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6~11절 :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11-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1.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6~8)
자기가 믿음을 통해서만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커다란 확신을 누리고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함으로 인해 아무것도 그것을 요동케 하지 못합니다.
여기서 사도바울은 하나님의 사랑보다 우리의 구원이 최종적으로 확실하다는 것보다 더 큰 확신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①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서 말해주는 데 있어서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구절 중에 하나라고 할 수 있는데, 이 구절의 말씀은 요3:16이 본문의 주석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이 말씀을 떠나서는 칭의의 방법이나 방식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과 자신을 화해시켰습니다.
❶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을 근거로 우리에게 구원과 용서를 허락하시도록 호소하고 간청한 데 대해 하는 수 없어서 그렇게 하신 것이 아니라, 그것은 처음부터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신 일로서 창세전에 사람이 창조되기 전, 세계가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 권위 있고, 영광스러운 구원의 길을 계획하셨다는 것입니다.
❷ 구원이란 전폭적으로 하나님께 있으며 구원이 위대하고 영원한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라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의 차원에서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우리의 사랑은 감정에 끌리기 쉽고 변덕스러우나, 하나님의 사랑은 불변하고 영원합니다.
③ “우리가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에서 이때가 언제이며,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신 특별한 시점은 역사상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때가 찬” 정확한 시기는 어느 때인지 살펴보겠습니다.
❶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 율법을 그때까지 약 1,400년 동안 소유해 왔던 것은 “율법의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할 육체가 하나도 없음”이 입증되도록 이 기나긴 시간이 사용된 것입니다.
❷ 이 “기약한 때”에는 헬라 철학도 율법과 똑같은 기회를 충분히 누려봤던 시점입니다.
사상사의 저 위대한 전성시대와 궁극적인 실재에 관한 연구시대가 막 지나갔던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노력이나 열심으로 자신을 구원할 모든 기회를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❸ 역시 같은 방식으로 로마 문명과 법률, 문화도 그들 나름대로의 기회를 가졌었습니다.
이집트의 거대한 문명도, 앗수르, 바벨론, 중국문명도 그러했습니다.
세상은 자신을 구할 모든 충분한 기회와 시간을 가졌었습니다.
❹ 그러나 사람은 실패했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의 결과인 것이 틀림없습니다.
❺ 바로 이 “기약한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두셨는데, 바로 이분이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실제로 하나님의 사랑을 알기 시작하는 것도 여기서부터 입니다.
④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도다.”라는 이 말씀은 주님의 생애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주검을 강조하는 말로서,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사랑을 나타내는 방식입니다.
❶ 그리스도의 교훈이나 이적이 우리를 구원에 이르게 한 것이 아닙니다.
❷ 그분의 주검이 경건치 않은 자를 구원한다는 것입니다.
❸ 십자가형은 가까이만 해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며 불명예스러운 것인데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와 높이를 참으로 아는 데는 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의 십자가상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최상의 확증입니다.
⑤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측량해 보는 또 다른 방식은 주님께서 그 일을 위해서 해 준 사람들의 비참한 상태가 얼마나 깊은가를 재보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사용한 “힘이 없는”, “연약함”, “경건치 않은”, “죄인들”이라는 이 어휘들에서 우리는 어떤 영적 능력도 전혀 가지지 못한 “전적 무능력”의 상태에 있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❶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마땅히 알아야 할 때도 알지 못했습니다.
❷ 우리는 연약하고 전적으로 무능한 상태를 깨달은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❸ 우리는 본래 영적 이해에 있어서 전혀 무능합니다.
❹ 이 상태는 죄와 허물로 인해 영적으로 죽어있는 상태입니다.
❺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❻ 사람의 의는 더러운 넝마와 같고 더러운 배설물과 같이 해로운 것으로서 전혀 쓸모가 없기 때문에 자연인으로서는 전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❼ 그리고 우리는 본질상 율법에서 요구하는 의를 행할 능력이 없습니다.
⑥ “그 영광을 주님께 돌리려 함”이란 말은 ❶ 주님을 자랑한다는 것이며, ❷ 그렇게 된 것은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안 결과인데, 우리가 영적인 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어떤 식으로든지 하나님을 전혀 기쁘게 할 수 없다는 것을 안 결과라는 것입니다.
본성은 죄로 오염되었고 부패하였고 어리석어 우리가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 결과 본래대로는 자신의 구원에 대하여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게 됩니다.
⑦ 우리의 구원이 전적으로 하나님께 있으며 오직 하나님의 영구한 사랑에서 기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전적으로 무능하고 전적으로 무력한 상태로 전락한 사람들을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그의 독생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을 뿐 아니라 갈보리 언덕에서 우리를 위해 죽기까지 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놀랍고 거룩한 하나님의 사랑에 감탄 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죄인을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6~11)
우리는 지금 하나님 백성인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위대한 증거와 또한 모든 되어진 일의 혜택을 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살펴봐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본 바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두 방면에서 관찰 할 수가 있는데, 즉 되어진 일과 그 되어진 일의 혜택을 받는 장본인들의 경우에서 말입니다.
❶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❷ 그리고 이제는 하나님의 사랑의 깊이를 측량하고 있습니다.
❸ 그리고 하나님의 너무나도 넓은 사랑으로 인도되어질 것입니다.
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졌고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에 속한 무엇인가가 있었는데, 죄의 결과로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우리가 불경건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❶ 하나님과 교제를 나눌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손상되었습니다.
❷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히 파괴되지는 않았지만 더 이상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어진 존재로 인식되지 못할 만큼 손상되어 더 이상 하나님을 닮지 않게 된 것입니다.
❸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에게 주신 바 사람의 진실한 신성성과 모든 것 위에 뛰어난 영광으로 인간에게 있어서 최대의 것이며, 하나님께서 이런 식으로 자기의 형상을 사람에게 부여하심으로써 사람을 영예롭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결과 그것은 흐트러지고 사람은 경건치 않게 된 것입니다.
② 이제 7,8절의 “의를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에서 말하는 ❶ 의인은 정직한 사람, 율법을 지키는 사람, 계명을 영예롭게 하는 사람, 규칙과 법률을 복종하는 사람, 행동에 있어서 아주 바른 사람을 말합니다.
❷ 선인은 의인처럼 모든 일을 바르게 행하는 사람이며 더 나아가 사랑에 의하여 통제받는 사람이며, 그는 십리를 동행하여 주며, 겉옷을 요구하면 속옷까지 주는 사람입니다.
[예 : 한 사람이 바른 박자와 바른 연주법으로 피아노를 옳게 연주했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악보로 연주하는 또 다른 연주자는 여기에 무언가 다른 것이 있다고 느끼게 됩니다. 그는 연주에 생명을 불어 넣고 있으므로 사람들을 감동케 하고 있습니다. 전자는 매우 옳았지만 둘째 사람이 가지고 있었던 그 묘한 생명력을 가지고 있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의인과 선인의 차이입니다.]
❸ 우리의 서 있는 자리는 의인도 선인도 되지 못합니다.
우리는 사랑스럽지도 못하고 사랑받을 만한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우리의 참 모습은 죄인들로 의라고는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서 죽으셨던 것입니다.
의인이나 선인을 부르러 오신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습니다.
③ 우리는 이렇게 전적으로 대가없이 주어지고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부터 얻게 된 구원이기 때문에 자랑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④ 그래서 이 사람들이 자기들의 구원과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을 바라고 즐거워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그들이 자기들에 대한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이해하고 포착할 때에 그것을 기뻐하리라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3. 더욱 더(9~10)
사도는 하나님의 사랑에 관한 자신의 선언을 기초로 해서 하나의 논증을 전개해 나가고 있는데 이 두절 속에 있는 논증은 성경 가운데 나와 있는 구원의 확신이나 최종성에 관한 가장 강력한 논증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초월하는 확신의 방법이 단 하나 있는데, 그것은 5절에서 언급하였던 성령 자신의 직접적인 증거입니다.(롬8:16)
이제 “더욱”이라는 말로서 시작한 그의 권위 있는 추론을 끌어낸 사도 바울의 논증을 살펴보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이 너무 커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서 죽으셨고 우리의 죄가 용서 받은 사실에 감사하지만, 어느 날 갑자기 버림을 받지 않을까라는 불안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나 바울은 이미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는 많은 증거를 제시하고 있습니다.
① 바울은 “이제 우리가 그의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이라고 말하는데,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용서함을 받았다는 것이 포함되는 법률적이고 법정적인 용어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셔서 우리를 의로 여긴다고 선언하시는 것이 됩니다.
② 칭의는 믿음이라는 통로를 통해서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칭의를 가능케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는 방편으로 그것을 제정하심으로서 가능케 된 것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의 죄책의 문제는 해결 되었고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오는 이 의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피로서 가능케 된 것입니다.
③ 우리가 구원을 받는 것은 거듭남으로서 되는 것이 아니라 의롭다고 칭함을 받을 때 이미 이루어진 것입니다.
거듭남은 회심의 순간에 동시에 이루어지지만 의롭다 칭함이 먼저 있은 후에 거듭남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의롭다 함을 받았기 때문에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미 재판을 받은 것이며 그래서 우리는 결단코 다시 정죄함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④ 우리에게 성화와 영화가 계속적으로 이루어지는 한 과정으로 남아 있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불의한 때에 그러한 조건에 관계없이 이미 의롭다 함을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되어진 일입니다.
그래서 죄인들에게 주어지는 이 복음이 우리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4.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 발전 된 논증(10)
지금 이 순간에도 사도의 관심은 오직 우리가 구원과 구원의 최종성에 관해 확신하는 것이며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받았으며, 영원토록 안전하다고 하는 사실을 깨달아 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이 위대한 논증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의 차원에서 발전시켜 왔습니다.
①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관해 무엇인가를 해 놓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상태나 조건이나 신분이나 관계는 원수 사이에서 되어지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❶ 화목을 얻었다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것은 우리의 어떠한 조건 여하에 의해서 결정되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시작되어 우리가 얻게 되는 것입니다.
❷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미워하는 것을 멈추고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께 복종하고 그를 경배하기 원하는 마음으로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❸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심으로 인하여 우리는 화목을 얻게 되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것입니다.
②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화목 되는 것은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인한 것입니다.
“그의 피를 인하여”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는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필요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를 보내사 십자가의 치욕과 고난과 수치를 당케 하셨을 리 만무합니다.
그것은 ❶ 하나님의 공의 때문입니다(롬3:26).
❷ 하나님께서는 사랑도 되시지만 공의의 속성이 있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언제나 전존재로서 행하십니다.
❸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사랑이시면서 동시에 언제나 공의로 행하십니다.
❹ 하나님은 거룩이시오, 빛이시기 때문에 그 안에는 두려움이 조금도 없으십니다.
화목제물이 그렇게 필수적이었던 것은 그 때문입니다.
❺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른다고 덮어두실 수 없으며, 그 죄를 벌하시겠다고 하셨는데,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는 죄를 벌하셔야만 하고 그래서 분노하셔서 독생자 안에서 죄를 형벌하심으로써 우리를 용서하실 수 있으며, 그의 공의는 만족되어 우리를 보실 수 있는 것입니다.
③ 이제 우리가 죄에 빠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꼭 죄에 빠질 것이지만,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입니다.”
④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는 본문에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한다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누리게 될 영광뿐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자랑으로 여기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참조 : 시편 33편, 34편, 103편, 눅1:46~47; 빌3:1; 4:4]
그리고 그것은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습니다.”
우리는 애통하는 것이나, 슬픔이나, 죄나, 수치가 없는 나라에 살게 될 것인데, 그때 우리는 육신마저 완전히 영화롭게 되고 죄로부터 구원받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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