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리민수목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렘14:19-15:9: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

새벽지기1 2018. 9. 10. 06:44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14:19-15:9: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

 

본문


19.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

20.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

1.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

2.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

3.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

5.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

6.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7.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

8.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

9.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해석과 설명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19)

14:19-22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기도.

이전까지의 중보 기도는 나름대로 논리적 당위성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여기서는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감성적 호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이는 앞에서의 논리적 기도가 오히려 유대 백성의 심판의 당위성만 불러왔기 때문이다.

예레미야는 언약의 백성이 멸망당해서는 안된다는 절박한 호소를 이어가고 있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20-21)

예레미야는 회개 외에는 하나님께 용서 받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특히, 21절에서 유다의 구원을 호소하는 예레미야의 중보 기도의 근거를 제시한다.

첫째, 주의 이름을 위해서다.

즉 주의 백성으로 불리는 유다가 멸망한다면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이방인들의 조롱을 받아 하나님의 명예에 손상인 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둘째, 주님의 영광의 보좌를 위해서다.

여기서 영광의 보좌란 예루살렘 성전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성전을 이방 군대가 유린하지 않게 해달라는 것이다.

셋째, 백성과 맺은 언약때문이다.

일찍이 북이스라엘도 멸망하고 이제 남은 것은 남유다인데 유다마저 멸망당한다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는 것이다.


이방인의 우상 가운데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는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하니라’(22)

본 절은 하나님을 향한 찬양이다.

동시에 하나님의 자비에 기대어 긍휼을 구하는 기도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그들을 내 앞에서 쫓아 내보내라’(9:1)

14:19-22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기도이며,

15:1-9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이 말은 비록 모세와 사무엘 같은 위대한 선지자가 기도할지라도 소용없다는 말씀이다.

이는 모세와 사무엘의 중보기도를 염두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아니하시오면 원하건대 주께서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32:32)”(모세의 중보기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삼상12:23)“(사무엘의 중보기도)

하나님께서는 이들의 중보기도를 들어 주셨다.

하지만 당시 백성의 죄는 그 누구의 중보로도 회복 불가능한 상태였음을 반증하는 것이다.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리요 하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 하셨다 하라’(2)

그들이 너에게 '어디로 가야 하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여라.

나 주가 말한다.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을 자는 염병에 걸려 죽고,

칼에 맞아 죽을 자는 칼에 맞아 죽고, 굶어 죽을 자는 굶어 죽고,

포로로 끌려갈 자는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새 번역성경)

이는 이제 유다 백성이 갈 길은 죽음이 아니면 포로가 되는 것이라는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3)

유다에 임할 심판에 대한 말씀으로 다음 네 가지를 말씀하셨다.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

이는 장차 유다에 임할 심판의 가혹성을 보여준 것이다.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 행한 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그들을 세계 여러 민족 가운데에 흩으리라’(4)

므낫세는 남유다의 멸망의 결정적 인물로 상징된다.

그는 그 아비 히스기야가 이룬 종교개혁을 하루 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든 자다.

므낫세의 죄는 다음과 같다.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헐어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며

이스라엘의 왕 아합의 행위를 따라 바알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며

아세라 목상을 만들며 하늘의 일월 성신을 경배하여 섬기며 여호와의 성전에 제단들을 쌓고

또 여호와의 성전 두 마당에 하늘의 일월 성신을 위하여 제단들을 쌓고

또 자기의 아들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며 점치며 사술을 행하며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여 그 진노를 일으켰으며

또 자기가 만든 아로새긴 아세라 목상을 성전에 세웠더라(왕하21:3-7)

한 마디로 므낫세의 죄는 극악 무도했다.

그래서 성경은 남유다의 멸망은 므낫세의 죄 때문’(왕하24:3)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예루살렘아 너를 불쌍히 여길 자 누구며 너를 위해 울 자 누구며

돌이켜 네 평안을 물을 자 누구냐’(5)

이는 이제 예루살렘을 긍휼히 여길 자가 없다는 뜻을 진닌 반어법이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6)

남유다의 심판 선언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택한 백성 남유다가 하나님을 버린 것이라는 것이다.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음이로다

이것은 그동안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악에 해해 수 없이 많은 용서를 베풀었음을 시사하는 말씀이다.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자기들의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음이라’(7)

키로 까불러

는 농촌에서 추수기에 곡식의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도구다.

성경에서 키질은 흔히 심판을 상징한다.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3:12)”

심판날에 예수님께서 하실 사역 중 하나다.

본 절은 하나님의 심판이 유다 모든 성읍에서 동시 다발적으로 행해질 것이라는 예언이다.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갑자기 닥치게 하였으며’(8)

과부가 내 앞에 바다 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심판 때에 전장에서 수많은 남자들이 죽음으로서 일어난 현상이다.

이는 민족 번식의 씨를 말리는 것으로 민족과 국가의 몰락을 뜻하는 것이다.

대낮에 파멸시킬 자

대낮에공개적으로라는 뜻이다. ‘뜻하지 않은 시기로 번역하기도 한다.

파멸시킬 자는 바벨론 군대를 말한다.

청년들의 어미는 유다 군사들이 의지했던 예루살렘 성을 가리킨다.

따라서 본절은 하나님께서 바벨론 군대를 보내어 유다 사람들과

그들이 의지했던 예루살렘 성을 쳐서 파괴시킬 것이라는 말이다.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에게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9)

일곱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이는 일곱 자식이 모두 전쟁터에서 죽게 된 여인의 처지를 백성들의 형편에 비유한 것이다.

아직도 대낮에 그의 해가 떨어져서

대낮에 해가 떨어질 수는 없다.

이는 일곱 자식을 잃은 어미가 닥친 고통을 비유한 것이다.

이는 우리 속담의 청천하늘에 날벼락이라는 말이다.

그 남은 자는 그들의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이는 혹여 전장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조차 대적에 의해 살육을 당할 것이라는 것이다.

결국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도 받으시지 않으셨다.

그 만큼 유다 백성의 죄악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는 것이다.

 

묵상과 적용


회개 외에는 하나님께 용서 받을 방법이 없다.

본문은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기도다.

더 정확히 말하면 14:19-22은 예레미야의 중보기도이며,

15:1-9은 예레미야의 중보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이다.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것이 없고 치료 받기를 기다리나 두려움만 보나이다’(19)

앞서 드렸던 중보 기도는 나름대로 논리적 당위성을 가지고 기도했다면,

여기서는 하나님의 긍휼에 기대어 감성적 호소가 주를 이루고 있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주께서 우리와 세우신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20-21)

이는 예레미야가 회개외에는 하나님께 용서 받을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반응은 냉답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유다를 향한 뜻을 돌이키기에 지쳤기 때문’(15:6)이다.

그래서 예레미야가 아니라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할지라도(9:1) 소용없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의 세 번째 중보도 받으시지 않으셨다.

그 만큼 유다 백성의 죄악이 하나님을 노엽게 했다는 것이다.

절망적인 상황이다.

하지만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할 유일한 것이 있다.

바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는 것이다.

회개 외에는 하나님께 나갈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여호와여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주의 이름을 위하여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14:20)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