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정병선목사

톨스토이의 가출과 죽음(2) / 정병선목사

새벽지기1 2024. 9. 26. 05:40

필자는 앞에서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와 가출이 진리 때문이라고 말했다. 어쩌면 듣기에 거북했을지 모르겠다. 도대체 진리가 어쨌기에 진리에 책임을 묻느냐고 말이다. 맞다. 진리에 책임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심각한 모순이다. 필자도 진리에 무슨 잘못이 있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단지 진리가 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기도 한다는 냉엄한 현실을 말하는 것이다. 예수님이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과 후, 진리에 붙들리기 전과 후는 전혀 다른 양상의 문제가 파생된다는 것, 뜻하지 않은 관계의 파국이 올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다시 말하면 톨스토이 부부가 맞닥뜨린 불화와 갈등이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에서 빚어진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인간적이고 도덕적인 차원을 넘어 진리의 차원에서 빚어진 문제라는 이야기다. 사실이다. 톨스토이 부부의 경우 불화와 가출의 궁극적인 원인은 톨스토이의 삶과 인격 속에 침투해 들어온 진리 때문이었다. 만일 진리가 톨스토이의 삶과 인격 속에 침투해 들어오지 않았다면 톨스토이의 사상과 생활에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화란 없었을 것이고, 톨스토이의 사상과 생활에 급격하고도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그들 부부 또한 그렇게 심히 싸우지 않았을 것이며, 소통의 부재를 경험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톨스토이에게 진리는 단지 인식의 문제가 아니었다. 존재와 생존의 문제였다. 맏딸의 증언에 따르면 톨스토이는 죽기 전날 밤, 옆에 있는 맏아들 세료자를 부르더니 모기 소리 같은 작은 소리로 “세료자! 나는 진리를 사랑한다. …… 대단히 …… 진리를 사랑한다.”라고 힘을 다해 말했다고 한다. 톨스토이는 젊었을 때에도 ‘자기가 마음 깊이 사랑하는 영웅은 진리’라고 했다. 그런데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한 말도 ‘진리를 사랑한다’였다. 그랬다. 톨스토이에게 진리는 존재의 이유였고 생명 그 자체였다.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명제는 선택 사항이 아닌 존재의 필연이었고 운명이었다. 결코 타협할 수 없는 절대 명령이었다. 진리를 따르는 것 외에는 그가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고, 진리를 따라 살지 않는 것은 수치요 죄악일 뿐이었다. 아니, 죽음보다 못한 것이었다. 하여, 톨스토이는 진리를 따라 살아야 한다는 당위와 아내와 함께 사는 한 진리를 따라 살 수 없는 현실 사이에서 극심한 고뇌와 번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 실상을 좀 더 들여다보자. 톨스토이는 모든 것의 허망함을 보아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 소유와 특권에 연연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마땅히 모든 소유와 특권을 포기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많은 부분을 포기했다. 하지만 그의 아내는 달랐다. 그녀는 이미 누리고 있고 약속되어 있는 정사와 권세를 포기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왜 그런 것들을 포기해야 하는지조차도 이해할 수 없었다. 때문에 톨스토이가 가는 길을 동의할 수도 없었고 따를 수도 없었다. 톨스토이에게 그녀는 완고한 장벽이었다. 그녀의 장벽에 가로막혀 진리의 명령대로 살고자 하는 꿈을 실현할 수가 없었다. 번민과 고통이 깊어갔다. 그러면서 언제부터인지 가출을 꿈꾸기 시작했다.

 

1885년(57세)에 친구인 우르소프에게 보낸 편지에서 톨스토이는 “나는 나의 의식과 생활 사이에 가로놓인 명백한 모순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줄 어떤 무엇을 기다리고 있다네.”라고 토로했다. 그리고 12년이 더 지난 후 아내 소피야에게 쓴 편지(이 편지는 사후에 발견된 것임)에서는 “사랑하는 소냐, 나는 오래 전부터 나의 신념과 생활의 격차에 대해 고민해왔소. 나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생활양식과 습관을 당신으로 하여금 바꾸도록 하지 못했소. 그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당신 곁을 떠나지 못했소. 그 까닭은 내가 떠나면, 비록 적으나마 내가 어린 아이들에게 끼쳤던 영향도 무로 돌아가게 되고, 또 당신을 괴롭히는 결과가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오. 그러나 나는 이제 지난 16년 동안과 같은 생활을 더 계속할 수가 없소. 당신과 다투게 되고, 당신을 안절부절 못하게 못하게 만든다 하더라도, 그리고 나를 둘러싼, 내가 가까이 해 온 매력있는 것들과 영향력 있는 것들에 의해 내 마음이 흔들리더라도 하는 수가 없소. 오늘 나는 오랫동안 생각했던 일을 행동으로 옮길 결심을 했소. 나는 나가오… 첫째로 해를 거듭할수록 이런 생활이 더욱 괴로워지고, 고독해지고 싶어졌기 때문이오. 둘째로, 아이들도 다 자라 이제는 나의 영향을 받을 필요가 없어졌고, 당신들 모두가 현실 생활에 크게 끌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없어도 거의 마음에 걸리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생각했기 때문이오.”라고 가출의 변을 쓰고는 지나온 34년간의 결혼생활에 대해 회고하면서 아내의 헌신과 수고에 대해 감사의 말을 전한다. 그리고 편지는 계속된다. “…하지만 뒷부분 절반, 이 14년 동안에 우리의 길은 둘로 갈라져 버렸소. 그것이 내 죄라고 여겨지지는 않소. 왜냐하면 내가 달라진 것은 내 탓도, 인류의 탓도 아니고, 그렇게 밖에는 할 도리가 없었기 때문이오. 마찬가지로 당신이 나를 따르지 않았다 해서 당신을 비난할 수도 없소. 아니, 나는 당신에게 감사하고 있소. 나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당신이 준 것을 사랑과 함께 기억하고 있을 것이오. 안녕, 사랑하는 소냐.”

 

심지어 이런 일도 있었다. 톨스토이의 글을 읽고 크게 감명을 받아 톨스토이적인 생활을 실천하며 사는 톨스토이안들이 많았는데, 그들 중에는 마지막까지 톨스토이를 따른 자들도 있었지만 톨스토이의 집에서 하인들이 테이블 위에 은제 식기들을 늘어놓고, 흰 장갑을 끼고 식사 심부름을 하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또 톨스토이가 가까운 친구들과 테니스로 흥이 나있는 모습을 보고는 크게 환멸을 느껴 ‘언행 불일치’라고 비난하는 편지를 보내는 자들도 있었다. 톨스토이는 그런 편지를 읽을 때마다 무척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인정하면서 번민을 토로하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다. 그중 하나를 보자. “귀하의 편지는 나의 가슴에 깊이 배어들었습니다. 당신의 권고는 나의 은밀한 꿈입니다만 오늘까지 이루지 못했습니다. … 당신이 말하는 나의 사회적 지위를 버릴 것과 소유권을 포기하고 상속권을 가진 자들에게 분할할 것. 이것은 25년 이상이나 전에 이루어놓은 일입니다. 그러나 빈궁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그 안에서 아내와 함께 소름이 돋을 만큼 수치스러운, 사치스러운 가정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나를 날이 갈수록 괴롭히는 것입니다. 하루도 귀하의 충고를 따르려고 생각하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귀하의 편지를 크게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그가 가출하기 얼마 전인 1910년 8월 20일, 그의 노트에는 이런 이야기가 쓰여 있다. “영지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도망하고 싶다, 사라져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만큼 마음이 아파진다.”

 

톨스토이의 번민과 고통은 이토록 깊었고 오래 지속되었다. 내면의 원함과 생활의 현실 사이에서 벌어지는 모순을 살아내는 것은 정말 형벌이었다. 그는 결국 82세라는 노구의 몸을 이끌고 가출을 결행했다. 가출을 꿈꾸고 실행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더욱이 무명의 사람도 아니고 온 세상에 명성이 드높았던 그가 가출을 결행한다는 것은 수많은 억측과 말들이 무성하리라는 것을 알았을 터인데도 불구하고 집을 떠났다. 인내의 한계에 도달한 것일까? 죽음을 예견이라고 했던 것일까? 아내와 가족이라는 장벽에 막혀 내적인 모순의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자신의 삶에 대해 마지막으로 참회의 행동을 보여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딱히 단정할 수는 없다. 암튼, 그의 가출이 아내로부터의 탈출이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마지막까지 아내를 염려하면서도 아내의 반대에 막혀 또다시 가출이 좌절될까봐 심히 두려워했던 것을 보면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바로 이 부분이 못내 아쉬웠다. 마지막까지 인내하며 아내를 끌어안지 못한 것이 참으로 아쉬웠다.

 

진리의 사람, 그리스도인은 성경이 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한 모든 이와 평화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평화를 위해 부름을 받았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이 세상에는 불의와 죄악과 거짓이 상존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서는 세상의 어둠과 싸우지 않을 수 없다. 불의와 거짓과 싸우지 않고서도 진리만을 오롯이 따를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세상의 악은 결코 물러서는 법이 없기 때문에 악과의 싸움은 피할 수도 없고, 피해서도 안 된다. 또 피한다고 해서 피해지는 것도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어쩔 수 없이 세상의 정사와 권세와 싸워야 한다. 그렇다고 싸움만 해서도 안 된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정사와 권세와 싸우면서도 동시에 평화를 잃어서는 안 되며, 세상에 평화를 주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놓인 힘겨운 처지이며 막중한 책임이다.

 

톨스토이가 회심 이후에 맞닥뜨린 처지도 바로 그런 거였다. 그는 진리를 따라 살아야 했다. 그러나 평화도 잃지 않아야 했다. 물론 톨스토이가 진리를 따라 살기 위해 싸워야 할 싸움의 일차적인 대상은 바로 자기 자신이었다.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 - 명예와 지위와 땅과 재산이었다. 그는 이 싸움을 잘 해냈다. 하지만 그 싸움의 과정에서 아내와의 평화의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아내와의 평화를 위해서는 진리의 싸움을 포기해야 했는데, 진리의 싸움을 포기하는 것은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었기 때문에 톨스토이는 진리의 싸움과 아내와의 평화 사이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끝없이 번민해야 했다.

 

이쯤에서 솔직히 생각해보자.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와 갈등은 사실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진리를 본 자와 보지 못한 자 사이에 존재하는 이해의 간극이란 그 무엇으로도 메울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와 싸움은 감내하지 않으면 안 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톨스토이에게는 소피야에게는 물을 수 없는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톨스토이는 진리를 보았으니까, 진리를 본 사람에게 진리를 보지 못한 사람을 이해하고 인내해야 할 책임을 묻는 것은 결코 지나친 처사라고 할 수 없는데 비해 진리를 보지 못한 자에게 진리의 세계를 이해하고, 그 세계를 따르라고 요구하는 것은, 그 요구가 아무리 도덕적으로 옳다 하더라도 지나친 처사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내 판단이다.

 

이것은 교회와 세상의 관계에도 적용되는 원칙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있지만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부름을 받은 공동체다. 그러기 때문에 세상과 교회 사이에는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고, 이해의 간극이 존재하는 것은 매우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 교회는 세상을 이해할 수 있지만, 세상은 교회를 절대로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에게 이해받으려 해서는 안 된다. 세상이 교회를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을 탓하거나 원망해서도 안 된다. 그렇다고 해서 교회가 세상과 적대해서도 안 된다. 교회는 마땅히 세상의 정사와 싸워야 하지만 평화를 잃어서도 안 된다. 교회는 언제나 세상을 끌어안고 사랑해야 한다. 세상에게 돌을 맞고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세상에 등을 돌려서는 안 된다. 그렇다. 교회는 세상에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교회는 세상과 싸우면서도 세상을 품고 섬겨야 할 책임이 있을 뿐이지 세상에게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바로 이것이 교회의 운명이요 책임이다.

 

자고로 진리를 따라 산다는 것은 어렵고도 험난한 길임이 분명하다. 쉬운 해법이 없는 좁은 길임이 분명하다. 그런 면에서 톨스토이가 마지막까지 아내와의 불화를 견뎌내며 인내한 것을 높이 존경한다. 그의 오랜 번민과 아픔에 연민의 정을 느낀다. 하지만 최후의 순간에 아내 곁을 떠남으로 말미암아 그는 오랜 인내에 오점을 남겼다. 아내 곁을 떠남으로써 결국 아내를 정죄한 꼴이 되었으니 말이다.

 

정리해보자. 톨스토이 부부의 불화와 갈등의 궁극적인 원인은 진리 때문이었다. 그것은 두 사람이 노력한다고 해서 해소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기 때문에 마음은 아프지만 그들의 불화와 갈등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출의 문제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가출에 대해서까지 진리에 화살을 돌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가출의 일차적인 책임이 톨스토이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가출하지 않는 것이 최선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삶이란 단순하지 않다. 쉽게 선을 그을 수 없는 것이 삶이다. 빛과 어둠은 이분법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변증법적으로 존재하고, 진리와 악도 서로를 배척하면서도 동시에 변증법적으로 역사하는 면이 있는 것이 바로 삶이다. 악을 보지 않고는 진리를 볼 수 없고, 악의 포악함과 허무함을 경험하지 않고는 진리의 길로 선회하기 어렵다는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악은 우리를 진리에서 멀어지게도 하지만 동시에 악에서 진리로 돌아서게 하는 계기로 작동하기도 한다. 바울도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고 말했다(롬5:20). 옳다. 죄는 은혜의 발판이 되기도 하고, 악은 진리로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고 죄악을 환영할 수는 없다. 악과의 타협은 진리에 대한 배신이요 왜곡이기 때문에 진리는 결코 악과 타협할 수 없다. 하지만 동시에 악한 세상을 외면하거나 내쳐서도 안 된다. 악한 세상을 외면하거나 내치는 진리는 더 이상 진리일 수 없다. 진리의 길은 ‘이것이냐’, ‘저것이냐’의 길이 아니니까. 진리의 길은 오묘한 역설로 가득한 길이요, 모순을 끌어안고 가야 하는 길이요, 합리로는 납득하기 어려운 십자가의 길이니까. 그렇다. 진리의 세계란 어쩌면 선명한 흑백지대이기보다는 흐릿한 회색지대인지도 모른다. 이 세상에서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