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그리스도인의 멋

새벽지기1 2020. 6. 8. 06:33

그리스도인의 멋

 

멋지다. 멋스럽다. 멋있다. 아마 이런 말을 듣고서 기분 나빠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멋있다는 말은 어떤 상황 가운데 들어도 행복한 말입니다. 국어사전의 정의로 보면 멋은 “차림새, 행동, 됨됨이 따위가 세련되고 아름다움. 고상한 품격이나 운치”를 말합니다. 그러니 멋있다는 말을 들을 때 행복한 것입니다.

 

멋은 단지 외적인 차림새만을 의미하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종종 멋은 패션에 관계되어 생각합니다. 그리고 외모에 집중합니다. 하지만 멋은 우리의 내면을 포함할 때 비로소 그 가치가 인정되는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얼굴을 멀쩡한데 하는 짓을 보니 정말 형편없다. 혹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할 때가 있습니다. 또 허우대만 멀쩡하지 다른 것은 꼴불견이라는 말도 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을 멋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멋은 겉과 속이 균형 잡힌 사람을 의미합니다. 말과 행동이 일치되는 사람을 말합니다. 언행일치가 되는 사람은 참으로 멋있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어디에서도 인정받습니다. 우리 사회에 이렇게 멋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사회는 정말 따듯할 것입니다.

 

하지만 타락한 세상에서 가장 슬픈 것은 이 멋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멋이 없는 세상은 지저분함과 가벼움만 남았습니다. 그러니 지독한 이기적 개인주의와 일시적 쾌락주의 빠져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멋대가리가 없다는 말을 씁니다. 상대할 가치가 별로 없는 사람입니다. 가까이 가고 싶은 마음이 별로 없습니다. 그러니 세상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래서 지금도 사람들은 멋있는 사람을 찾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떠한 멋이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멋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인의 멋을 한 마디로 말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멋을 생각한다면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친절)와 양선(선함)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

 

성령의 열매가 바로 그리스도인의 멋입니다. 왜 이것이 멋인지 알 수 있는 것은 육체의 일과 비교하면 알 수 있습니다.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갈 5:19-21]

 

너무나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멋지게 살면 세상은 우리를 멋쟁이라 부를 것입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의 멋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아니라 육체의 열매들이 더 잘 보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교회의 모습을 생각할 때 성령의 열매가 자연스럽게 나타나야 하는데 들려오는 소리는 육체의 일들입니다. 너무 배불렀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잔이 없기에 부만 즐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성령의 열매가 보이지 않습니다. 더 이상 그리스도인의 멋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육체의 일에 집착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대단한 지위를 가지고 있고, 큰 교회를 목회하고, 세상에서 성공하여 권력이 있는 장로가 되어도 육체의 일에 집착한다면 하나님의 나라의 유업과는 아무 관계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향하여 말하기를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라고 하시면서 그러나 하늘에서 극히 작은 자라도 저보다 크다고 하셨습니다.[눅 7:28]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겠습니까? 그리스도인의 멋이 정말 필요한 시대입니다. 멋쟁이 그리스도인들이 거리를 활개 치며 다녀야 합니다. 우리 작고 변방에 있지만 멋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자랑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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