함해야 할 선교의 중요한 영역, 총체적 선교가 이루어지기 위해서 꼭 포함해야 할 요소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구제선교의 시급성
첫째, 예루살렘교회를 향해서 구제선교의 시급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이는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사람들이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기꺼이 얼마를 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기쁨으로 그렇게 했지만 사실 그들은 예루살렘 성도들에게 빚진 사람들입니다. 만일 이방 사람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들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적인 것들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25~27절). 
‘그러나 지금은’이라는 단어는 바울은 곧바로 로마 교회에 가서 스페인으로 가고자 원하지만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예루살렘으로 가서 마케도니아, 아가야의 가난한 이들을 위한 헌금을 먼저 전달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연히 해야 하는 일, 빚을 갚는 일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교회를 통해서 복음이 전달되었고, 하나님의 약속과 축복이 우리에게 흘러왔으니 그들의 육신적인 필요, 가난 가운데 있는 그들을 우리가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마케도니아, 아가야 사람들, 빌립보교회 성도들이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드린 헌물 가운데는 바울에 대한 후원도 있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 진정한 향기는 어디에서 날까요? 강제적, 의무적으로 하는 일에는 향기가 나지 않습니다. 일이 되긴 합니다. 그러나 향기는 없습니다. 진정한 신앙의 향기는 지원함에서 나옵니다. 시키지 않아도, 부탁하지 않아도 하나님과 나와의 사이에서 하나님이 주신 소원을 따라 자원해서 헌신함을 하나님이 향기로 받으십니다. 바울의 3차 전도여행에서는 예루살렘교회를 위한 모금의 목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에 기쁘게 자원해서 드려진 헌금을 예루살렘교회에 드리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구제하는 일. 지구촌에 기근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한 끊임없는 후원이 있지만, 여전히 가난의 덫에서 헤어나지 못한 이들이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그들에게 삶의 일부분을 나눠서 끊임없이 도와야 합니다. 선교에서 구제는 꼭 필요합니다. 예수님도 배고픈 이들에게 빵을 만들어 먹여주셨습니다. 배고픈 이들에게 먹고 사는 것보다 예수님을 믿고 영원한 천국에 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은 들리지 않습니다. 시급한 일, 육신의 필요를 채워주는 구제와 구호가 선교에 반드시 필요합니다. 
전방개척선교의 중요성
              
둘째, 바울이 바라보고 있는 지역은 스페인입니다. 전방개척선교의 중요성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또한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지 않는 곳에 복음 전하기를 열망했습니다. 이는 남의 터 위에 집을 짓지 않으려는 뜻에서였습니다”(20절). 
“그러므로 내가 이 일을 마치고 그들에게 이 열매를 확실히 전달한 후에 여러분에게 들렀다가 스페인으로 가려고 합니다”(28절). 
‘이 열매’는 구제헌금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교회를 위해서 드려진 마케도니아와 아가야 지역 성도들의 향기로운 제물, 하나님께 드려진 열매를 확실하게 전달하고 스페인으로 가고자 합니다. 최종 목적지는 스페인입니다. 당시 스페인은 로마 제국의 서쪽 변방, 땅 끝이었습니다. 바울은 복음이 들려지지 않는 곳,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불리지 않는 곳을 향해서 끊임없이 사역지를 옮겼습니다. 
어느 병원에 갔더니 이런 표어가 있었습니다. ‘First and Best.’ 첫 번째 그리고 최고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저는 바울이 떠올랐습니다. 최초 이방인의 사도이면서  가장 모범적인 사역자가 바울입니다. 1~3차 전도여행을 마치는 시점에 그는 또 다시 스페인으로 가고자 했습니다. 4차 전도여행을 꿈꾸는 바울의 멈추지 않는 열정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실제 바울이 <로마서>의 표현대로 로마를 경유해서 스페인으로 갔는지는 확인할 수 없습니다. 일단 예루살렘에 가서 구제헌금을 전달한 것 자체가 엄청나게 힘겨운 일이었습니다. 그 이후 여정에서 바울이 스페인으로 갔는지는 기록에 남아있지 않아서 확인할 길이 없습니다. 
바울이 꾸었던 스페인 선교의 꿈으로 인한 열매가 무엇일까요? 톰 라이트라는 학자는 “하나님이 스페인으로 가고자 <로마서>를 썼던 것 자체가 더 큰 열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스페인으로 가서 직접 선교를 했어도 열매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비전을 품고 <로마서>가 기록된 통로가 됨으로서 전 세계에 미친 복음의 영향력은 바울이 스페인으로 가서 사역한 것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스페인 선교를 꿈꾼 바울을 통해서 <로마서>를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일리 있는 해석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비전으로 꿈꾸는 사람들의 목적 그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우리가 생각하고 계획하지 않은 열매를 맺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상명령, 위대한 계명
 
셋째, 바울이 바라보았던 로마 교회는 선교적 교회로서 반드시 변화되어야 한다는 필연성을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갈 때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갈 줄을 압니다”(29절).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가지고 간다고 했습니다. 그냥 복이 아니라 충만한 복이요, 세상의 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입니다. <에베소서> 1장에서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받아야 할 복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이미 허락하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락된 충만한 복을 깨닫고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교회의 최우선 사명은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사명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교회 안에 흐르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주신 두 가지 명령과 계명이 있습니다. 지상 명령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말씀입니다. <마태복음> 28장에 나오는데 그 이전에 <요한복음> 13장에 우리에게 주신 위대한 계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위대한 지상명령이 있고, 위대한 계명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 되게 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주심으로 복음 안에서 함께 충만하게 합니다. 
선교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흘러넘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망의 복이요, 위로의 복이요, 이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축복을 복음 안에서 충만하게 누리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가 그런 교회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로마서>를 읽고 묵상한 온누리교회가 바울이 로마 교회가 경험하기를 원했고,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을 누리는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공동체, 순, 가정마다 그리스도의 충만한 복이 흘러넘칠 때 온누리교회를 통해서 온 열방에 바울이 꿈꿨던 전방개척지역에 복음이 전해지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예루살렘교회와 같은 지역에 구제선교가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교회들이 선교적 교회로 변화되기를 바랍니다. 
선교 역사는 중보기도의 역사
결코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바울은 마지막에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기도를 부탁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선교 역사는 곧 중보기도의 역사입니다.  
“형제들이여,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고 성령의 사랑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부탁합니다. 나를 위해 여러분도 나와 함께 하나님께 열심히 기도해 주십시오. 내가 유대에 있는 순종치 않는 사람들에게서 구원을 받으며 또 예루살렘에 대한 내 봉사가 성도들에게 받을 만한 것이 되며 내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여러분에게 가서 함께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평강의 하나님께서 여러분 모두와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아멘”(30~33절). 
세 가지 기도제목입니다. 유대에 있는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 하나님의 복음을 배격하고 바울을 공격하는 이들로부터 안전하게 보호 받기를 기도했습니다. 예루살렘에 대한 구제봉사가 열납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 하나님의 뜻에 따라 기쁨으로 로마 교회와 함께 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얼마나 구체적인 기도의 제목입니까? 
바울은 자신의 힘으로 사역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는 중보기도를 통해서 일했습니다. 위대한 꿈을 꾸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그 꿈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는 위대한 기도가 드려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은 기도 속에 파묻혀야 열매 맺습니다. 위대한 꿈일수록 많은 고난을 만나게 됩니다. 고난을 이길 수 있는 힘은 함께 하는 합력, 합심, 중보기도입니다. 선교사를 위해서 우리가 함께 기도할 때 선교사들이 만나는 모든 고난과 장벽이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풀릴 것입니다. 온누리교회가 더욱 복음 안에서 강건한 교회로 세워질 것입니다. 끊임없이 함께 마음을 다해 복음 전파를 위해서 기도하는 온누리교회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