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앞의 유일한 소망이신 하나님”
지난 주 사랑하는 벗의 아들이 죽었다. 21년하고 몇 달을 살고… 친구는 그 슬픈 소식을 안고 아들의 시신이 있는 영국으로 떠나던 날 아침 일찍 나에게 전화를 걸어 밑도 끝도 없이 말했다. “너무 힘들어서 전화를 했어”, 그리고 한 동안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하더니 피를 토하듯 한 마디를 더했다. “세윤이가 죽었어.”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도대체 무슨 소리야, 뭐가 어쨌다고, 누구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머리 속에서는 콩 볶듯이 여러 외침이 엇갈리며 충돌했지만 정작 입 밖으로는 한 마디도 내뱉을 수가 없었다. 침묵도 반응일까. 고통 가운데서 며칠이 지나 그가 기도하는 친구들에게 보낸 이메일의 한 구절은 그렇지 않아도 심란한 나를 또 다시 흔들어 놓았다. “평생 눈물 속에서 두고두고 풀어야 할 한 가지 숙제를 받은 것 같습니다.”
죽음 앞에서 던지는 질문
죽음 앞에서 우리에게 무슨 힘이 있는 것일까? 내가 묻고 싶은 것은 죽음의 공포를 이길 힘이 아니다. 인생을 더 이상 누릴 수 없다는 의미에서 죽음이 두렵다는 말이 아니다. 그보다는 죽음과 함께 찾아오는 슬픔을 극복할 힘에 대하여 묻고 있는 것이다. 나 자신이 죽는 것이야 무섭지 않다. 하지만 낳고 기른 자식이 죽음으로 말미암아 더 이상 바라볼 수 없고, 말을 나눌 수 없고, 살을 비빌 수 없게 되었다는 그 슬픔을 이길 힘이 우리에게 있는 것일까? 그 옹알거리며 손짓발짓하던 아들의 모습을, 무릎이 깨져 방울처럼 눈물을 떨구던 아들의 모습을, 받아쓰기에 별 다섯 개를 맞고 입을 다물지 못하던 아들의 모습을, 밤샘공부로 얼굴이 새하얗게 되었던 아들의 모습을,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돌아와 피곤을 이기지 못해 코를 골던 아들의 모습을 내 친구는 머리 속에서 지워버릴 힘이 있는 것일까?
슬픔을 극복할 수 있는 힘?
있다면, 그것은 오직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10절)이다. 살아계신 하나님, 그 분만이 우리에게 소망이 되신다. 죽음이 두려움뿐 아니라 슬픔이라는 무기로 우리를 장악하려고 할 때, 우리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만 평안을 얻는다. 그래서 어거스틴의 고백은 백 번 옳다. “당신은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창조하셨으니, 우리의 마음은 당신 안에서 안식할 때까지는 평안하지 않나이다”(Tu nos fecisti ad Te, et cor nostrum inquietum est, donec requiescat in Te). 살아계신 하나님은 우리가 죽음의 슬픔 앞에서 끊임없이 돌아가야 할 대상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만 죽어야할 인간은 소망을 얻기 때문이다.
사도 바울은 이 사실을 일찍부터 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곳에서 말하고 있듯이 그는 복음을 전하는 길을 쉼 없이 달려갔던 것이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숨을 다하고 힘을 다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사도 바울이 보여준 모습은 수고와 진력이었는데, 그 원동력은 오직 한 가지였다.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하나님만이 그 해답일 뿐
아들의 시신을 보고 오열하는 친구에게 못할 말을 썼다. “그저 주님의 은총이 너와 네 가족에게 임하기를 빌 뿐이다. 말문이 막히고 가슴을 에우는 이 슬픈 소식 앞에서 너에게 무슨 위로를 하겠니. 하나님께서 당신의 큰 뜻을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우리의 어리석음에 더 큰 어리석음을 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구나. 네 아들은 내 아들과 같아. 그래서 마음이 아프고 아파서 견딜 수가 다. 하지만 내 아픔을 네 아픔에 견주겠니. 너와 네 가족의 눈물에 내 눈물을 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너와 네 가족은 세윤이를 하나님께 먼저 보내놓고 얼마나 오랫동안 슬퍼할까. 그 아이의 싱겁게 웃는 모습이 눈에 아리게 떠오른다. 그래, 눈물을 참지 말아라. 우리는 앞서간 아들을 그리워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비로소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않겠니. 그 사랑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 너와 네 가족에게 정말 육체를 가지고는 도무지 이겨낼 수 없는 지독한 은혜를 주시는구나. 멀리서 외로이 슬픔을 견디어야 할 너와 함께 있지 못하는 것이 무척 죄스럽다. 용서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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