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하용조목사

복을 주신 하나님

새벽지기1 2019. 1. 10. 07:36


에베소서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에게 쓴 편지입니다. 사도 바울은 지금 로마 감옥에 갇혀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비록 감옥에 있었지만 그의 마음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향해 처음 터져 나온 것은 축복이었습니다.  


감옥에서 터진 찬송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엡 1:2) 이 말씀에서 ‘은혜’는 헬라인의 인사말이고 ‘평안’은 히브리인의 인사말입니다. 모든 언어를 통틀어서 축복하고 싶은 사도 바울의 마음이 묻어 있습니다. 복을 빌어주는 것은 크리스천의 삶의 방식입니다. 불평, 원망, 짜증, 비난, 정죄 등은 크리스천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축복으로 하루를 열고 축복으로 마감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축복할 수 있는 자격은 형편에 있지 않습니다. 내가 복을 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를 찬양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이십니다.”(엡 1:3) 에베소 성도들을 축복한 사도 바울은 속 깊은 곳에서 나오는 찬양을 합니다. 펜을 들어 충고의 말과 여러 가지 말을 하기 전에 하나님을 묵상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잡아 죽이려고 하는 길에 자신을 만나주신 하나님, 모든 잘못을 용서하시고 사도로 불러주신 하나님, 다른 헛된 짓을 하지 않고 예수님을 전하다가 로마 감옥까지 오게 하신 하나님, 죽을 뻔만 위기 가운데 살려주신 하나님을 묵상하다가 터진 한 마디가 ‘찬양합니다’입니다.


찬양은 논리적으로 생각해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깊이 생각하고 묵상하는데 속으로부터 그냥 터져 나오는 것이 찬양입니다. 저는 오늘 여러분의 삶 가운데 이런 찬양이 터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찬양의 내용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을 주신 분’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천지를 창조하신 후 하나님께서 맨 처음 하신 것이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하신 것입니다.(창 1:28) 아브라함에게는 “네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창 12:1~2)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이 무엇일까요.   


죄사함과 양자의 축복 


“하나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사랑 가운데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우리를 예정하셔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셨습니다.”(엡 1:4~5)

하나님께서 주신 하늘의 신령한 복, 첫째는 하나님의 양자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5절)

다시 말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흠이 많은 존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머리를 빗겨주시고 목욕을 시켜주시고 옷을 입혀주셔서 자녀로 삼아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모든 흠이 사라졌기에 하나님 앞에 설 때에도 창피한 것 없고 사람 앞에 설 때에도 창피한 것이 없습니다. 이 은혜를 찬양하십시오.(6절) 이것이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둘째, 죄 사함을 얻은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분의 피로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습니다.”(엡 1:7) ‘구속’이란 돈을 지불하고 어떤 사람을 사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죄인입니다. 죄의 대가는 죽음입니다.(롬 6:23)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가 갚아야 할 죄의 빚이 다 탕감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관계에서 우리가 갚아야할 죄의 빚이 사라졌습니다. 이것이 하늘의 신령한 복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피로 죄를 용서 받았습니다. 우리의 조건, 혈통, 도덕적 탁월함 때문에 죄를 용서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잘잘못을 따질 수 없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등합니다. 당신의 모든 죄는 예수 십자가의 피 때문에 용서받았음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축복의 목적은 통일  


셋째, 지혜와 총명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미리 세우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을 따라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습니다.”(엡 1:8~9)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지혜와 총명을 넘치게 하셔서 하나님의 뜻의 비밀을 알게 하셨습니다. 쉽게 말하면 무식한 사람을 유식하게 만드신 것입니다. 에베소에 수없이 많은 이방신들이 있었는데 하나님께서 지혜와 총명을 주셔서 하나님 아버지를 섬길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그런데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왜 예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교회를 세우셨을까요? 혈통에 관계없이 지역에 관계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불렀을까요? 하나님의 목적이 통일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때가 차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을 모두 통일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엡 1:10) 통일은 하나됨입니다. 에베소는 소아시아 서쪽 끝에 있습니다. 왼쪽에는 지중해가 있고 오른쪽에는 대륙이 펼쳐지는 해양과 육지를 잇는 연결점이 에베소였습니다. 더 큰 특징은 동양과 서양을 연결하는 중심점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베소에는 동양과 서양의 문화가 들어와서 잡다한 문화가 혼합되어 있었습니다. 또 에베소는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 등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에베소에는 굉장히 다양한 인종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큰 교회였습니다. 에베소 교회의 첫 번째 담임목사가 사도 바울이고 두 번째가 사도 요한이고 세 번째가 디모데였습니다. 이 교회에 폭발적인 부흥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점이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 안에도 마찬가지로 여러 문화가 뒤섞여 있었고 윤리적으로 타락해 있었던 것입니다. 게다가 영지주의란 이단과 헬라인의 타락한 문화가 들어와서 가정이 파탄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열방을 하나로 묶는 십자가  


요한계시록을 보면 에베소 교회를 향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사랑이 넘쳤지만 첫 사랑을 잃어버렸다고 책망하십니다.(계 2:1~7) 내부적으로는 교회의 하나됨이 깨졌고 외부적으로 부모 자식간, 부부간의 하나됨이 깨졌습니다. 사탄이 역사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 편지를 쓴 것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이 하나인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양하고 서로 모습이 다른 사람들을 다 모아서 하나로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사탄은 하나됨을 깨뜨리려고 하지만 때가 차면 하늘의 있는 것과 땅의 있는 것들이 모두 하나가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목적입니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하나됨을 이루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목적은 문화적 전통, 시대적 전통, 세대 차이를 넘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부모와 자식이, 사장과 사원이 함께 춤을 추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거대한 구원목적입니다. 이런 모델이 교회입니다. 이 모델을 통해서 이루는 것이 가정이요 사회요 직장이요 국가입니다. 저는 여러분 가운데 하나됨이 회복되길 축원합니다. 여러분 가운데 하나됨이 신령한 복으로 임하고 이미 예수 믿은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세대를 넘어, 지역을 넘어, 문화와 성별을 넘어 하나되는 놀라운 역사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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