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51편: 진실한 회개

새벽지기1 2022. 1. 29. 06:45

 

해설: 

시편 편집자는 표제에 이 시편의 사연을 밝혀 놓았습니다. 다윗이 충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를 범한 후 자신의 범죄를 은폐하기 위해 우리야를 전장에 내보내어 죽게 합니다(삼하 11장). 다윗이 완전범죄를 확신하고 안심할 때 예언자 나단이 찾아와 그의 죄를 고발합니다(삼하 12장). 이 시편은 다윗이 나단의 고발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참회하며 드린 회개의 기도입니다. 이 시편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사랑받는 회개 시편입니다. 또한 이 시편에는 죄의 본질에 대한 깊은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먼저 다윗은 하나님의 사랑을 의지하여 자비와 긍휼을 구합니다(1절). 하나님께서 자신의 죄를 씻어주시고 깨끗하게 해주시기를 간구합니다(2절). 그는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내가 지은 죄가 언제나 나를 고발합니다”(3절)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한 시도 죄책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는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4절)라고 고백합니다. 이 말은 우리야와 밧세바에게는 잘못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의 죄는 가장 먼저 하나님께 짓는 것이고, 하나님께 대한 죄의 무게는 인간에게 범한 죄의 무게와는 비교할 수 없이 크다는 뜻입니다. 죄는 하나님 앞에 그만큼 엄중한 사안입니다. 

 

그가 지은 죄는 “주님의 눈 앞에서”(4절) 저지른 것입니다. 죄의 유혹 앞에 있을 때 “지금 내가 주님의 눈 앞에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결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다윗은 죄를 범하고 나서야 그 사실을 깨닫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징벌을 내린다 해도 그에게는 할 말이 없음을 인정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죄 중에 태어났고, 어머니의 태 속에 있을 때부터 죄인이었습니다”(5절)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인간의 뿌리 깊은 죄 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인간은 죄에 빠지고 나서야 자신이 어쩔 수 없이 죄 성에 물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습니다. 

 

다윗은 이어서 “마음 속의 진실을 기뻐하시는 주님”께서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주님의 지혜”를 가르쳐 주셨다고 고백합니다(6절). 그렇기에 그는 죄책감의 사슬에 갇혀 있지 않고 하나님께 나아와 자신을 죄로부터 깨끗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7절). “우슬초”는 제물의 피를 찍어 뿌리는 데 사용했던 풀을 가리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깨끗하게 하시면 자신이 눈보다 더 하얗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7절). 자신의 죄로부터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용서와 회복의 은총을 간절히 사모합니다(8-9절). 

 

다윗은 이미 지은 죄로부터 자신을 깨끗하게 해 주시기를 구하는 데서 만족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새롭게 지어 주셔서 더 이상 그런 죄를 범하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그것을 위해 자신 안에 “깨끗한 마음을 창조하여 주시고” 자신의 내면에 “견고한 심령으로 새롭게 하여” 달라고 기도합니다(10절). “창조하다”에 사용된 히브리어 ‘바라’는 창세기 1장 1절에서 사용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시는 행동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그뿐 아니라 다윗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시켜 주시기를 구합니다(11절).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에게는 구원의 기쁨을 회복할 것이고(12절) 죄인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칠 수 있을 것입니다(13절).

 

다윗은 하나님께, 자신을 보호해 주시어 다시는 살인죄를 짓지 않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그리하면 자신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노래하고 주님을 찬양하겠다고 고백합니다(14-15절). 이제 그의 찬양과 예배는 “찢겨진 심령”(17절)이 담긴 예배가 될 것입니다. 그가 그 흉악한 죄에 빠졌던 이유는 시편 50편에 나오는 것처럼 그의 제사가 형식 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그는 “찢겨지고 짓밟힌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드리는 제사만이 아니라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드려지는 모든 제물이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실 감사의 제물이 되기를 기도합니다(18-19절).   

 

묵상:

인간은 심하게 깨져 보아야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삼상 13:22)라는 칭찬을 들었던 다윗은 밧세바의 사건을 통해 자신이 죄의 유혹 앞에 얼마나 초라한 존재인지를 깨닫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죄 성에 속속들이 물들어 있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바울이 고백한 것처럼(롬 7:18) 자신의 내면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새롭게 지어지지 않으면 소망이 없는 존재임을 깨닫습니다. 그는 또한 죄의 결과에 대해서도 절실하게 깨닫습니다. 죄는 무엇보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알게 되니 죄의 무게가 숨통을 조여 옵니다. 생의 기쁨과 즐거움이 모두 증발되어 버립니다. 그런 자각이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무너져 이토록 절절하게 호소하게 만들었습니다.

이것은 모두에게 동일한 진실입니다. 죄는 어떤 행동이기 이전에 우리를 속박하는 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가 “죄 아래”(롬 3:9) 있으며 “죄의 종”(롬 6:16)이라고 했습니다. 죄는 끈질기게 우리를 위협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은 어렵고 내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은 너무도 쉽습니다. 우리 속에는 무서운 죄의 본능이 도사리고 있고 사탄이 그 죄의 본능을 꼬드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해 주십시오”라고 기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그 기도는 우리가 죄에 얼마나 취약한 존재인지를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죄의 힘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시는 주님의 손길에 의지하고 살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살아도 우리는 언제나 넘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더 이상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성령의 사람으로서 우리는 “의의 종”(롬 6:16)입니다. 죄의 세력은 우리를 넘어뜨릴 수는 있지만 노예로 결박 하지는 못합니다. 죄에 넘어질 때면 하나님 앞에 진실하고 정직하게 회개해야 합니다. 상하고 깨어진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의 얼굴을 구할 때, 하나님은 우리를 용서하시고 치유 하시며 회복시켜 주십니다. 그렇게 회복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심령으로 예배에 임하게 되고 더욱 거룩하게 변화되어 나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