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존 칼빈

[스크랩] 하나님은 불경한 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여 심판을 시행하신다

새벽지기1 2016. 7. 4. 12:26

제 18장 하나님은 불경한 자들을 도구로 사용하셔서

심판을 시행하시며, 동시에 스스로 부정함이 없이 순결을 유지하심

 

하나님의 섭리는 단순히 “허용하심”이 아님

 

하나님께서 사탄과 모든 악인들을 굴복시키고 이끄셔서 자기의 뜻에 복종시키시는 것을 말씀하는 구절들이 있는데, 여기서 좀 더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육신적인 생각으로는, 하나님께서 사탄과 악인들을 통해서 역사하시면서도 그들의 불법에 오염되지 않으시며, 그들과 더불어 일상적인 활동을 하시면서도 그가 죄책을 지지 않으시며, 따라서 그가 자신이 쓰시는 그 사탄과 악인들을 올바르게 정죄하실 수 있다는 것을 도저히 납득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밀한 명령이 없이는 사람들이 아무것도 이룰 수가 없고, 사람이 아무리 일을 도모하여도 하나님께서 이미 작정하시고 그의 은밀한 의도에 따라 결정하시는 것 이외에는 그 어떠한 일도 이룰 수가 없다는 것이 무수한 증거들에 의해서 확실히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이나 사탄 자신이 일을 일으킨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열쇠를 쥐고 계시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노력을 돌려서 자신의 심판을 시행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릇된 왕 아합이 속임을 당하기를 원하셨다. 그리고 마귀가 이 목적을 이루겠다고 했고, 결국 그가 구체적인 명령을 받고 보내심을 받아 모든 선지자들의 입에서 거짓말하는 영이 된 것이다(왕상22:20,22).

 

유대인들은 그리스도를 제거할 의도를 갖고 있었고, 빌라도와 그의 군졸들이 그들의 미친 생각에 합세하였다. 그러나 모든 불경자들이 행한 일은 그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음을 제자들이 엄숙하게 기도하는 중에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행4:28). 그 일에 앞서서 베드로도 그렇게 설교한 바 있다.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행2:23). 이는 마치 하나님께서 애초에 모든 것을 아시고, 유대인들이 시행하게 될 그 일을 친히 의도적으로 기꺼이 결정하셨다는 뜻과도 같은 것이다. “하나님이 모든 선지자의 입을 통하여 자기의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을 이와 같이 이루셨느니라”(행3:18).

 

성경 역사에서 우리는, 일어나는 모든 일이 전부 여호와께로부터 비롯되는 것임을 자주 접하게 된다. 열 지파가 배반한 일이나(왕상11:31), 엘리의 아들들의 죽음(삼상2:34) 등 그 실례가 수없이 많이 나타나는 것이다. 하나님의 섭리를 그저 단순한 허용하심으로 바꾸어 버리는 자들의 논지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인가 하는 것이 충분히 드러나고도 남는 것이다.

 

하나님이 실질적으로 모든 일을 주관하심

 

그 은밀한 충동에 관한 한, “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봇물과 같아서 그가 임으로 인도하시느니라”(잠21:1)라는 솔로몬의 진술이 모든 인류 전체에게 미치며, 또한 “우리가 마음에 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밀한 감동으로 된 것으로 그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것이다”라는 말만큼이나 무게를 지닌다 하겠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에 내적으로 역사하지 않으신다면, 그가 제사장에게서 율법을 제거하며, 장로에게서 책략을 없애신다는 말씀(겔7:26)이나, “만민의 우두머리들의 총명을 빼앗으시고 그들을 길 없는 거친 들에서 방황하게 하신다”(욥12:24)는 말씀은 올바른 말씀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마음에 두려움을 주셔서 사람이 두려움에 휩싸인다고 하며(레26:36), 다윗도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깊이 잠들게 하셔서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사울의 진영에서 도망하였다고도 말씀하는 것이다(삼상26:12). 그러나 무엇보다도 가장 분명한 증거들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어둡게 하시며(사29:14), 그들을 정신병으로 치시며(산28:28,슥12:4), 깊이 잠들게 하는 영으로 눈을 감기시며(사29:10), 그들을 미치게 하시고(롬1:28),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신다(출14:17)는 선언들에서 나타난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의 뜻(의지)이 모든 일의 원인이라고 말하기 때문에, 나는 하나님의 섭리가- 성령의 다스림을 받는 택한 자들 속에서 그 힘을 드러낼 뿐 아니라, 버림받은 자들을 강제로 복종케 함으로써- 모든 인간의 계획과 도모하는 바를 결정짓는 원리임을 제시한 것이다.

 

하나님의 뜻은 단일함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순전하시다”(시51:4). 그는 자신이 빛과 어둠을 창조하시며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신다고 친히 선언하시며(사45:7), 자신이 행하지 않으시는 재앙이 없다고 말씀하신다(암3:6). 누가는 헤롯과 빌라도가 “하나님의 권능과 뜻대로 이루려고 예정하신 그것”을 행하려고 서로 모의하였다고 보도한다(행4:28). 하나님의 뜻이 하나님께는 하나요 단일한 것인데 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보이는 것은, 우리의 정신적인 역량이 부족하여 하나님께서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어떤 일을 뜻하기도 하시고, 뜻하지 않기도 하시는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인 것이다.

 

바울은 이방인들을 부르신 일을 가리켜 “감추어졌던 비밀”이라고 말씀하고 있다(엡3:9). 곧 이어서 거기서 “각종 지혜”가 드러난다고 덧붙이고 있다(엡3:10). 그렇다면, 하나님의 지혜가 이렇게 여러 가지로 나타난다고 해서, 우리에게 깨달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탓하며, 마치 하나님께 무슨 변이가 있는 것처럼- 상상해야 하겠는가?

 

그러므로 경건하고 겸손한 모든 사람들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 기꺼이 동의하는 것이다. “때로는 사람이 선의로 무언가를 뜻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닐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착한 아들은 그의 아버지가 살아 있기를 바라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기를 뜻하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선의로 뜻하시는 바를 그 사람이 악의로 뜻하기도 한다. 악한 아들은 그의 아버지가 죽기를 바라고, 하나님께서도 그것을 뜻하시는 경우가 있다. 사람이 뜻하기에 합당한 것과 하나님께서 합당한 것 사이에는 서로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의 뜻이 인정되기도 하고 인정되지 못하기도 하는 것이다. 악인의 악의를 통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의로우신 뜻을 실행하시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우구스티누스는 이렇게 외치고 있다. “하나님의 행하시는 일들이 위대하고 그 모든 뜻하시는 바가 고귀하도다(참조시111:2)! 이렇듯 하나님의 뜻이 아닌 것은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으니, 과연 놀랍고 말로 형언키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가 허락하지 않으시면 아무 일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하나님은 어쩔 수 없이 억지로 허락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꺼이 자의로 허락하시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께서 악에서 선을 이루실 수 없다면,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결코 악이 행해지도록 허락하지 않으실 것이다.

불경건한 자들을 사용하여 목적을 이루실 때에도 하나님은 언제나 공의로우심

 

압살롬이 그 아버지의 후궁들과 간음을 범한 일은(삼하16:22) 하나님께서 다윗의 간음을 이러한 치욕스런 일로 벌하고자 뜻하셨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악한 아들에게 그 치욕스런 짓을 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윗으로서는 시므이의 저주에 대해서 말한 것처럼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고 여겼을 것이다. 다윗은 시므이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자신을 저주한다고 고백했으나(삼하16:10-11), 마치 그 뻔뻔스런 개 같은 자가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하기라도 한 것처럼 그의 처신을 칭찬한 것은 아니다. 그저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하나님의 채찍으로 알아서, 잠잠히 그 징계를 참고 견딘 것뿐이다.

 

우리는 다음과 같은 점을 든든히 붙들어야 할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악인을 통하여 그의 은밀하신 판단으로 작정하신 바를 이루시지만, 그 사람들이 용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들은 육신적인 정욕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의도적으로 깨뜨린 것이지, 결코 그것에 순종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로보암 왕의 선택(왕상12:20)은 사람들이 악의로 행하는 바도 하나님께 속한 것이며, 그의 은밀한 섭리에 의해서 주도되는 것임을 분명하게 보여 준다. 하나님께서는 그 백성들로하여금 그를 선택하게 하심으로써, 그가 정하신 질서를 그들이 경솔하고도 광적으로 흐트러뜨리고, 다윗의 가문에서 벗어나 불신앙으로 타락한 일에 대하여 정죄하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여로보암의 기름부음을 받도록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호세아 선지자의 진술 가운데 얼핏 모순처럼 보이는 것이 있다. 한 곳에서는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호8:4)라고 탄식하시며, 또 다른 곳에서는 “내가 분노하므로 네게 왕을 주고 진노함으로 폐하였노라”고 말씀하는 것이다(호13:11). 이 두 가지 진술이 어떻게 일치하겠는가? 여로보암이 하나님의 뜻으로 통치한 것이 아니며, 그러면서도 그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그를 왕으로 지명하셨다니 말이다. 이에 대한 답변은, 그 백성들이 다윗의 집을 배반한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멍에를 뒤흔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또한 그렇게 하셔서 솔로몬의 배은망덕함을 벌하신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의 변절을 뜻하지 않으시지만, 동시에 다른 목적을 염두에 두시고서 공의로 배반을 뜻하기도 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기대와는 달리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여로보암을 이끄사 기름 부음을 받아 왕이 되게 하셨다. 이렇게 해서 성경의 역사는 하나님께서 원수를 일으키사 솔로몬의 아들에게서 나라의 일부를 빼앗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이다(왕상11:23).

 

독자들은 이 두 가지 사실을 주의 깊게 살펴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한 왕의 손으로 다스림 받기를 기뻐하셨으므로, 나라가 두 부분으로 나뉘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분리의 시작은 그 동일하신 하나님의 뜻에서 비롯된 것이다. 선지자가 입의 말과 기름 부음의 징표로 아직 아무런 생각도 없던 여러보암에게 왕위에 대한 기대감을 불어넣었는데, 이 일이 하나님이 알지 못하시는 상태에서나 혹은 그의 뜻에 반하여 이루어진 것이 결코 아니고, 사실 하나님께서 일을 그렇게 되도록 역사하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그 백성들이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다윗의 자손에게서 배반하였기 때문에, 이 일로써 그들이 올바로 정죄를 받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다음에 성경은 르호보암이 백성들의 간언을 교만하게 거부한 일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아 난 것이라”고 덧붙이고 있는 것이다(왕상12:15). 여기서 국가의 거룩한 통일이 깨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반하는 것이며, 그러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열 지파가 솔로몬의 아들에게서 떨어져나갔다는 사실을 주목하기 바란다.

 

온전한 사람들로서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다음과 같은 답변으로 언제나 충분할 것이다. “성부께서 성자를 내어 주셨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몸을 내어 주셨으며, 또한 유다는 그의 주님을 내어 주었으니, 이렇게 내어 주는 일에 있어서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사람은 죄악된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그것은 모두 똑같이 내어 주었으나, 그 내어 줌의 동기와 목적이 동일하지 않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닌가?”

 

또 그의 말이다. “하나님은 심지어 악인이 마음속에서도 자신이 원하시는 모든 일을 이루시고, 그러면서도 그들에게 그들의 악행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시니, 이런 판단에 대해서 누가 감히 떨지 않겠는가?”

 

유다가 배반한 일의 경우에도, 하나님께서 성자를 죽음에 내어 주기를 뜻하셨는데, 그 범죄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린다는 것은 구속 사역의 공로를 유다에게 돌리는 것만큼이나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아우구스티누스는 다른 곳에서 올바로 지적하기를, 하나님께서 친히 살피실 때에는 사람들이 어떤 일을 할 수 있었는가, 혹은 그들이 실제로 어떤 일을 했는가 하는 것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행하고자 하는 뜻이 무엇이었는가를 보시며, 그리하여 목적과 뜻을 염두에 두신다고 하였다.

 

이것이 가혹한 것 같다고 여기는 자들이 있다면, 성경이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을 자기들이 정신적인 역량으로 이해하지 못한다 하여 공적으로 제시된 것들을 책잡는 그들의 까다로운 자세가 얼마나 역겨운가를 잠시 동안이라도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로서는 겸손하게 배우고자 하는 자세로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성경에서 무엇을 가르치든 최소한 그것들을 책잡지 않는 것만큼 지혜로운 처사는 없는 것이다.

 

- 존 칼빈, 기독교 강요, 상권(크리스챤다이제스트), 279-291


-청교도의 길-

출처 : 물과피와성령(water and blood and the Holy Spirit)
글쓴이 : 박요셉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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