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당시에 갈릴리를 다스리고 있던 분봉왕 헤롯에게 전해진다. 그는 “안디바”(혹은 “안티파스”)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헤롯 대왕의 일곱째 아들이다. 로마 황제는 주후 6년에 그를 갈릴리와 베뢰아 지역의 왕으로 임명했다. 헤롯 대왕이 다스리던 영토를 넷으로 나누어 자식들에게 분할해 주었기에 정확한 칭호는 “분봉왕”(영토의 일부만 다스리는 왕)이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지자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왔다고 추측 하기도 했고, 죽지 않고 들림 받은 엘리야가 돌아왔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그분을 예언자 중 한 사람으로 여겼다(15절). 그 소문을 듣고 헤롯 안티파스는 “내가 목을 벤 그 요한이 살아났구나”(16절) 하고 두려워 했다.
이 지점에서 마가는, 세례 요한이 살아 돌아온 것이라고 생각하며 헤롯이 두려워 한 이유를 설명한다. 헤롯 안티파스는 원래 나바태아인의 공주와 결혼을 했는데, 로마를 방문했다가 이복 동생인 빌립의 집에 머물던 중에 그의 아내 헤로디아에게 반했다. 헤로디아도 정치적 야망이 부족한 남편에게 불만을 느끼고 있던 차였기에 두 사람은 금새 눈이 맞았다. 얼마 후에 헤롯 안티파스는 아내를 버리고 헤로디아와 재혼을 했다. 헤로디아는 헤롯 대왕의 손녀다. 헤롯 안티파스에게는 배 다른 조카딸이 되는 셈이다.
이 결혼을 통해 헤롯 안티파스는 두 가지의 율법을 범했다. 동생의 아내를 탐한 것은 열 번째 계명을 어긴 것이고, 조카딸과 결혼한 것은 근친혼에 해당한다. 이 일로 인해 유대인들은 헤롯을 혐오 했는데, 세례 요한은 그 문제를 공개적으로 비판했다(18절). 하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을 거룩한 사람으로 알았기에(20절) 어찌하지 못하고 있다가 비판이 심해지자 체포하여 감옥에 가두어 두었다(17절). 처형할 생각은 없었으나, 헤로디아는 앙심을 품고 요한을 처치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기회가 왔을 때 헤로디아는 딸을 통해 헤롯이 거부할 수 없도록 몰아 세워 요한을 처형하게 만든다(21-28절).
“왕은 마음이 몹시 괴로웠지만”(26절)이라는 말에 헤롯의 심경이 담겨 있다. 요한을 살해한 이후 헤롯은 그 일로 인해 하나님께 벌을 받지 않을까 두려워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으니, 죽은 요한이 돌아 온 것이 아닐까 하여 두려워 했다.
묵상: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헤롯 안티파스와 헤로디아의 욕심이 죄를 낳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사랑이라고 불렀겠지만,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정욕이었고 불륜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상처를 입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죄는 점점 자라나 결국 세례 요한을 죽게 하는 커다란 죄로 불어났습니다. 그들은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크나큰 죄를 저지른 것입니다.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듣고 자신이 처형한 세례 요한이 살아난 것이라고 생각하며 두려워 떨었던 것을 보면, 헤롯 안티파스는 그 일 후에 마음 편히 살 수 없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그들의 음모로 인해 세례 요한은 육신적인 죽음을 당했지만, 그 둘은 영원한 죽음에 처해졌습니다.
인간의 죄된 본성은 언제나 같은 방식으로 작용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작은 죄에 대해서도 예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기에 불가능한 큰 죄도 없지만, 하나님께 문제 되지 않을 정도로 작은 죄도 없다"는 말은 진실입니다. 우리가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면 어떤 죄도 용서받을 수 있지만, 회개하지 않는 심령에게는 아주 작은 죄도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일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머물러 우리 자신 안에 있는 “작고 사소하고 하찮고 별 것 아닌” 죄가 없는지를 살펴 보아야 합니다. 죄를 다른 이름으로 미화하며 죄의 찌르는 것을 피하려 하지는 않는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기도:
거룩하신 하나님, 죄를 자랑하고 죄를 미화하는 시대에 저희가 살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주신 말씀 즉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롬 12:2)라는 말씀을 기억합니다. 간구합니다. 저희로 하여금 죄에 예민해지게 하시고, 주님이 거룩하신 것처럼 저희도 거룩하게 해주십시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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