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이 시편은 왕의 결혼식을 위해 성전에서 드려진 예배 중에 성가대가 부른 노래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표제에서 “사랑의 노래”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결혼 축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시편의 분류법에 따르면 ‘제왕시편’에 속합니다.
이 시편은 또한 영원하고 참된 왕 메시아를 위한 예언 시편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메시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7절에서 시인은 “그러므로 하나님, 곧 임금님의 하나님께서 기름 부어 주셨습니다. 임금님의 벗들을 제치시고 임금님께 기쁨의 기름을 부어 주셨습니다”(7절)라고 말 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의 임금들은 대제사장의 기름 부음을 받아 왕위에 올랐지만, 하나님께서 직접 기름을 부어 세운 임금님은 오직 한 분이십니다.
먼저 기도자는 왕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어 부르는 기쁨을 고백합니다(1절). 왕은 사람이 낳은 사람들 중 가장 아름다운 사람이며, 그에게서 은혜가 쏟아집니다(2절). 그는 또한 위대한 용사이기도 합니다. 그의 싸움은 “진리와 정의”를 위한 싸움입니다. 이 땅에 그를 당할 적이 없습니다(3-5절).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정의로 통치하시고(6절),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은 이 땅에서 정의로 통치할 것입니다(7절).
이어서 기도자는 왕후에 대한 묘사로 넘어갑니다. 임금은 결혼식을 위해 성대하게 차려 입었고 온갖 악기가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합니다(8절). 그 옆에는 귀한 것으로 단장한 왕후가 서 있습니다(9절). 그는 다른 나라 왕의 공주입니다. 기도자는 왕후에게 “왕후님의 겨례와 아버지의 집을 잊으십시오”(10절)라고 권고합니다. 이제는 “임금님이 그대의 주인”(11절)이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왕후는 임금의 사랑을 받으며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2-15절). 그의 태에서 나온 왕자들은 계속 왕위를 이어갈 것입니다(16절).
기도자는 왕에 대한 충성 서약으로 노래를 마칩니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임금의 이름을 영원히 기억하도록 돕겠다고 약속합니다(17절).
묵상: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은 새로운 왕이 세워질 때마다 이 축가를 부르며 그 임금이 이상적인 지도자가 될 것을 기도하고 열망했습니다. 하지만 그 소망이 이루어진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전체 인류 역사에도 이런 임금은 없었습니다. 현실이 그러하기에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통치할 지도자를 보고싶어 합니다.
한 편으로는 은혜가 쏟아지며 다른 한 편으로는 위엄과 권능이 넘치는 지도자를 갈망합니다. 오직 “진리와 정의”만을 위해 통치할 지도자를 구합니다. 이 소망은 우리의 영원하고 완전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 때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불완전한 지도자들을 견딜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이 비록 불완전 하더라도 진리와 정의에 입각하여 통치하도록 협조하며 또한 견제해야 합니다.
이 시편을 메시아에 대한 예언으로 읽으면, 왕후는 메시아의 신부인 교회를 의미 합니다. 바울 사도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라고 비유 했습니다(고후 11:2). 실권 하나 없는 영국 왕실의 세자빈이 되는 것도 세인의 부러움을 사는 일이라면 영원하신 임금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영광이요 영예입니다. 그것은 오직 영적으로만 알 수 있고 또한 인정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는 위엄있게 차려 입고 선 영원한 임금 그리스도 옆에 서 있는 신부입니다. 그런 자리에 설 자격이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인 은혜로 받은 선물입니다.
그것은 감당할 수 없는 영예입니다. 그것을 안다면, 은혜로 주어진 신분에 맞도록 살아가야 합니다. 그것은 영적인 사건이기에 우리가 인정하고 고백하고 확인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말씀 앞에 서는 이유는 우리에게 일어난 신분의 변화를 기억하고 고백하고 선포하며 그 신분에 맞게 살아가기 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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