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분별(7)- 포스트 포스트모던 사회의 현실과 대응
포스트모던에 대한 내용을 읽은 한 친구가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의 대안’은 무엇이라 생각하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아직도 진행 중인 상황에서 그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의 질문에 대한 질문을 받는 것은 의미가 있었습니다. 이전에 늘 받았던 질문은 포스트모더니즘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묻는 질문이었다면 이제는 포스트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고민을 하는 시대가 왔다는 의미로 보았기 때문입니다.
과연 어떤 모습으로 진행될지 궁금해 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자연스럽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내용입니다. 오래전 프란시스 쉐퍼는 현대(1960-80년)를 설명하면서 다가 올 현대적 현대 사회 즉 포스트모던 사회를 예상하였습니다. 그가 예상한 사회는 철저한 개인주의와 정치적 무관심이 강력하게 작동할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것은 니체가 강조하였던 초인의 시대 즉 초 개인주의 사회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21세기의 한국 사회의 현실은 초 개인주의가 되었습니다.
Z세대로 대변 되는 우리 사회는 초 개인주의 모든 면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도피성도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전에는 교회를 가자고 말하는 부모들이 많았지만 이제는 자식들의 선택에 맡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을 우선순위에 두지 않습니다. 자녀들 역시 혼자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나 혼자 산다는 프로그램 유행을 하는 이유가 초 개인주의 사회의 전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모의 신앙 요구에 대하여 강한 저항을 합니다.
이러한 시대의 다음에는 어떠한 모습이 있겠습니까? 포스트모던으로 대표되는 사회의 특징은 답은 없고 의견만 존재하는 사회, 기준을 해체하고 무질서를 방치하는 사회입니다. 이러한 현상이 지속된다면 어떠한 사회의 모습을 볼 수 있겠습니까? 얼마 전 프랑스에서는 엄마, 아빠라는 말 대신에 부모1,부모2 라는 말을 쓰자는 제안이 있었습니다. 니체와 하이데거의 철학의 영향을 받는 프랑스 철학자들이 생성해낸 포스트모더니즘의 끝판을 보려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이미 영국에서 시행되었습니다. 트랜스젠더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성인 젠더에 의하여 남성이라고 주장하는 여성이 결국 남성이라는 주민등록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남성인 여성이 아이를 낳았는데 아이의 엄마가 여성이 아니라 남성으로 등재해 달라는 소송이 일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참으로 어지러운 세상이지만 젠더 감수성에 빠진 세대는 이러한 무질서를 더욱 가속화 할 것입니다. 이제는 가정과 결혼을 비롯한 모든 제도를 다 전복시키는 운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는 기독교 정체성을 세워진 학교에서 기독교 정체성과 위배되는 행위를 가르쳐야 한다는 국가 인권위원회의 권고 사항으로 서서히 나타나고 있습니다.
데카르트가 열고 니체로 인하여 소통되고 포스트모던 철학자들에 의하여 확장된 이러한 서구의 사상은 이제 우리 사회의 곳곳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이러한 현대 서구 사상의 배후에는 기독교의 진리에 대한 저항이 있습니다. 특별히 성경이 말하는 기준과 질서에 대하여 파괴행위가 우리 시대 철학자들의 욕망입니다. 절대적 기준을 없애는 것을 목표로 삼은 해체주의자들은 곳곳에서 위세를 떨치고 있습니다. 이들은 인권이라는 교묘한 방법을 잘 사용합니다. 하지만 인권의 과잉을 가져오고 있음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인권의 과잉은 슈퍼 초 개인주의를 만들어 냅니다. 그것은 자신이 신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이 기준이 되어서 판단하고 결정하며 살아갑니다. 매우 그럴듯한 그림이지만 매우 무서운 독이 자라고 있음을 봅니다.
현재 서구 사회가 보여주고 있는 초 개인주의 현실은 무질서의 전형입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완전하게 해체하여서 자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있습니다. 인간관계 속에 남는 것은 동물적 욕구와 기계적 만남뿐입니다. 그런 영향으로 인한 서구 사회의 피로 도는 점점 강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저곳에서 작은 변화들을 봅니다. 바로 보수주의의 부활입니다. 급격한 변화에 대하여 저항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서구는 무질서한 사회의 바닥을 보고 있습니다. 이제는 바닥을 치고 변화를 구하려고 합니다. 어떻게 변화 될는지 기대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한국 사회는 바닥을 치고 있지 있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새로운 산업 혁명 시대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4차 산업혁명이라고 하는 A.I 시대가 함께 오고 있습니다. 바닥을 치기도 전에 새로운 물결이 함께 덮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공존이 우리에게 어떠한 변화를 줄지는 가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질서도 점점 증가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포스트 포스트모던시대를 향한 대안은 무엇일까요? 이렇게 거대한 흐름에 대하여 답을 말한다는 것은 그야 말로 주제 넘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말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무질서의 시대에 질서가 답이라는 사실입니다. 즉 기준이 사라지는 시대를 살리는 길은 기준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포스트 포스트모던 사회에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기준을 가지고 견디는 일입니다. 강력한 해체를 강조하는 초 개인주의 사회에서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은 엄청난 저항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젊은 세대들의 성(性) 인식은 기준이 없습니다. 느낌과 끌리는 대로 해결합니다. 더 이상 이성적 생각은 가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이 시대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결혼을 하여도 서로에 대하여 확신을 갖지 못합니다. 그렇게 난잡하게 살았던 이들이기에 서로에 대한 신뢰가 없습니다. 결국 결혼의 동기도 쾌락에 있고 그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에 있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필요가 중단되면 결혼관계도, 가족도 다 파괴됩니다. 그러나 더욱 큰 문제는 그것에 대한 죄책감이 현저히 낮습니다.
우리도 바닥을 칠 것입니다. 그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있는 자가 승리자가 됩니다. 이것이 포스트 포스트모던 사회의 대안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다가올 인공지능의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는 기준을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세상은 항상 변화하여 왔습니다. 그러나 진리는 언제나 시대의 기준이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내일도 동일합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이 사실을 살아내는 일입니다. 절대적 기준을 가지고 사는 것이 얼마나 아름답고 복 있는 삶인지 보여줘야 합니다. 무질서가 질서를 결코 이기지 못합니다. 질서가 바로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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