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김명혁칼럼 160

내가 좋아하는 12가지 말씀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딤후 3:14-17(찬송가 235, 234장). 이 글은 김명혁 목사님께서 성서주일인 12월 8일 수원동문교회에서 전할 메시지를 정리한 것입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얻어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제가 매년 수원 동문교회에 와서 설교를 하는데 오늘은 성서주일을 맞아서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내가 좋아하는 12가지 말씀”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려고 합니다. 오에녹 목사님이 오늘 성서주일을 맞아서 성서에 관한 설교를 해 달라고 부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던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쓰면서 권면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배우고 확신하는 일에 거하고 그에 따라서 살라는 것이었습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네가 뉘게서 배운..

“Black Gospel” 관람 소감

어제 저녁에 “블랙 가스펠(Black Gospel)”이란 다큐 영화를 관람했다. 얼마 전에 “아유 레디”란 다큐 영화도 관람했고, 그 전에는 “용서”란 다큐 영화와 “회복”이란 다큐 영화도 감상했다. 이들은 강변교회의 이임주 집사가 기획해서 제작한 영화들이다. 사실 나는 지난 10여년 동안 일반 영화들을 관람한 일은 거의 없었다. “잊혀진 가방”이란 다큐 영화와 한경직 목사님의 생애를 다룬 “한경직”이란 다큐 영화를 관람한 일이 거의 전부라고 말할 수 있다. 나는 “Black Gospel”이란 다큐 영화를 관람하는 동안 감동을 받으면서 좋은 영화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나와 다른 종류의 역사와 문화를 가진 사람들을 이해하면서 받아들이는 데 인색한데, 이 영화는 그것을 극복한 영화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 글은 본지 편집고문인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 원로)이 2013년 10월 13일 오후 중국동포교회에서 전한 설교문입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구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제가 이틀 전인 금요일 오후 김해성 목사님의 전화를 통해 지난 8일 화요일 밤 11시 경 이곳 중국동포교회 1층에서 화재가 발생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습니다. 1층이 거의 다 불에 탔고 4층에서 자던 100여명의 중국동포들이 화재를 피하려고 갑자기 내려오다가, 팔 다리가 부러지는 큰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간 사람들이 10명이 되었다는 슬픈 소식도 들었습니다. 1억원 이상의 재산 피해가 발생했고 부상을 입은 환자들의 치료비도 수천만원이 들 거라는 말도 들었습니다. 지난주 이곳에 새로 들어온 중국동포 한 사람..

의인보다는 죄인이 보고 싶어지는 시대

이 글은 본지 편집고문인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 원로)이 2012년 11월 12일과 16일, 미국 플로리다주 올란도로 가고 오는 비행기 안에서 작성한 것입니다. 김명혁 목사님이 지금의 시대에 한국교회와 본지 독자들에게 꼭 들려 주고 싶은 이야기라며 보내와 이를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성경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죄와 죄인들을 심판하신다고 가르친다.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분부를 불순종하는 죄를 범했을 때 심판을 받아 에덴 동산에서 쫓겨났다. 노아 시대에 사람들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 지으신 것을 한탄하시고 사람들을 지면에서 쓸어 버리시는 홍수 심판을 내리셨다. 소돔과 고모라에 죄악이 관영했을 때 하나님께서 유황과 불을 비 같이 내려 다 엎어 멸하시는 불 심판을 내리셨다. 예수님께서도 ..

병든 자와 죄인을 부르러 오신 예수님

이 글은 본지 편집고문인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 원로)이 7월 21일(주일) 연희동 목자와양들교회(예장 합동)에서 전한 설교문입니다. 본지는 김명혁 목사님의 동의를 구해 이 글을 게재합니다. -편집자 주 오늘 제가 목자와 양들 교회에 처음으로 와서 여러분들과 함께 예배 드리면서 설교를 하기 때문에 저 자신에 대한 소개를 간단하게 합니다. 저는 11살 때까지 북한에서 살다가 11살 때인 1948년 8월 고향과 부모님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왔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면서 하나님을 바로 믿기 위해서 평양을 떠나 서울로 왔습니다. 아버지 김관주 목사님은 북한에서 목회를 하시다가 제가 월남한지 2년 후인 1950년 6월 사동 탄광에서 순교하셨습니다. 저는 11살 때부터 부모님과 고향을 떠난 고아와 나..

중국 연변지역을 돌아보고 와서

나는 지난 13년 동안 거의 매년 한 번씩 연변 지역에서 생활하고 있는 불우한 우리 조선족 어린 학생들과 가정들을 방문하며 조그만 위로와 도움의 손길을 펴고 있는데, 지난 6월 17일 월요일 아침 인천을 따나 2시간 후 연길에 도착하여 오후부터 20일 목요일 밤까지 조금도 쉬지 않고 연길, 안도, 왕청, 화룡, 용정, 도문, 훈춘 등 일곱 지역을 계속해서 방문하며 학생들과 가정들을 돌아보고 21일 금요일 오후 연길을 떠나 인천으로 돌아왔는데 언제나 그렇지만 이번에도 많은 슬픈 느낌과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곳에서 생활하며 공부하고 있는 불우한 학생들은 거의 대부분 어머니가 북으로 잡혀갔거나 가출해서 병든 할머니, 할아버지 또는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고아들이다. 어머니는 북으로 잡혀가고 아버지는 암으로..

스승님들께 드리는 감사의 글

성경 말씀은 예수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라고 권면하면서(히 3:1, 12:2) 동시에 믿음의 선배들을 바라보며 배우라고 권면합니다(히 11장). 저는 저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저의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바라보면서, 동시에 저를 가르쳐주시고 빚어주신 저의 스승님들을 바라보면서, 감사와 사랑과 존경의 마음을 드리고 또 드립니다. 부족한 죄인을 죄와 사망과 저주에서 구원하신 분은 긍휼과 용서와 사랑과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부족한 저를 믿음과 회개와 기도와 사랑과 헌신의 길로 가도록 가르쳐주시고 만들어주신 분들은 저의 신앙의 스승님들이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소년 시절 부족한 저에게 믿음과 기도와 헌신의 씨앗을 심어주시고 지도해주신 평양 서문밖교회의 주일학교 선생님들..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목회 시절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나를 불쌍히 여기시고 심부름꾼으로 써 주시옵소서“ 지난 2월 “대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대학생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썼고(3월 9일 크리스천투데이에 실림), 지난 3월 “신학생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신학생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썼는데(3월 16일 뉴스파워에 실림), 지금 4월에 접어들면서 “목회자들과 나누고 싶은 나의 목회 시절의 추억들”이란 제목의 글을 쓴다. 나는 허물과 죄악이 너무 많은 죄인 중의 죄인이지만 거의 한평생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지니고 목회의 길과 선교의 길로 걸어온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망극하신 은혜와 긍휼과 용서와 자비와 사랑 덕분이고 부모님을 비롯한 신앙의 선배님들이 나의 몸과 마음과 영혼에 심어주시고 물려주신 믿음, 소망, ..

긍휼, 용서, 사랑, 그리고 화해, 평화, 통일

이 글은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이 3월 13일 조국 평화통일 기원 전주지역 연합성회에서 전한 설교문을 본인의 동의하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부족한 사람을 귀한 기도회에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 “긍휼과 용서와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라는 좀 긴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 전에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11살 때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왔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11살 때 부모님을 북한에 남겨 두고 평양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

긍휼, 용서, 사랑, 그리고 화해, 평화, 통일

이 글은 김명혁 목사님(강변교회 원로, 한국복음주의협의회 회장)님이 3월 13일 조국 평화통일 기원 전주지역 연합성회에서 전한 설교문을 본인의 동의하에 게재하는 것입니다. -편집자 주 부족한 사람을 귀한 기도회에 불러주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오늘 저녁 “긍휼과 용서와 사랑 그리고 화해와 평화와 통일을 염원하며”라는 좀 긴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기 전에 저 자신에 대한 이야기를 간단하게 하겠습니다. 저는 11살 때 평양을 떠나 38선을 넘어서 서울로 왔습니다.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서, 신앙 생활을 바로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버지를 따라서 목사가 되기 위해서, 11살 때 부모님을 북한에 남겨 두고 평양을 떠나 혼자서 38선을 넘어 서울로 왔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