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 성령론

로이드 존스, 「성령론」(12)

새벽지기1 2016. 6. 12. 06:25


14 장 이 최고 최상의 구원의 확신(성령 체험)을 가졌는가?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8:16)

 

1. 체험을 구하라

 

분명하고 확실하게 그것은 추구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 능히 갖추어야 할 것에 미치지 못하는 상태에서 만족해서는 결코 안되기 때문이다. 주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풍성한 부요에 속한 모든 것을 누리기 위해서 언제나 열심히 사모해야 한다.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언제나 사랑의 특성이다. 사랑은 줄 뿐 아니라 요구하기도 한다. 신약성경에서 이 축복을 위해서 기도하라는 성령의 권고가 없기 때문에 그것을 추구하는 것은 분명히 그릇된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는 잘못된 논증일 뿐 아니라 매우 위험스러운 것이다.

 

신약성경의 지면마다 묘사되어 있는 모든 것이 성령을 크게 부어주시는 시대에 일어났음을 기억해야 한다. 1:13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는 그리스도인들이 믿고 하나님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은 것을 기정 사실로 인정하고 있다.

 

오늘날에는 고린도전서를 쓸 필요가 있는 교회들이 그렇게 많지 않다. 특별히 영적 은사에 관한 12~14장에 기록된 것을 받을 만한 교회들이 많지 않다. 그러나 그때는 사람들이 성령의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그것이 매우 필요하였다. 우리는 우리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확실히 알기 위해서 부지런해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우리 영으로 증거하는 이 성령의 증거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길은 없다.

 

주님은 눅 11장 특히 13절에서 누가 아들이 생선을 달라 하면 생선 대신에 뱀을 주며 알을 달라 하면 전갈을 주겠느냐 너희가 악할찌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하셨다.

 

우리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 그 때처럼 오늘날도 성령을 주십사고 구해야 한다. 이 말씀의 정확한 병행구는 요한복음 737-39이다. 누구든지 목 마르거든 나에게 와서 미시라”.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을 받을 것임을 의미하지는 않으셨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생명강수가 그들의 속에서 흘러나올 것이라라고 말할 수는 없다. ‘누구든지 목마르거든이다 너희가 성령이 부족하다는 것을 알고 이 필요성을 느끼게 되면 하나님 아버지께 나가서 간구하라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보편적인 권면은 우리가 그것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은 끈덕지게 요구하도록 강조하고 계신다. 구하라 찾으라 문을 두드리라계속해서 끊임없이 간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급박하게 구하여 사모하는 축복을 받기까지 계속해서 간구하는 것의 중요성을 예증하고 계신다.

 

2. 구하는 방법

 

그 증거는 우리가 취할 수는 없다. 그것을 성령께서 행하시는 것이다. 다만 그것을 사모하고 그것을 간구할 따름이다. 믿음은 축복 그 자체에 매달려 있지 않으며 축복을 주시는 분에게 매달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간청하는 것이다. 믿음은 우리 속에 긴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산출한다. 받으면 전에는 전혀 겪어 보지 못했던 감동을 받는다. ‘놀라움과 사랑과 찬양의 분위기 속에 빠져 든다. 눈물이 터져 나오고 경건해진다. 이것은 본질적으로 체험적이며 경험적이다.

 

그러나 어느 집회에 참석하여 안수를 받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것은, 성령세례를 받으려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결과로 받을 수가 있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교회사에는 가톨릭의 견진성사(안수례) 교훈을 말고는 이 점에 관한 언급이 하나도 없다.

 

새로운 신학적 해석은 20세기 동안에 일어났다. 특히 1907년쯤 해서 그 교훈이 대중화되었다. 사도들은 안수하여 성령세례를 받게 했다. 그러나 그 권능은 특별한 목적을 위해 의도된 사도들에게만 국한된 것이었다. 전도자 빌립마저 그것을 소유하지 못했다. 사도바울의 경우에도 아나니아에게 주어졌다.

 

사도적 계승의 신비를 믿는 사람들은 로마 카톨릭이든 성공회든 간에 그것을 가졌노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 열매로 그들을 알 것이다. 19세기 초엽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있었는데 며칠씩 묵으며 기다리는 집회를 말한다. 그것은 사실 자기가 그 권능이 오는 때를 결정하는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때에 이것을 주시고 또 자신의 방법으로 이것을 주신다. 어느 집회를 떠나기 전에 그것이 일어나야 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처사일 뿐 아니라 이상한 심리적이고 환각적인, 심지어 마귀적인 권세에 기회를 주는 것이 된다. 언제나 마귀의 권세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잘못 인도하고 우리에게 거짓되고 기만적인 체험을 주려고 벼르고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3. 이 체험의 축복은 어떻게 오는가?

 

1) 이 체험적 성격과 본질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이 성령의 증거를 가지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성령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가지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즐길 수 있다고 믿자. 또한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사랑이 나를 강권한다고 말할 수 있음을 인식하자. 또한 우리는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케될 수 있음을 인식하자(3:18,19). 그것을 얻기까지 쉬지 말고 전진하자.

 

2) 삼가 옳은 일을 추구하도록 하자. 단순히 어떤 체험이나 확증들만을 추구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추구하자. ‘불덩어리나 어떤 전선에 감전되는 것 같은 몸을 관통하고 지나가는 것을 구하지 말라. 오직 그를 찾자. 그를 알기 원하며 그의 부활의 능력과 그의 고난에 동참하기를 원한다고 말하자. 마음에 부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아는 지식을 원하도록 하자.

 

이것이 아니면 나는 참된 증인일 수 없다. 나는 오순절 날이 되기 전에 제자들이 했던 것처럼 주님을 위한 증인이 될 수 없다라고 고백하자. 그리스도께서는 그 권능이 오기까지 거기 머물라고 말씀하셨고 또한 그 권능이 오기까지는 그를 증거할 수 없음을 말씀하셨다. 우리 스스로에게 그 권능 없이 증인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요, 그러한 것이 없이 내가 가련한 증인이 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묻도록 하자. 그의 영광만을 구하되 우리들의 영광을 구하지 말자.

 

3) 최선을 다해서 그를 기쁘시게 하라. 바울이 13절에서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한 것과 같다. 최선을 다해서 거룩해지기 위하여 노력하라.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벧후1:5-7)”는 명령을 준행하라. 기록된 말씀 가운데서 그를 부지런히 찾도록 하자.

 

흔히 그에 관해서 읽고 있을 때에 그를 만났다. 말씀을 읽자. 말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그것을 묵상하자. 이것이 성도들이 따랐던 방법들이다. 그런 다음에 모든 열심을 난 뒤 끊임없는 기도를 드리자.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리라”.

 

계속해서 그렇게 해 나가도록 하자. 어떠한 것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고 사모하는 바를 있는 힘을 다해서 그리스도에게 알리자. 다른 어떤 일보다도 그 일에 전념하면서 꾸준히 끈질기게 나가자. 응답이 없더라도 계속 추구해 나가라. 계속 문을 두드리라. 이사야가 또 여호와께서 예루살렘을 세워 세상에서 찬송을 받게 하시기까지 그로 쉬지 못하시게 하라”(62:7)와 같이 행하자. 이것이 성경의 교훈이다.

 

토마스 구드윈(1600년대 말), “성도라면 이 축복을 기다려야 한다. 유대인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기다렸듯이 여러분은 여러분의 심령 속에 성령이 임하시기를 기다려야 한다. 신앙의 위인들은 밥낮 이 약속을 기다리면서 하나님을 섬겼다. 밤낮 충실하게 여러분의 하나님을 섬기라 또 겸손하게 행하라. 성령께서 오셔서 여러분의 심령을 말로 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채우시고 또한 구속의 날까지 여러분을 인치신다는 약속이 되어 있다. 이 약속을 간청하시고 기다리라. 여러분이 믿음을 가졌다면 성령으로 인침을 받는 일이 있다. 신자들에게 이루어지는 한 약속의 영이 있다.

 

휫필드,확신의 교리들을 부정하는 것은 무서운 실수이다. 초대 교회시대에나 박해시대에만 국한되었다고 생각하는 것도 무서운 실수이다. 확신의 결과인 성령 안에서의 의와 화평과 기쁨은 우리 속에 있는 하나님 나라의 필수적인 부분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생을 신음하면서 보내고 있는 큰 이유 중의 하나는 자기들이 누릴 그리스도인의 특권들을 모르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그들은 그것을 간구하지 않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지 못한다.”

 

스펄전,누가복음 11장에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그 천부께서 성령의 권능을 요구하면 성령을 주실 것이라는 분명한 약속이 있다. 자 이제 우리는 즉시 우리 모든 마음을 다해서 성령을 구하자! 이 약속은 특별히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 우리 스스로 성령을 마시운 만족한 신자들이 되게 하실 뿐 아니라 다른 이웃에게도 그 축복을 나눠주는 쓸모있는 신자가 될 수 있도록 성령께서 역사하시기를 간구하자.” “간절하고 살아있는 열망으로 그리스도를 사모하는 사람치고 얼마 되지 않아서 그를 만나지 못한 사람이 없다. 작은 은혜에 대해서 감사하라. 그리고 큰 은혜를 그에게 구하라. 그가 정하신 때에 당신에게 주실 것이다.”

약속의 영은 여러분에게 충만한 확신을 주실 것이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절대적인 확신과 또한 여러분을 위해서 기업이 준비되었다는 확신을 줄 것인데 그 영은 하나의 증인이요 인침이요 보증이다. 세상이 알았던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가장 휼륭한 증인들은 언제나 충만한 확신을 가진 사람들이었고 그 결과 그 확신과 그 충만함을 즐겼던 사람들이다.

 

또한 그들이 스펄전이 말한 대로 영광을 목격하고 황홀경에 빠져 있었다. 이 최고 최상의 구원의 확신을 가졌는가? 그렇지 않다면 추구하고 지적된 방식을 따라서 충성과 순종과 모든 말과 모든 행실을 통해서 그것을 추구하라. 분명한 확신을 가지기까지 그렇게 나가라. 그러면 진실로 말로 할 수 없는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고 충만한 영광으로 즐거워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