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선교의 마무리는 언제인가?

새벽지기1 2020. 11. 3. 06:54

선교의 마무리는 언제인가?

 

광야와 같은 미지의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면 그것은 분명히 선교사가 선교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어는 곳이나 선교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항상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 교회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롬 10:13-17]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에 이릅니다. 그런데 주의 이름으로 부를 수 있으려면 주님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주님의 이름을 전하는 복음 증거자를 세운 것입니다. 이들은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입니다. 이 소식을 믿음으로 받을 때 구원의 놀라운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 일을 가장 앞서서 감당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복음이 증거 되면 교회가 세워지고, 세워진 교회는 복음을 전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교회 세움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워진 교회는 선교하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교회의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자국민에게 전하면 전도하는 것이고, 타국에 전하면 선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전도자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특별한 부르심을 통하여 선교사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듯 모든 그리스도인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종종 이런 질문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전도는 언제까지 하는 것입니까? 좋은 소식을 전하는 일은 언제 멈추게 됩니까? 이것은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라 여길 수 있습니다. 좋은 소식은 주님 재림하시는 그 날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주님이 그만하라고 할 때까지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든 선교든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계속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지역적 의미로 다가 온다면 그 의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한 지역에 복음이 증거 될 때 그 끝은 분명합니다. 그 지역이 예수를 다 믿으면 더 이상 전도와 선교가 필요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 표현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였습니다. 끝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볼 때 한 지역의 끝은 복음이 편만하게 될 때입니다. 이것은 선교의 현장에도 동일합니다.

 

오늘날 대한민국은 피선교지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선교하는 나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선교한국이라는 말도 사용합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나라가 피선교지가 된 것일까요? 한국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가 생겨서 선교사들이 더 이상 선교하러 오지 않는 것일까요? 사실 그 날이 정확히 언제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어느 순간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선교사가 오지 않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한국 교회 스스로 목사를 배출하고 교회를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시작은 바로 교회를 세우고, 신학교를 세우고, 목사와 교사(신학교수)를 배출하고 그것을 관리할 수 있는 교단이 형성된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가 교회를 세우기 시작하였습니다. 바로 이 지점에서 선교가 멈춘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교는 교회 세움을 목적으로 시작하고 신학교를 세우고 자체적으로 교수가 나오고 목사를 배출하고 그들을 관리할 수 있는 교단을 세움으로 마무리 됩니다. 이것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교는 사업이 될 수 있습니다. 종종 언제까지 선교하려고 합니까? 물으면 죽을 때까지 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죽은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러면 그것은 자신의 소관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멋진 모습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씁쓸한 대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대답의 이면에는 선교를 왜 하는지에 근원적인 정체성이 모호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선교의 마무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면 NGO 활동이 선교라고 착각합니다. NGO 활동은 선교를 위한 도구입니다. 그래서 주객이 전도되지 않도록 민감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선교는 사라지고 사업만 남습니다. 그리고 사업이 종료되면 사라지는 것입니다. 또한 선교는 교회 세움이라는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으면 선교 막바지에 노후 대비와 이권 다툼으로 허송세월합니다. 참으로 서글픈 현실을 마주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영광스럽게 시작하였다가 초라하게 끝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일반성도로서 선교의 현장에 나가는 분들도 그 정체성이 분명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지역에 의료봉사하고, 우물 파고, 화장실 개선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선교가 아닙니다. 이것은 사회봉사입니다. 이런 일은 코이카(한국국제협력단)나 각종 NGO 단체들이 다 합니다. 아니 더 잘합니다. 지역봉사 혹은 NGO 활동의 목적은 복음을 전하는 도구이고 교회를 세우는 과정 일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일반성도의 신분으로 나가는 선교사들은 철저하게 목사 선교사와 협업하여야 합니다. 교회를 세우고 목사를 길러내는 목사 선교사를 돕는 역할을 감당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목사의 역할을 다 하려고 하려면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이 합당합니다.

 

선교는 교회 세우는 일에 모두 함께 하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 초기에 온 선교사들은 이 관계를 너무나 잘 지켰습니다. 의료와 학교는 일반성도 선교사들이 그리고 교회 개척은 목사 선교사들이 감당하였고 서로 협력하였습니다. 그 모습이 세브란스 병원과 연세대학교와 새문안교회, 배재학교와 이화여자대학 그리고 정동교회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세계 선교에 있어서 그 유례가 없는 결실을 맺은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한국 교회의 선교의 현장은 참으로 혼란스럽습니다. 선교의 정체성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다보니 선교 사업과 NGO 활동과 보이기식 교회당 건물 짖는 것과 자녀들 공부시키고, 노후 걱정하는 일에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염려가 됩니다. 한국 교회의 선교가 30-4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도 선교지의 자생 교단이 생겨났다는 이야기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피선교지가 아니라는 보고를 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소식을 기대하면서 기도합니다.

 

선교사는 강직해야 합니다. 그리고 선교사를 파송하는 교회의 순수함과 열정과 헌신을 무거운 마음으로 되새겨야 합니다. 선교의 목적과 마침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한 지역이 선교하는 나라가 될 때까지 최선을 다하여 교회를 세우고 또 다른 피선교지를 향하여 보냄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말씀을 순종하고 성취하는 일입니다.

'좋은 말씀 > 신동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대 분별(4)-믿음의 확실성  (0) 2020.11.05
기도가 일상이 되자.  (0) 2020.11.04
낮은 자리로 오신 하나님  (0) 2020.11.02
최종적 승리  (0) 2020.11.01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는 이유?  (0) 2020.1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