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사귐의 소리

시편 50편: 참된 예배

새벽지기1 2022. 1. 28. 07:22

 

해설:

이 시편은 아삽의 시로서 크게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먼저 1-6절까지는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소개하고, 7-15절에서는 심판자 하나님이 제사의 의미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어서 16-23절까지에서 하나님은 제사의 의미를 왜곡하는 사람들에 대해 책망하십니다. 제사의 의미에 관한 시가 ‘시온 시편'(46편, 48편) 뒤에 편집된 것은 적절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인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심판을 위하여 온 세상을 불러 모으시는 모습을 그립니다(1절).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은 시온에서부터 영광과 권능, 엄위로 나타나셔서 모든 민족 앞에서 당신의 백성을 심판하십니다(2-6절). 

 

하나님은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라는 말씀으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7절). 이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에 대한 애정에서 나오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바친 제물에 대해 문제 삼으시려는 것이 아닙니다(8절). 하나님은 무엇이 부족해서 제사를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9절). 그분은 온 우주와 모든 생명의 창조주이시며 소유주이십니다. 그분에게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습니다(10-13절). 그분은 홀로 완전하신 분입니다. 그분이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는 것은 감사의 제사입니다(14절).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에서 우러난 감사와 찬양을 받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환난의 날에 당신을 부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도우실 것이요 하나님은 그들로 인해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15절).

 

이스라엘 백성은 물질의 제물에 대해서는 정성을 다했으나 정작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그들의 제사는 풍성 했으나 그들의 삶은 부패했습니다. 16절의 “악인들”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풍성한 제물을 바치기는 하지만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고 삶은 부패해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법도를 전파하며 언약의 말을 입에서 읍조립니다(16절). 하지만 그들은 “내 교훈을 역겨워하고, 나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는”(17절)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도둑과 친구가 되고 간음하는 자와 한 패가 됩니다(18절). “입으로는 악을 꾸며내고, 혀로는 거짓을 지어내었”(19절)습니다. 동기간조차 사랑하고 돌보지 않았습니다(20절).

 

하나님은 이러한 죄악을 지켜 보면서 그들이 회개하고 돌아서기 까지 참고 기다리십니다(21절).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오해하고 그분을 만홀히 여깁니다. “내가 너희와 같은 줄로 잘못 생각하는구나”(21절)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죄악에 대해 무관심하기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는 줄로 착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이 쌓은 죄의 분량이 차고 넘치게 되었습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행동을 시작하시면 무서운 심판이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의 팔을 드시기 전에 한 번 더 권면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을 잊은 자들아”(22절) 하고 부르십니다. 그들은 안식일마다 그리고 절기 때마다 영광스러운 제사를 드리고 주야로 율법을 묵상하고 부지런히 율법을 가르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이 당신을 잊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 모든 것이 형식에 그쳤기 때문입니다. 제사는 풍성했지만 마음은 떠나 있었고 삶은 부정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물을 바치고”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23절)을 찾으십니다. 마음이 없는 제물은 역겹고 거룩한 삶이 따르지 않는 제사는 위선입니다. 

 

묵상:

예배는 하나님에게 부족한 무엇을 드리기 위함이 아닙니다. 삼위의 하나님은 영원히, 모든 것이, 충만하신 분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하나님의 자기 충족성’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그분에게 시간과 물질을 성별하여 예배를 드리는 이유는 “나는 하나님, 너희의 하나님이다”(7절)라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 “당신은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그분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인정하고 그 은혜에 반응하는 행동입니다. 감사의 마음이 너무나 크면 무엇인가 내게 귀한 것을 드리고 싶어집니다. 따라서 진정한 예배는 억지로, 형식적으로, 무덤덤하게, 반복적으로 행할 것이 아닙니다. 우리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기쁨과 열정으로 드려야 합니다. 그런 예배만이 우리의 영성을 깨어있게 하고, 깨어있는 영성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게 살아가게 합니다. 

오늘의 시편을 읽으며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우리의 신앙을 돌아 봅니다. 우리의 예배가, 기도가, 묵상이 혹시 마음은 없는 형식은 아닌가 반성합니다. 우리의 예배와 삶이 분리되어 있는 것은 아닌가, 두려운 마음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 봅니다. 그렇다면 우리도 역시 “악인들”(16절)에 속합니다. 우리도 역시 “하나님을 잊은 자들”(22절)이라는 책망을 들을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예배에 진실한 감사가 담겨 있는지 반성해 봅니다. 위로 받고 축복 받기 위한 자기 중심적 예배가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내면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감사로써 드리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 자문해 봅니다. 예배에 바치는 정성 만큼이나 “올바른 길을 걷는 사람”이 되기 위해 정성을 쏟고 있는지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우리의 말씀 묵상이 우리의 양심을 위로하는 것에 그치는 것인지, 아니면 우리의 말과 행실을 통해 열매 맺고 있는지, 스스로를 심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