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차이와 차별

새벽지기1 2020. 10. 16. 15:46

차이와 차별

 

1987년에 한국 사회는 민주화를 열망하였습니다.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성공에 열광하였습니다. 2002년에 한국 사회는 월드컵 성공을 열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4년부터 시작된 광장의 촛불은 생명을 존중히 여기는 나라를 열망하였습니다. 그리고 2018년 오늘 우리는 이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무엇을 열망하고 있습니까? 지난 정권의 적폐청산입니까? 남북의 종전 선언입니까? 경제적 회복입니까? 차별 없는 세상입니까? 어떤 모습이 역사의 기록에 남을까요? 우리의 현대사는 참으로 변화무쌍합니다. 앞을 알 수 없는 롤러코스터와 같습니다.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반쯤 변화되어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더구나 4차 산업 혁명시대가 온다고 떠들썩하고 있습니다. 제3의 물결이 엊그제 같은 이제 제4의 물결이 코 앞에 다가와 있습니다. 그러니 정신이 어지러울 지경입니다. 어디에 서 있어야 하고, 무엇을 바라보아야 할지 신중한 결정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그 가운데 우리는 새로운 정부의 정책을 유심히 보고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민감하게 다가오는 것은 인권에 관한 정책을 우선 생각하고자 합니다. 성경은 기본적으로 가장 견고한 인권 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근거는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가장 존중받아야 할 이유가 바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진화론이 결코 가질 수 없는 견고한 기반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장 인권중심적인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 안에는 온전한 평등과 평화가 공존합니다. 차별은 성경의 가르침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긴장점이 존재하는 영역이 있습니다. 바로 그 기준이 성경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떠나서 하나님을 논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사라진 하나님은 샤머니즘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준은 철저하게 성경입니다. 그런데 이 기준이 성경이 긴장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의 존엄성을 강조하고 평등성을 주장하지만 동시에 질서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세계에는 차이가 존재합니다. 다만 차별이 없을 뿐입니다. 그러나 기본적 질서가 존재합니다. 이 질서에 대한 이해가 바로 긴장점입니다. 남자가 먼저 지음을 받고 여자가 다음에 지음을 받았습니다. 쌍둥이로 동시에 지음 받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남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을 차별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질서의 한 부분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녀에 따라서 기본적 기능이 존재합니다. 이것을 신체적 질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여기에 차별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차이가 있어서 기능이 다른 것입니다. 이것은 매우 자연스러움입니다.

 

문제는 기능이 다르다고 차별을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 가치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합니다. 군대에 가면 전방에 근무하는 병사들에게 생명수당이라고 해서 봉급이 좀 더 지급됩니다. 그것을 향하여 우리는 같은 병사에 대한 차별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기능에 있어서 차이가 있기에 좀 더 많은 수당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영역에서 동일하게 진행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아직도 여성의 고위직 진출이 어렵다고 합니다. 이것이 여성이라는 이유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이라면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아마도 이 문제는 점점 해소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여성 대통령까지 나온 나라입니다. 여성들의 고위직 진출은 오르지 못할 산이 아니고 깨지 못할 천정이 아닙니다.

차이에 대하여 존중히 여기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자세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그리고 질서를 세우신 하나님의 원리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질서에 대한 이해와 차별에 대한 저항이 있을 때 건강한 공동체를 세우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앞으로 성에 있어서의 차이를 인정할 것인지 아니면 다양성의 측면에서 차이소멸을 가져 갈 것인지는 큰 논란이 될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정치적 접근으로 인하여 정직한 토론이 불가능하여 졌다는 것입니다. 그러다보니 공동체의 혼란이 가속화 되어 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 시대는 인권의 문제를 성경의 기준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포스트모더니즘의 세계관으로 볼 것인지 더욱 치열한 전쟁터가 될 것입니다. 이러한 현실 앞에 교회가 가야 할 길은 더욱 분명해 졌습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성경의 기준을 곤고히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는 법을 더욱 잘 배워야 할 것입니다.

정치적 공방에 휘둘려서 앞뒤를 분간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견고하고 세밀하게 그러면서 인내와 사랑이 넘치는 일을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세상의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의 길 앞에 서게 될 수 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무서워 할 것은 사자의 밥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는 우리 시대의 사상이 문제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고도의 변증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포스트모더니즘이 가져 온 부정적인 측면을 교정 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시대의 사상이 마음껏 놀 수 있도록 내버려두는 것이 아니라 치열하게 싸울 수 있는 힘이 필요합니다. 여기에는 정말 귀한 성도들의 직업적 소명이 필요합니다. 단단하게 싸울 수 있고 전복 시킬 수 있는 학자와 사상가들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포스트-포스트모더니즘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차이는 인정하고 차별은 부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 있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성경의 기준을 바로 세우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이 일을 잘 감당 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단지 학자들의 일만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일입니다. 각자의 영역에서 우리에게 다가올 이 문제를 잘 준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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