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신동식목사 852

시대 분별(4)-믿음의 확실성

시대 분별(4)-믿음의 확실성 예수님은 제자들을 향하여 세상에 보냄을 받아서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오히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입니다. 세상을 떠나서 교회에만 머무는 것은 제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렇다고 교회를 떠나서 세상에 사는 것도 그리스도인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교회로 모이고 교회로 세상에 흩어지는 존재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 흩어지기 위하여 모이는 자라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함입니다.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회개하여 구원의 자리에 올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복음 증거를 통하여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

기도가 일상이 되자.

기도에 대한 정의는 다양합니다. 그 가운데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하나님과의 대화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삶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기도에 대한 종교 개혁자 하인리히 불링거는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선한 것들을 간구하거나 혹은 이미 얻은 것에 대해 감사하기 위한 신앙적인 마음의 겸손한 요청이며 그리고 열정적인 표명이다” 불링거에 의하여 기도는 하나님께 어떤 것을 간구하는 것이고 또한 감사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렇듯 기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분명한 신앙고백이 없이는 기도는 불가능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기록된 멋진 기도 가운데 하나가 바로 한나의 기도입니다. 그 기도의 핵심은 하나님을 정확하게 고백하는 것입니..

선교의 마무리는 언제인가?

선교의 마무리는 언제인가? 광야와 같은 미지의 땅에 교회가 세워졌다면 그것은 분명히 선교사가 선교하였다는 증거입니다. 어는 곳이나 선교를 통하여 교회가 세워집니다. 교회는 죽어가는 영혼들에게 생명에 이르는 길을 알려줍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세워지는 곳에는 항상 새로운 생명이 출현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선진들이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말하는 것은 구원에 이르는 복음이 교회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구원의 놀라운 비밀을 알려주었습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

낮은 자리로 오신 하나님

낮은 자리로 오신 하나님 예수님의 이름은 ‘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의미의 ‘구원자’입니다[마1:21]. 그리고 또 한 이름 임마누엘이 있습니다. 이 이름의 의미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말씀입니다[마1:23]. 그래서 임마누엘 되신 예수님의 이름을 하나로 묶는다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와 함께 사시는 하나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또 하나로 요약한다면 ‘낮은 자의 하나님’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삼위 하나님의 협약에 따라서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이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사 우리 가운데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하지 않으시고 자기..

최종적 승리

최종적 승리 사악한 인간의 모습에서 선명하게 그리고 자주 볼 수 있는 것은 타자에 대한 조롱입니다. 이들은 자신이 가진 것을 과시하면서 자신보다 가지지 못한 이들을 짓누릅니다. 추악하고 탐욕스러운 모습을 가진 사악한 이들은 타자에 대하여 끊임없이 조롱합니다. 얼마전 한 기업 사장의 초등학생 자녀가 회사 운전기사에게 행한 조롱은 사악한 인간의 모습이 어떠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누구라도 가질 수 있는 야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조롱은 타자에 대한 무시에서 시작합니다. 무시는 타자에 대한 비아냥입니다. 가진 것은 쥐뿔도 없으면서 버티고 있다는 비웃음입니다. 그렇기에 무시는 가진 자에게는 즐거움과 웃음거리이지만 당하는 자에게는 말 할 수..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는 이유?

여전히 교회를 사랑하고 세우는 이유? 최근에 1997년에 있었던 IMF 상황을 영화화한 “국가 부도의 날”을 보았습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불편한 진실을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는 다큐멘터리 같은 대중영화였습니다. 1997년도의 실상을 아주 담담하게 그려 내었습니다.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위정자들의 무능력과 소시민들의 절망과 그리고 그 틈에서 부를 축적하는 이들의 모습을 잘 그려냈습니다. 국가 부도의 사태를 맞이하였지만 여전히 부를 축적하는 인간 군상들은 여전하였습니다. 오직 국가만 믿고 따라갔던 순진한 백성들만 피해를 당하였습니다. 영화의 백미는 국가의 속임수에 절대 속지 않는다는 이들의 몸부림이었습니다. 아무도 믿지 말고 오직 네 자신만 믿으라는 한 중소기업 사장은 외침과 한번 당하지 두 번 다시 당하지 ..

교회를 붙잡는 희망

교회를 붙잡는 희망 프랑스의 개신교를 위그노라고 부릅니다. 로마 카톨릭을 부정하고 성경적인 신앙으로 돌아가고자 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역사상 가장 가슴 아픈 고난을 간직한 사람들입니다. 16세기에 시작하여 18세기에 이르기까지 온갖 핍박을 견뎌야 했습니다. 이들의 순교는 참으로 끔찍하였습니다. 여기에는 정치와 종교가 결탁하여 만들어낸 결과들입니다. 로마 카톨릭의 프랑스 위그노를 숙청한 처절한 살인의 역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바돌로메 학살 사건입니다. 나바르의 앙리 왕자와 프랑스의 마고 공주의 결혼식을 앞두고 벌어진 끔찍한 사건으로 위그노들은 1만2천 명 정도가 학살당하였습니다. 로마 카톨릭을 지지하였던 프랑스 정치의 비열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이 사건은 칼뱅의 제자로 유럽 개혁교회를 이끌었던 ..

조금 여유를 갖자

조금 여유를 갖자 “자아가 독립했습니다.” 뜬금없는 이야기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 말입니다. 동기 목사님과 대화를 나누다가 나온 말입니다. 자신에 대하여 진지하게 돌아본 사람들을 향하여 하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갱년기와 함께 우울증을 겪고 있습니다. 도대체 지금까지 잘 살다가 왜 이렇게 힘든 시간을 겪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아마 이러한 모습은 사춘기를 보내는 청소년들을 볼 때도 비슷하게 느끼는 것입니다. 대부부의 청소년들이 힘든 사춘기를 겪습니다. 자신도 통재 할 수 없는 자신을 볼 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러니 기다려야 하는 부모와 주변사람들은 또한 얼마나 힘든 일이겠습니까? 그런데 이것은 자신을 만들어 가는 과정의 일부입니다. 사람들은 사춘기로 자아를 정립하지 않..

우발적 폭력 사회를 애통함

우발적 폭력 사회를 애통함 2018년 10월14일은 우리 사회에 또 하나의 애통을 가져다주었습니다. 강서구의 한 PC방에서 일어난 살인 사건입니다. 한 젊은이의 안타까운 죽음 뒤에 불행한 한 젊은이의 우발적 폭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화를 참지 못하고 충동적으로 살인을 저지르는 아주 끔직한 일이었습니다. 분노를 참지 못하는 것은 우리 시대의 슬픈 자화상입니다. 경찰청 발표에 따르면 2017년 발생한 강력범죄 28,927가운데 가운데 우발적 범행 동기가 9,374건으로 전체 범행의 32.4%를 차지하였습니다. 이것은 2016년도에 비하여 약 1.5%정도 증가한 수치입니다. 특별히 우발적 살인 사건은 905건 가운데 357건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하루에 하나씩 우발적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있다는 ..

종교개혁은 교회 개혁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개혁이다. 종교개혁은 교회 내부의 개혁을 통하여 사회를 개혁하는 운동이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타락이 곧 사회의 타락을 가져왔음을 인식하였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면죄부 판매는 사회적 타락을 부추기는 중요 요인이 되었습니다. 죄를 지어도 돈만 있으면 용서 받을 수 있다는 유전무죄무전유죄의 정신이 바로 면죄부에서 공식화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야 하는 곳이지만 그러하지 못하였습니다. 교회의 타락은 여기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교황권의 세습 그리고 신부들의 성적인 타락이 만연하였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자연스럽게 사회적 불의로 자연스럽게 나타났습니다. 더 이상 교회는 거룩한 공동체가 되지 못하였습니다.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하고자 하는 더러운 매음굴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