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한경직목사

학생의 헌신 (고린도후서 8:1-15)

새벽지기1 2016. 11. 26. 07:04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고후8:5)

오늘 저녁 본 교회에서 처음으로 학생 예배를 보게 된 의의 깊은 이 시간에 우리 학생들이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것을 여러분과 같이 생각하고자 합니다.
이 말씀은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의 일절 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좇아『먼저 몸을 주께 드리고』그리고 다른 것을 해도 하라고 한 것입니다. 오늘 저녁에 말씀하려는 문제를 간단히 잡자면『먼저 몸을 주께 드리자』인데, 배우는 사람도 먼저 몸을 주께 드리고 나서 배우고 일하는 사람도 먼저 몸을 주께 드리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가지고 있는 생명은 오직 하나밖에 없습니다. 이 귀한 생명을 우리가 잃는다면 다시는 찾을 길이 없을 것입니다.『천지는 무시종이요 인간은 유생 사』(天地無始終 人間有生死)라 하여 세월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흘러가지만 우리 인생은 60년이나 혹은 70년이라는 한 생애를 가지게 되는 데 불과합니다. 이 하나밖에 없는 우리의 생명, 짧은 시기밖에 살지 못하는 우리의 한 생애를 어떻게 사용하며 어떻게 지내야 하겠습니까? 더구나 우리가 가지는 청년 시대는 아주 잠깐 되는 순간입니다. 한 번 지가가면 찾아오려야 찾을 수 없는 가장 귀한 시간입니다. 누구나 청년 시대는 가질 수 있지만 누구나 다 가져 볼 수 없는 학생 시기를 여러분은 가지게 되었으니 여러분의 행복은 무엇으로 형용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이 잠깐 되고 귀한 행복스러운 학생 시대를 여러분은 어떻게 지내려고 합니까? 속절없이 났다가 속절없이 가 버리려느냐, 뜻 있게 유인하게 고상하게 보내려느냐? 나는 여러분은 이 시대를 유익하게 뜻 있게 고상하게 지내려는 줄 믿습니다. 그러려면 무엇을 하겠습니까? 여러 가지로 할 일이 많겠지만, 제일 필요한 것은 먼저 몸을 주께 그리는 일입니다.
동양에는『물유본말 사유종시』(物有本末 事有終始)라는 말이 있고, 서양 속담에는『아무리 바빠도 수레를 말 앞에 못 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고금을 물론하고 동서양 역사를 살펴보면, 혹은 국가를 위하여, 사회를 위하여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운 역사적인 위대한 인물들은 소년 시대에 온전한 헌신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일대의 영웅 하니발은 9세인가 11세 때에 국가를 위하여 헌신하였으며, 앗시시의 성자 프랜시스와 존 녹스 역시 소년 시대에 하나님께 헌신하였고, 영국 교회의 대부흥가 웨슬레는 학생 시대에 온전히 하나님 앞에 몸을 바쳤습니다.


먼저 우리의 몸을 주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잘못하면 우리의 몸을 잘못 드리게 되는 일이 많습니다. 히틀러를 위하여 나치스 제단에 몸을 드린 독일의 청년들, 무솔리니를 위하여 파시스트 제단에 몸을 드린 이태리의 청년들, 일본의 천황을 위하여 제국주의 제단에 몸을 드린 일본의 청년들, 그리고 유물론 철학을 토대로 한 공산주의 제단에 몸을 드리고 떠들어대는 가련한 청년들, 이 모든 청년들은 귀한 몸을 헛되게 잘못 드린 것입니다. 나치스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파시스트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제국주의 제단에 뿌린 희생의 피, 이렇듯 많은 희생의 피는 한 번 역사의 바퀴가 구른 오늘날에 와서 무엇이 되고 말았습니까? 피를 흘리되 값없이 흘리는 피처럼 참으로 비참한 것은 없습니다. 따라서 공산주의의 제단에 드리고 있는 저 희생물의 장래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우리가 가히 짐작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몸을 드리되 누구에게 드리려고 하십니까? 온전히 거룩한 하나님께, 주님께 드려야 합니다. 잠깐 떠들다가 스러지고 마는 물거품과 같은 제단에다 몸을 드리다가 무참히 쓰러지고 마는 어리석은 청년이 되지 마십시다.
「몸을 드린다」는 말은 산 제사를 드린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12장에 보면『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몸으로 산 제사를 드리라, 이는 거룩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니 당연한 예법이라. 너희가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변하여 새 마음을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라』고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유대인들이 제사를 드릴 때에는 양이나 염소 같은 짐승을 잡아서 드렸는데 흠 없는 것을 전체로 드려야 했습니다. 하기는 말라기서에 보면 흠 있는 절름발이를 가져다가 제사를 드렸다고 하였으나 흠 없는 짐승을 드리는 법이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헌신하는 데 있어서도 두 가지 사상이 필요합니다.
첫째는 흠 없는 우리 몸을 산 제사로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입니다.

흠 없다는 뜻은 회개하여 죄를 없이한 것을 말함입니다. 여기 어떤 사람이 하나님께 몸과 마음을 드린다고 하면서 죄를 그대로 가지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을 소흘히 여기는 것입니다. 모든 죄의 생활을 청산하는 일이 없이 하나님 앞에 몸을 드릴 수는 없습니다.
둘째로는 흠 없는 몸을 드리되 몸에 속한 것 전체를 번제(燔祭)로 드릴 것입니다.
몸을 드린 후에는 배워야 되겠습니다. 대저 교육의 목적은 일본 사람에게 물어보면 황민을 양성하는데 있다고 하였고, 미국인에게 물어보면 민주주의적 국민을 양성하는 데 있다 할 것이나, 요컨대 교육의 목적은 인격의 건설, 자아의 완전한 실현에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상으로 하는 인격, 우리가 이상 하는 완전한 자아는 예수 님의 인격에서 비로소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배우는 데 있어서도 우리는 먼저 주님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의 마음과 성품을 배우며 주님의 하신 사업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성경을 통하여 기도함으로써 또는 주님을 모방함으로써 배워야 하겠습니다.


다음에는 과학을 배워야 합니다. 현재 과학의 지식이라 하면 그 범위가 너무나 넓어서 다 배울 수는 없으나 어떤 부문에 있어서 전문적 지식을 배워서 사계(斯界)의 제일인자라는 권위를 가질 만큼 되어야 하겠습니다.
우리 대한 청년은 지금 각 방면에 있어서 전문적으로 철저히 배우지 않으면 20세기 현대에 있어서 외국인과 도저히 어깨를 같이 겨루고 나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기독학생은 어떤 부문에 있어서든지 전문적 지식과 기술을 배워서 세계 어느 나라 학생들과 견줄지라도 손색이 없는 학생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과학도 기독학생과 같이 주님께 헌신한 이에게 있을 때에 비로소 세계 인류이게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여러분은 항상 나는 대한의 학생이라는 것을 기억하기를 바랍니다. 나는 일본인은 물론 아니요, 미국인도 아니요, 중국인도 아니요, 소련인도 아니라, 반만 년 역사를 가진 이 무궁화 삼천리에 태어난 대한의 아들, 대한의 학생이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고래로 우리 민족에게는 사대주의(事大主義)라는 것이 있어 혹은 일본을 의지하며 혹은 미국을 의뢰하며 혹은 소련을 의뢰하고자 하는 악습이 있는데 이러한 우리 민족적 폐풍은 그리스도를 모방하는 여러 기독학생들로서 철저히 숙청하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애굽 궁전에서 호화로운 몸으로 여러 애굽 청년들과 같이 과학을 공부하고 있었지만 어머니의 무릎 위에서 들은『너는 이스라엘 사람이다』라는 말을 잊지 않고 마침내 자기의 동족을 구출해 내는 위대한 민족 지도자가 되었고 바벨론에 잡혀가 있던 다니엘은 자기는 이스라엘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궁중에서 많이 먹을 수 있는 좋은 음식을 도무지 입에 대지 않았던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에는 예수를 믿는 사람도 많지만 술 안 먹고 담배 안 피우는 사람은 적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도 그대로 해서는 안 됩니다. 영 미인들이 저렇게 해도 잘 사니 우리도 그렇게 하자고 해서는 안 됩니다. 영미인과 우리는 다릅니다. 그네들에게는 이미 200여 년 전에 경건한 신앙을 가지고 한 손에는 검을, 한 속에는 성경을 들고 땀을 흘리며 부지런히 싸워 나가던 청교도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야만들이 살고 있고 짐승들이 횡행하는 거친 대륙을 모두 개척해 놓았습니다. 이리하여 오늘의 미국인들은 저들의 선조가 쌓아 놓은 열매를 따먹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의 대한은 200여 년 전의 미국과 같아서 전부 황폐해졌습니다. 산이 황무(荒蕪)하고 강이 황폐했습니다. 이 황폐한 산과 강을 오늘 우리는 개척해야 되겠습니다. 교통 기관과 산업 기관이 파괴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파괴된 기관들을 다시 건설해야 되겠습니다. 영 미국의 대학생이 담배를 피운다고 해서 오늘 대한의 학생이 담배를 피워서 안 되겠습니다. 영국의 학생이 8, 9시간 공부한다면 우리는 12, 3시간 공부해야 합니다.
대한의 건설은 결국 온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예수를 배우고, 과학을 배우며, 조국 대한을 사랑할 줄 아는 참된 기독학생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것입니다.
(1947년 2월 2일·영락교회 기독학생회 헌신예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