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는 참으로 중요한 관계이다.
그분은 교회의 머리이시고 교회는 그분의 몸이다.
우리는 그분의 몸인 교회를 이루는 지체들이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라”(30절)
교회의 머리가 되시기 위해서 주님은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자신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25절)
그 목적은 이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시기 위함이었다.
그것은 교회의 몸을 이루는 우리 각 지체들이 영광스러운 존재가 됨으로 이루어질 일이다.
우리는 교회 없이 있을 수가 없고, 우리 없이 교회는 있을 수 없다.
주님은 이 교회와 지체들을 자기 피로 사시고 자신의 몸으로 세우시고 계신다.
주님의 몸인 이 교회는 물리적인 건물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이 땅의 교회도 아니다.
사람의 눈에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가장 중요한 교회이다.
이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는 모든 참된 신자로 이루어져 있다.
죄를 회개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모든 사람들을 포함한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고 그 은혜를 받아 누리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피로 깨끗함을 받고 그리스도의 의를 덧입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거룩하게 된 모든 사람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도 신경을 고백하는 “거룩한 공회”이다.
이 땅에 있는 모든 눈에 보이는 교회들은 이 교회에 속한 종이요 하인이다.
눈에 보이는 교회는 건물을 지을 때 사용하는 비계와 같고, 겨와 같다.
비계 뒤로 위대한 건물이 지어지고, 겨에 싸여 살아 있는 알곡이 자란다.
눈에 보이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가치는,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의 지체를 훈련하고 자라게 한다는 것이다.
이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보호하시고, 유지하시고,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가신다.
이 세상에서는 참된 교회가 소수이고 멸시를 받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그 무엇보다도 영광스럽고 소중하다.
이 교회와 비교할 때, 화려한 솔로몬의 성전도 아주 미미하고 보잘 것 없다.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세우신다.
성부 하나님께서 택하시고, 성자 하나님께서 구속하시고,
성령 하나님께서 각 지체를 거듭나게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는 특별한 의미에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세워가신다.
교회의 지체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이다(롬1:6).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계1:5).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요1:12).
주 예수 그리스도는 위대한 지혜로 자신의 교회를 세워가신다.
주 예수님은 교회를 세워 가기 위해 많은 방편들을 사용하신다.
말씀과 기도의 경건생활, 징계와 고난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신다.
참된 교회를 세우는 일이 전능자의 어깨에 지워져 있다는 사실에 깊이 감사해야 한다.
주님은 시작하신 일을 반드시 이루신다.
주님은 반석 위에 이 참된 교회를 세우신다.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마16:18).
이 “반석”이 베드로가 아닌 것은 분명하다.
만약 베드로를 가리켰다면 “너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고 하셨을 것이다.
베드로를 가리킬 때는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마16:19)
반석은 사도 베드로의 인격을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고,
그가 말한 훌륭한 신앙고백을 가리킨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마16:16)
오류투성이고 불안정한 사람인 베드로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성부께서 베드로에게 계시하신 놀라운 진리를 가리키는 말이다.
반석은 예수 그리스도 그분에 관한 진리를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유일한 중보자이시요
메시야이심을 믿는 사람은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사도들은 오직 이 복음을 증거하기 위해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고 목숨을 바쳤다.
여러분이 하나뿐인 참된 교회의 지체인지 아닌지 알고 싶다면
자기 영혼이 이 반석 위에 있는지 주의해서 보면 된다.
이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의 일원이 아니라면, 다른 모든 것은 아무 값어치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결코 마지막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그날에는, 모래 위에 지은 궁전보다,
“반석 위에” 세운 움막에서 발견되는 것이 몇 천 배나 나을 것이다.
주님이 세우시는 이 참된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고 하셨다.
음부의 권세는 지옥과 마귀의 권세를 가리킨다(시9:13,107:18,사38:10).
지독한 원수인 마귀와 이 세상 주관자들의 공격에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끊임없이 시달렸다.
머리를 상하게 하지 못할 것을 알고 발뒤꿈치라도 상하게 하려고 애썼다.
신자에게서 천국을 빼앗지는 못해도, 천국으로 가는 길에서라도 괴롭게 하려고 안달이었다.
음부의 권세와의 전쟁은 지난 6천 년 동안 그리스도의 몸 전체가 겪어 왔던 일이다.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지난 6천년 동안 불타면서도 아직도 다 살라지지 않은 떨기나무였다.
광야로 도망갔지만 아직도 삼킴을 당하지 않은 여인이었다(출3:2,계12:6,16).
“음부의 권세”는 쉴 새 없이 그리스도의 백성을 공격해 왔다.
하지만 이 와중에도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는 여전히 든든히 서 왔다.
사람이 보기에는 참된 교회가 약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오히려 그동안 참된 교회를 내려친 많은 해머는 다 부러졌다.
그 많은 제국들이 다 돌무더기가 되었다.
앞으로도 계속 교회를 내려치는 해머가 있다면 동일한 운명이 될 것이다.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2:8).
아무리 작고 중요하지 않은 돌이라도,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의 산 돌은
결국에는 구원을 얻어 궁극적인 안식으로 들어간다.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이 신비로운 몸에서는 뼈 하나라도 부러지는 일이 없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신부이다.
영원한 언약으로 하나님과 연합한 그들은 결코 따로 떨어질 수 없다.
참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양 무리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 중에서 하나도 잃지 아니하였사옵나이다”(요18:19).
참된 교회는 이 땅의 알곡이다.
체질과 키질을 당하여 이리저리 흔들릴 수는 있어도,
단 한 톨이라도 잃어버리지 않는다.
가라지와 쭉정이는 불타 없어지겠지만, 알곡은 곳간에 들여질 것이다.
앞날에 대한 모든 염려를 그분께 맡기십시오.
권력자들이 정한 법이나 양의 탈을 쓴 이리의 계략 때문에 낙심하지 마시라.
그리스도는 항상 자기 교회를 돌보신다.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도록” 항상 돌보신다.
우리 눈으로 볼 수는 없어도, 모든 것이 다 잘되고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이고 그리스도와 연합된 신분인 것을 알면,
우리가 힘써야 할 것이 있다.
거룩한 삶을 사는 데 힘쓰는 것이다.
우리가 속한 참된 교회에 걸맞은 삶을 살도록 힘써야 한다.
하늘 시민답게 살기를 힘써야 한다. 하나님의 가족답게 살기를 힘써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와 그 지체들을 위해 자신을 십자가에 주신 목적은 하나이다.
참된 교회를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기 위함이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영광은 깨끗함과 거룩함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물로 씻고 말씀으로 깨끗해진 몸 위에 세워지는 것이다.
여기서 물은 성령의 세례로 보아야 할 것이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딛3:5)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를 깨끗하게 하고 거룩하게 하는 것은 성령의 세례와 말씀의 씻음인 것을 믿으시라.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육체를 성령으로 씻고, 말씀으로 씻어 깨끗하게 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영광을 가져오고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길이다.
사도 디도는 말씀한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주의 피로 우리를 깨끗하게 하셨으니 다시 우리는 우리 마음과 육체를 더럽히지 않아야 한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여야 한다.
유대인들은 정결 예식을 행할 때, 몸의 주름살이 물에 잠기지 않을까 세심하게 주의했고,
몸에서 씻어지지 않는 티나 더러움이 조금이라도 있을까봐 신경을 썼다고 한다.
세탁업자들은 맡긴 옷을 어떻게 하는가? 티를 지우고 주름을 쫙 펴는 일을 한다.
정말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과 영광을 원하시는가?
돈과 재물과 권력에 대해 욕심을 내고 일 중독에 빠질 것이 아니라,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도록, 거룩하고 흠이 없는 마음과 삶을 살기를 힘쓰시라.
믿음 생활은 형식적으로 하고, 탐욕과 방탕으로 살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마지막 심판날 그들에게 내려질 영벌이 어떠할지, 그들의 영원한 처소가 어디일지 생각해보시라.
이 세상이 다가 아니고, 이 세상도 그들이 원하는 대로 결코 살아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 땅에서도, 마지막 날에도 동일하게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으시라.
인류 역사를 통해 그분이 주관자이심을 우리는 역력히 보고 있다.
우리의 시야가 짧아, 우리의 믿음이 작아, 오늘 코 앞에 닥친 일만 보고,
곧 닥칠 미래를 못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다가, 낭패를 볼 날이 온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신 소망을 가슴에 품고 오늘을 살아야 하고
내일의 하나님의 손길을 믿음으로 말씀으로 바라보아야 한다.
반복되는 역사의 비참한 결과들을 뻔히 보면서도,
나는 다를 줄 알고, 신기루를 쫓듯 부와 권력을 좇다가 사막에서 죽어가는 사람들이,
불을 쫓다가 불에 타 죽는 불나방들이 참으로 많은 현실이다.
내가 현재 속한 교회가 성경에서 말하는 참된 교회인줄 착각하다가
초대 교회시대에 있다가 촛대가 옮겨져 버린 교회의 일원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신앙고백과 거룩한 삶이 없는 교회는
반석 위에 주님이 세우신 교회가 아니다.
물로 씻고 말씀으로 씻어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되기를 힘쓰지 않는 교회와 성도는
주님과 상관이 없고,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와 성도로 세워질 수 없을 것이다.
자꾸만 세력과 힘을 기르고 이기는데 모든 노력을 경주하는 교회와 성도는
주님 앞에가 아니라, 세상 사람들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질려고 힘쓰는 교회라 할 것이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가 되려는 교회는
요셉처럼 하나님 앞에 산다는 의식을 갖고 살기를 힘쓸 것이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창39:9)
다윗처럼 주의 목전에 내가 항상 있음을 의식하며 살기를 힘쓸 것이다.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셨사오니”(시51:4)
내 육체와 마음을 따라 사는 것은 진노의 자식들에게 역사하는 악한 영의 노예가 되는 것이다.
그것은 죄가 내 죽을 몸에 왕노릇 하도록 허용하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처럼 아무 반성 없이 자기 좋을 대로 자기 감정대로 사는 것이다.
문제를 해결하는 세상 방법은 우선은 뭔가 되는 것 같지만 결국은 더 험악한 결과를 낳고 만다.
우리 과거를 돌아봐도 족히 알 수 있는 결과이고,
세상이 이렇게 악해지고, 사랑해야 할 관계들이 이렇게 깨지는 것은 그 세상 방법 때문이다.
우리가 겪는 모든 문제에 대하여 내 지혜대로 내 감정대로 처리하지 않으시길 바란다.
반드시 후회할 일이 생기고 돌이킬 수 없는 처지로 나아가게 마련이다.
문제가 오면, 하나님이 이 문제를 왜 겪게 하시는가?라고 물어볼 필요가 있다.
그것이 티나 주름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사는 방법이다.
우리가 믿는 사람이 확실하다면, 그 문제 해결에 하나님을 개입시켜야 하지 않겠어요?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하나님의 방법이 무엇인가 알아보지도 않을 것 같으면,
그 사람은 자기만을 믿는 사람이고, 세상 방법만 의지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들은 이런 저런 방법을 이야기 해놓고선 그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 책임도 지지 않는다.
영을 따라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해결방법을 찾으시기 바란다.
그럴려면, 우선 흥분된 감정부터 가라 앉혀야 한다.
말씀을 가까이 하여 읽으면서 기도하시기 바란다.
육체와 감정에 취하지 않는 방법을 성경은 가르쳐 준다. 역으로, 성령에 취하는 것이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5:18)
술에, 육체에 취한 사람들은 당연히 성령으로 충만하지 않게 될 것이다.
이 권면의 의미는 성령의 은혜들로 충만케 되기 위해 힘쓰라는 것이다.
육체적인 사람들이 술에서 얻기를 바라는 기쁨과 능력과 용기 등을
성령으로 그들의 영혼에 가득 채우도록 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최대한 성령으로 채우기를 사모해야 한다.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라.
성령을 통해서만 우리는 주의 뜻을 알고 경건한 삶을 실천할 수 있다.
성령의 도움 없이는 끓어오르는 육체와 감정들을 가라앉힐 수가 없다.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일 때 반드시 사는 길이 열린다.
우리 분노와 감정이 우리 육체에 왕노릇하지 않도록 하는 만큼 우리는 성화되고 성숙되어진다.
그리고 성령으로 채워져야 그리스도 우리 주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할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엡5:21)
왜, 피차 사랑하지 못하고 복종하지 못하느냐?
이유는 하나이다. 우짜둥둥, 육체를 따라 서로 주인 노릇하고 서로 이길려고 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주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긴다면, 경외한다면,
육체와 감정을 앞세워 피차 이길려고 하지 않고 피차 복종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고 계명이다.
예배와 기도와 말씀 생활을 통해서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런 교회로 세워지시길 바란다.
다른 것이 우선이 되는 삶은 머지 않은 장래에 부메랑이 되어 원치 않는 두려운 일로 오게 된다.
“악인에게는 그의 두려워 하는 것이 임하거니와 의인은 그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느니라”(잠8:30)
거룩하고 흠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우리가 항상 성령을 구하고 의지하면서, 그리스도를 마음과 뜻을 다해 경외해야 한다.
그리스도를 두려운 마음으로 사랑하고 섬기는 경외함이 있다면,
우리는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끼리 피차 복종할 수 있을 것이다.
이 하나님이 방법만이 내 마음에도 관계에도 천국과 평화가 임하게 할 것이다.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고,
티나 주름 잡힌 것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는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와 성도로 세워지자.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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