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우인목사

사무엘의 결정적 허물 (사무엘상 8:1-9)

새벽지기1 2018. 8. 23. 08:37


100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에게 종업원을 해고하는 가장 큰 이유를 물었습니다.
무능력 30%, 동료들과 화합하지 못함 17%, 부정직 12%, 부정적인 태도 10%, 의욕부족 7%,
지시 사항 불이행 7%, 기타 8%로 나타났습니다.
해고 이유의 대부분이 삶의 자세, 태도와 관련되어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제프 아이오그가 쓴 ‘성공하는 리더의 9가지 성품’에서 꼽는 리더의 성품은, 정직, 안정감,
순결, 겸손, 섬김, 지혜, 자율, 용기, 열정입니다.
지위나 자리가 리더로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가 그를 훌륭한 리더로 만듭니다.

심리학자 베링거는
“현재의 성공과 실패는 단지 10%만 사실일 뿐이다. 나머지 90%는 그에 대한 반응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이는 참담한 실패라도 사실상 10%만 실패한 것입니다.
그 실패에 대해서 올바로 반응하면 성공합니다.
또한 아무리 찬란한 성공이라도 사실상 10%만 성공한 것이며,
그 성공에 잘못 반응하고 있다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실패를 향해 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실패하는 것일까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준비하지 않아서,
둘째 일이 풀리지 않는다고 낙담 하느라,
셋째 일이 잘 풀리면 목에 힘을 주느라,
넷째 더 잘 풀리면 욕심을 부리느라 망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무엘이 늙으매 그 아들로 이스라엘 사사를 삼으니” 사무엘이 자신의 아들에게 자신의
직책 사사직을 물려주었다는 것입니다.
별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더군다나 사무엘은 온 백성의 존경을 받는 리더입니다.

요즈음도 그렇게 합니다.
북한은 그 권력을 3대에 걸쳐 세습하였고,
기업을 자식에게 물려주고, 심지어는 교회까지 그렇게 하고 있는 마당에,
그 당시 자신의 직위를 자식에게 물려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사’라는 직책은 대단히 독특한 자리입니다.
사사는 정치와 종교를 총괄하는 이스라엘 최고의 지위인데,
하나님께서는 그 지위를 절대로 세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사는 남녀노소나 그 출신에 관계없이 누구나 될 수 있습니다.
당시 여자는 남자들의 소유로 취급되던 시기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셨습니다.
가장 유명한 사사는 삼손입니다.
가장 유능한 사사는 드보라입니다.
또한 입다는 동네 불량배였고, 기드온은 겁쟁이 농사꾼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어려움에 빠지면 하나님께서는 적당한 사람을 불러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세습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사람들 사이에 계급과 차별을 방지하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조치는,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려는 인간의 생각에서는 절대로 나올 수
없는 획기적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이 중요합니다.
그런 원칙을 세우신 하나님의 마음을 올바로 이해하고 잘 배워 제대로 실천해야 합니다.

그런데도 사무엘은 자신의 아들들을 사사로 세웠습니다.
여기에는 나름 변명의 여지는 있을 것입니다.
사무엘은 기득권 유지에 힘을 쏟는 그런 위인은 아닙니다.
그 이유를 엿볼 수 있는 구절이 있습니다.

“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거기서도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며 또 거기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더라.”

사무엘은 여러 지방을 순회하며 재판을 수행하였으며,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 제단을 쌓으며 하나님을 잘 섬겼는데, 순회하는 주요 도시마다
이스라엘을 위한 예배처소를 마련하였습니다.
사무엘은 종교와 정치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수행하였습니다.

사무엘이 나이가 들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아들들로 보조 사사로 삼아 자기 일을 분담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해도 사무엘의 잘못은 분명합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아들들은 뇌물을 받고 엉터리 판결을 하였습니다.
자신의 지위를 오용하고 남용한 것입니다.
너무나 유감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헤셀은 “지고한 묵종”(supreme acquiescence)을 강조합니다.
이 지고한 묵종을 출애굽기 24장 7절을 인용하며 설명합니다.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광야에서 모세가 하나님과 맺은 언약서를 백성들에게 읽어주자 백성들이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고 외쳤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하는 단어는 ‘준행’입니다.
이는 히브리어로 ‘아세’인데, ‘행하고 듣다’는 뜻입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듣고 행하는’ 것이 아니라 ‘행하고 듣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듣기도 전에 무조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지고한 묵종이란,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면, 무엇이든지 무조건 따르겠으며
그 어떤 이의도 달지 않겠다는 자세를 의미합니다.
신앙은 지식이나 내 생각에 선행합니다.

사사직은 어떤 경우에도 세습하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명령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상황이 급박하고 마땅한 인물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 자리를 비워둘 망정 자식에게 세습하지 말아야 합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기업이나 교회를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얼마나 많은 부작용과 부조리와 잡음들이 생겨나고 있는지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하지 않아도 될 곤혹을 치르게 됩니다.

중국 명나라 때 1530년에 세워진 ‘육필거(리우삐쥐)’라는 기업이 있습니다.
기업 평균 수명이 18년인데,

500년의 세계 최장수 기업 육필거에는 여섯 가지 절대 원칙이 있습니다.
양곡, 누룩, 물 등을 최상급으로 써야 한다는 원칙 외에도 가족은 물론 친인척에게는
기업을 물려주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중국이라는 엄청난 격동의 세월을 이기고 오늘도 번창하고 있습니다.
300명의 용사로 십수만 명의 미디안 군대를 물리친 기드온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청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삿8:22)
그러자 기드온이 말합니다.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리라”(삿8:23)

원래 기드온은 겁이 많은 농부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름에 ‘지고한 묵종’으로 자신의 직책을 수행하였고, 빛나는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그럼에도 모든 것이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알고 끝까지 자신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기드온의 태도로 이스라엘이 평안하고 자신의 집안은 높임을 받았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다스리게 하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다는 것은, 사도 바울이 말한 대로,
“무슨 일이든지 주께 하듯 하라.”(골3:23)입니다.

주께 하듯이 내가 행하고 있다면 내가 옳은 길을 가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나는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이집트의 노예로 팔려갑니다.
그가 하는 일은 노예의 일, 천하고 하찮고 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요셉의 일을 ‘솨레트’라고 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솨레트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뜻입니다.
수백 명의 노예 가운데 어린 노예는 없어도 그만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39:2-3)

사사의 일, 제사장의 일, 목사의 일 자체가 솨레트가 아닙니다.
그 일을 통해 사사로운 이득을 취한다면 가장 천박한 일, 가장 추악한 사람이 됩니다.
성직, 하나님의 일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의 태도가 그 일을 결정합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종교적으로 타락하였다면,
사무엘의 아들들은 정치적으로 타락하였습니다.
비장파장입니다.
하나님의 직책을 사사로운 직업으로 전락시켰기에 가장 더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아브라함 헤셀은,
이스라엘의 종교적 실존이 세 가지 내적 태도로 이루어진다고 말합니다.

첫째, 각자 개인가 영으로 맺어지는 하나님과의 관계.
하나님의 부르심에 각 개인이 응답해야 하는 책임이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뜻이 기록된 성경과의 맺어짐.
성경 연구와 말씀 묵상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이해하고 내 전체를 그 뜻에 복종
시켜야 합니다.

셋째, 순종으로 하나님의 관심과의 맺어짐.
듣고 깨달은 것을 삶으로 살아 구체적인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그가 말합니다.
“하나님을 이해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해야 한다.
노래하는 법, 사랑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는 결코 하나님을 이해하는 법을 배울 수 없다.”

하나님의 사람, 그리스도인들은 수천 년 동안 어떤 상황과 체제에서도 존재했으며 살아 남았습니다.
그 상황이 힘들면 힘들수록,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고

그 힘으로 그 모진 세월을 견뎠습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의 신앙과 삶에서 발산되는 순수한 빛은 세상을 밝혔습니다.

잊지 말아야 합니다.
힘과 재능과 지위는 하나님의 뜻을 실현하는 도구들입니다.
누리며 휘두르라고 주신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올바른 목사는
수천 수백 명의 교인들을 수십 년 동안 올바로 행복하게 살게 하는 중요한 존재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그런 목회자들을 많이 키워내야 합니다.

이스라엘 원로들이 드디어 모였습니다.
그리고 사무엘을 찾아가 말합니다.

“보소서 당신은 늙고 당신의 아들들은 당신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니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8:5)

원로들은 왕을 요구하였습니다.
이에 사무엘은 왕제의 폐해를 자세히 열거하였지만 이미 그의 설득력은 힘을 잃었습니다.

리더의 작은 잘못의 결과는 엄청납니다.
리더는 무엇보다 자기 관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합니다.
탁월한 리더들을 조사해 보았는데, 자신의 에너지의 50%를 자신의 발전과 성장을 위하여,
원로와 동료들을 챙기고 돕는데 각각 20%, 그리고 아래 사람을 위하여 10%를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어떨까요?
에너지의 상당부분을 윗사람 모시기에,
나머지는 동료를 견제하고 아래 사람을 억압하는데 사용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는 사람들이 수두룩할 것입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자기 관리와 성장에 주력하는 리더를 사람들은 기쁜 마음으로 따르게 됩니다.

사무엘은 이 문제를 놓고 하나님과 상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저희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8:7)

가장 나쁜 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떠나게 만드는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작은 소자 하나라도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달고 강에
뛰어 들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의 나쁜 아들들은 자신의 이득만을 챙기다가 온 백성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만을 위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은 모든 것을 망가뜨려 버립니다.
가장 먼저 자신을 망칩니다.
다른 사람들을 망치고, 공동체를 망쳐버립니다.

지난 CBS 모금 방송 강사로 갔을 때,
키가 135센티미터밖에 안 되는 여자 분을 만났습니다.
이름은 김해영, 아프리카 보츠와나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있습니다.
척추장애자입니다.

가난한 농부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난 그녀는,
주벽이 심한 아버지가 술이 취해 어린 딸을 집어던지는 바람에 척추장애자가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자. 술주정뱅이 아버지는 생활고를 비관하여 죽었고,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남의 집 식모로 들어가 동생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앞날이 캄캄했습니다.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 싶어 먹여주고 재워주는 한남장애인직업학교에 들어가 편물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곳에서 김해영 씨의 앞날을 바꿔준 너무나 고마운 선생님을 만납니다.
그리스도인인 그 선생님으로부터
난생 처음으로 사랑을 받았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교회에 가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습니다.
처음으로 소망을 본 김해영 씨는 열심히 기술을 익혔습니다.
그 결과 전국 기능경기대회에서 금상,
세계 장애인 기능 경기에서 금상을 받고, 철탑산업 훈장도 받았습니다.

그렇게 앞만 보고 달리던 그녀에게 병이 찾아왔고, 병원에 입원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으로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네가 원하는 곳이 아니라, 너를 원하는 곳으로 가면 어떻겠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동안 자신과 동생들만을 위해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래서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으로 찾아간 것이 아프리카 보츠와나입니다.
그곳 장애인 기술학교에서 14년간 아프리카 장애인들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녀에게 더 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미국 뉴욕 컬럼비아 대학 사회사업 석사 과정에서 공부를 마치고
국제사회복지사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동안 2억 원 정도를 썼습니다.
제 돈은 3,00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꿈을 갖고 하나님의 일을 하려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풍성하게 공급해 주십니다.”
김해영 씨는 “청춘아, 가슴 뛰는 일을 찾아라.”라는 당부의 말로 그녀의 감동적인 강의를
마쳤습니다.

김해영 선교사는 남다른 의지와 능력이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살아야 했기에 참아낸 것입니다.
하나님을 붙잡고 견뎌낸 것입니다.
김해영 씨가 한 것은 하나님과의 동행이며, 그분의 말씀을 ‘아세’(준행)한 것뿐입니다.

김해영 선교사는 하나님과 여러 사람들에게 영광과 기쁨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무엘은 하나님을 곤란하게 만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쩔 수 없이 이스라엘에게 왕을 허락하셨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부터 이스라엘은 험난한 여정이 시작됩니다.
인간 왕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지 않아도 될 곤혹’을 수도 없이 치릅니다.
그리고 훗날 이스라엘은 남북으로 갈리고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서 멸망해 버립니다.

사무엘의 잘못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원칙에서 벗어날 때 ‘하지 않아도 될 곤혹’과 ‘없어도 될 조치’들을 끝도 없이
치르게 됩니다.
내 생명과 에너지를 탕진시켜 버립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능력과 부와 지위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이 말합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