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 「성령론」(15)

새벽지기1 2016. 6. 17. 08:40


17 장 성령과 말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

 

1. 성령의 검의 특징


적의 특정한 방식의 공격을 물리친다기 보다는 적을 ‘송두리채’ 물리친다. 적 자체를 제압하는 것을 도와준다. ‘공격적’인 무기이다검은 공격과 방어라는 이중의 목적에 쓰인다. 그것으로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4:7). 우리가 그를 물리칠 수 있는 것이다. 마귀는 우리 안에 공포와 무력감이 생기게 한다. 검에 대한 바울의 말은 그런 감정에 대한 궁극적인 구제책이다. 신약성경은 우리가 마귀에게 두려운 마음으로 위축되어서는 안되며 그를 대적할 수 있는 우리의 능력을 확신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이것은 마귀에 대한 무모함이나 마귀를 우습게 여기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다. 벧후 2:10과 유다서의 경고를 기억해야 한다. “영광있는 자를 해방해서는 안되며” “마귀를 거스려 훼방하는 송사를 하여서도안된다. 이 큰 원수의 힘과 능력과 세력을 과소평가해서는 안된다. 동시에 겁을 내어서도 안된다.

우리는 서서’ ‘대적하고성령의 검을 사용하여 마귀가 우리로부터 도망가도록 해야 한다. 우리들이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걱정이 없다는 지나친 자신감에 빠져서는 안된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동시에 마귀를 두려워해서도 안되며 그의 거대한 능력과 권세 때문에 완전히 무력감에 빠져서도 안된다.

 

2. 성령의 검이란 무엇인가?


새영어성경에서 이것을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라고 번역하였는데 잘못된 것이다. ‘성경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또 하나의 그릇된 해석은 성령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경의 어느 곳에서도 성령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기록된 곳은 없다. 바울이 말하는 바는, 성령이 여러분에게 주는 검, 즉 하나님의 말씀, 성경을 붙들라는 것이다. 주님은 성령이 충만하여 마귀에게 시험받으실 때,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을 인용하여 물리치셨다. 우리 주님께서 사용하신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 곧 성경이었다. 여러분과 나도 마귀와 그의 모든 권세에 대해 똑같은 무기,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싸워야 한다. ‘성령의 검이라는 말은 그것을 주신 이가 하나님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검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성경을 기록한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시는 것은 성령이시며 바로 그런 의미에서 성령의 검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이는 성경이 성령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준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1).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과 능력, 그리고 생각으로 마귀와 싸워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자신의 영이 내신 말씀으로 싸워야 한다. 성령이 성경의 저자이다. 이 말은 성경을 기록한 사람이 기계적으로 썼다는 뜻이 아니라 그들을 택하시고 인도하시고 영감을 주셔서 잘못없이 기록할 수 있는 계시와 능력을 주시는 장본인이 성령이라는 뜻이다.

 

3. 말씀과 성령의 관계


우리로 하여금 말씀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 뿐이다.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여 하심이라”(고전2:12). 어떻게 사람들이 주를 믿게 되는가?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의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인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오직 성령만이 우리에게 말씀을 ‘해석’할 수 있다. 그것은 전적으로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이 말씀에 관계된 모든 일은 처음부터 끝까지가 항상 성령께서 작용하신 결과이다. 육체적인 의미에서 아무리 유능한 사람이라도 그 능력은 성경을 해석하는데 도움이 안된다. 그는 천재이거나 위대한 학자일 수도 있지만 그런 것은 여기서는 도움이 안된다. 진리는 영적으로 분변하는것이다.

 

성령과 말씀과의 관계는 매우 중요한 관계이다. 그것을 깨닫지 못하였기 때문에 기독교 교회의 오랜 역사속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사람들은 어느 한쪽이나 다른 한쪽만을 강조하려 한다. 성령과 말씀을 나누자 마자 여러분은 어려움에 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빛만 받으면 말씀은 전혀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바로 이 주장이 퀘이커교도들의 비극이었다. 죠지 폭스는 올바르고 균형있게 그의 사역을 시작했었는데 계속해 나가면서 점점 말씀에는 주의를 더 기울이고 내적인 빛’ ‘성령의 조명’ ‘즉시 받는 말씀에 보다 주의를 기울이려고 하였다. 그것이 새영어성경의 번역 하나님께로부터 온 말씀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말해준다. 바로 이것이 광신자들이 주장하는 것이다. ‘열성분자곧 광신자들의 모든 견해는 항상 그런 것에 근거를 두고 있다. 또 다른 극단적인 경향은 성령을 무시하고 성경 말씀을 앞에 펴놓고 기계적으로 알기만 하면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은 잊혀지고 생명없는 교리와 성경에 관한 단순한 지적이고 이론적인 지식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와 그의 정사와 권세에 맞서 참으로 싸움을 싸울 수 있게 해 주지는 못한다.

 

성령과 말씀은 항상 하나가 되어야 한다. 성령이 없으면 성경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것은 우리에게 생명 없는 글자일 뿐이다.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필요한 것은 말씀을 열어주시고 지성과 감정을 열러주시는 성령이다. 우리는 사도가 그런 것처럼 말씀과 성령 이 두 가지를 합한다면 잘못에 빠질 리가 없다. 그것을 분리해 버린다면 마귀가 벌써 정복하려고 분리시켜 버린 셈이 된다. 마귀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총 공격을 행한다. 태초로부터 진리의 적이었던 철학을 통해 공격한다. 그리스도교회가 치러야 했던 첫 번째 싸움은 헬라 철학과의 싸움이었다. ‘인간은 탐구함으로써 신을 발견할 수 있으며 명상과 이론의 완성의 결과로 진리에 이를 수 있다고 하는 거대한 철학적 전통과 견해가 있었다. 우리는 아직도 이런 류의 싸움을 하고 있으며 이전보다 더 심한지도 모른다. 철학과 결부된 것은 일반적으로 지식이라 불리우는 인간이 가진 모든 지식을 말한다. 특별히 과학적지식의 경우도 그러하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를 배척하는 것은 현대의 발달한 과학적 지식에 의해서다. 이 특별한 공격을 격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성령의 검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휘두르는 것 뿐이다. 달리 방어할 방법은 없다. 이것이 우리 주님께서 몸소 하신 것이었다. 예수님을 반대하던 바리새인, 서기관, 율법학자들도 그들의 세력이었다.

 

4. 성경을 어떻게 사용할 것인가?

주님도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 율법사를 맞섰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10:26). “성경은 폐하지 못하나니 - 너희가 참람하다 하느냐?”(34-36). 주님은 항상 그런 방법으로 행하셨다. 오늘날 우리는 모든 계시와 복음의 근본마저 불신하려는 시도에 맞서 있다. 그런 공격에 맞서는 유일한 길이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라고 바울은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선교하며 항상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였다.’ “성경을 가지고 강론하며 뜻을 풀어 이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했다. 그의 서신들은 구약으로부터 유래된 성경의 인용으로 가득차 있다. 복음서들도 같은 식으로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 사도들이 행한 그대로 순교자들과 신앙 고백자들도 행하였다. 루터도 항상 성경의 입장을 취하였다. 비록 그가 홀로 선한 개인에 지나지 않았지만 천 이백년이나 된 교황제도의 전통에 맞서 싸울 수 있었다. 그는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그런 일을 하였던 것이다 영국의 신교 교부들도 청교도들도 역시 똑같이 하였다.

 

현대의 신교도들은 철학과 과학과 새로운 지식으로 악과 싸울 것을 주장하지만 그것은 철저한 패배를 초래할 뿐이다. 적이 변절시킨 교회이거나 혹은 현대의 지식과 과학과 철학을 가진 이단이거나를 막론하고 기독교의 모든 복음에 도전하는 어떠한 적에 대해서도 싸울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 뿐이다. 원수와 싸우고, 그를 물리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붙드는 것이다. 이 검을 들고 성령의 능력 안에서 그것을 사용하도록 하자. 우리가 주님이 이기셨던 것처럼 이기려면 구원의 방법과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뿐만 아니라 성경도 알아야 하며 그것을 자세하게 알아야 한다. 누가 우리를 동요시키려 할 때 성경을 이용하는 방법과 가장 효과적인 말씀을 인용하는 방법도 알아야 한다. 잘 훈련된 그리스도인이면 누구든지 자기 자신의 경험으로 이런 것을 알아야 한다. ‘이라는 말은 우리 주님께서 시험을 당하실 때처럼 성경을 이용하고 어떤 특정한 문제에 대해 적당한 대답을 할 수 있는 능력에 관계되는 것이다. 검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우리는 성경을 알아야 한다. 성경 전체를 알고 있어야 한다. 단지 단편적인 방어의 말씀만을 배우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다. 모든 성경을 알아야 한다. 주님께서 신명기를 인용하셨던 것을 보라. 주님은 분명히 신명기 전체를 아셨음을 보여 주고 있다. 우리는 성경 속에 잠겨야 하며, ‘성경에 통달해야 한다.’ 그래야 시험을 당할 때 적당한 말씀이 떠 오를 수 있게 하시고, 직접 말씀을 주시며, 우리를 성경으로 인도해주시는 능력을 우리가 감지하게 된다. 성령은 우리를 깨우쳐주시고 이끄시고 인도하실 것이다. 우리는 몇 구절을 읽고 스스로 만족해 버리거나 하루의 몫을 다 읽고나서 참으로 성경을 공부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우리는 성경공부에 시간을 들여야 하며,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야 하며 모든 성경을 읽어서 성경 각 부분을 아는데 정말로 몰두해야 한다. 그러면 어떤 순간에도 우리는 합당한 대답을 할 수 있게 되며, 마귀는 꺾일 뿐 아니라 쫓겨서 우리로부터 도망할 것이다.

 

우리 모두 그렇게 하여 주의 영광을 드러내고 주를 찬양하기 위해 성령의 검을 사용하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