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 전야(4)- 성도들의 깨어남
종교개혁은 역사의 판도를 바꾼 사건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흘러왔던 역사에서 생각하게 하는 역사로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여기에는 다양한 이유들이 존재합니다. 그중에 몇 가지를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또 한 하나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종교개혁 즉 교회 개혁은 단지 교회의 탐욕과 성직자의 타락과 무지로만 넘길 것이 아닙니다. 여기에는 중요한 한 가지가 존재합니다. 바로 깨어나는 성도들의 자성입니다.
중세 천년이라는 기간 동안 성도들은 순진한 양처럼 교회의 가르침에 순종하였습니다. 거기에는 교회의 성경 독점에 있었습니다. 이것이 성도들로 하여금 교회와 사제들의 가르침에 맹목적으로 순종할 수밖에 없게 하였습니다. 성경에 대한 무지는 주체적이고 신앙고백적인 믿음이 아니라 예속적인 신앙이 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초대교회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초대 교회의 신앙은 성경 중심의 삶이었습니다. 사도들을 성경을 가르쳤고, 회람하였으며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였고 순종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모습은 교부들의 시대에도 이어졌습니다. 405년 히에로니무스(제롬)는 히브리어와 헬라어 성경에서 라틴어로 성경을 번역하였습니다. 이것이 라틴어 불가타역입니다. 이 성경은 서방교회의 표준 성경이 되었다.
그러나 라틴어로 반역된 이후에 더 이상 성경은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라틴어를 알아야만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라틴어는 교육 받은 이들의 산물이었습니다. 그러나 라틴어를 안다고 해서 누구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직 사제들만이 읽을 수 있게 하였습니다. 물론 사제 가운데 라틴어를 모르면 성경을 읽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성경을 읽지 못하니 사제의 말이 곧 성경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사제가 정직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전하면 문제가 크게 줄어들겠지만 사제가 무지하거나 타락하면 성도들은 살아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혀 들을 수 없게 된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교회의 부패와 함께 서서히 수면 위로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한 사람을 예비합니다. 그는 성경은 자신의 언어로 번역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라틴어로 된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 이름은 바로 옥스퍼드의 교수였던 존 위클리프입니다. 위클리프는 1378년 교황제의 대 분열이 일어난 것을 보고서 『성경의 진실성에 대해서』라는 책을 출판했습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의 권위가 최상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위클리프는 성경을 많은 권위들 가운데 하나로 보지 않았고, 모든 권위들보다도 가장 우위에 있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어거스틴의 증거도, 제롬도, 그 어느 성인들보다도 성경에 의존하지 않고는 수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대부분의 유럽인들처럼 영국 사람들도 라틴어를 읽을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위클리프는 모든 사람들이 영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다면 교회의 변혁이 일어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그래서 최초로 영어 성경을 번역한 것입니다. 이때가 1382년입니다. 결국 위클리프는 이 일로 인하여 죽은 지 21년 후인 1415년 콘스탄츠 회의에서 이단으로 정죄되고, 1428년에는 부관참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뼈를 스위프트 강에다 뿌렸습니다. 그러나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은 각 지역으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이렇게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에게는「롤라드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이것은 “기도를 중언부언하는 자들”이라는 네델란드에서 유래된 이름입니다. 이들은 영어로 된 성경을 읽고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들의 영향은 스코틀랜드에 영향을 미쳤고 그 가운데 존 낙스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유럽으로 건너가 보헤미안 사람들 즉 체코의 얀 후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위클리프의 책을 읽었던 후스는 이단자로 사형 당하였던 위클리프를 “복음적 박사”라고 언급했다는 의미로 기소를 당하였습니다. 그는 당시의 관행대로 설교문은 라틴어로 썼지만 설교는 체코어로 전파했습니다. 이것은 바로 위클리프의 영향이었습니다. 결국 얀 후스는 이러한 개혁운동으로 말미암아 1415년 콘스탄츠 회의에서 화형을 당하게 됩니다. 이렇게 종교개혁의 전야에는 로마 카톨릭 교회에 대한 저항운동이 있었으며 그 근저에는 성경번역과 함께 깨어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물결은 깨어있는 지식인이요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에라스무스에게서 꽃 망울이 피기 시작하였습니다. 일반 성도였던 에라스무스는 로마 카톨릭 교회의 무지와 부패와 탐욕에 대하여 날카로운 비판하였습니다. 그는 1509년 『우신예찬』이라는 책을 써서 당시의 교회와 사제들의 무지를 비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에라스무스는 이미 1505년에 헬라어 신약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존의 헬라어 성경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비판하면서 1516년에 헬라어와 라틴어와 함께 출판하였습니다. 에라스무스는 죽기 한해전인 1535년까지 계속하여 성경을 개정하여 출판하였습니다.
이러한 에라스무스의 성경번역은 영국의 윌리엄 틴데일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틴데일은 위클리프의 제자들이라 할 수 있는 롤라드파에 영향을 받아서 당시 로마 카톨릭에 대하여 비판적이었습니다. 옥스퍼드에서 공부를 마쳤던 틴데일은 그러다가 1516년에 캠브리지에 갑니다. 그리고 성경번역에 대한 강한 도전을 받습니다. 이렇게 캠브리지에서 에라스무스에게 도전을 받은 틴데일은 라틴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였던 위클리프의 방법이 아니라 직접 헬라어에서 영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작업을 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틴데일 성경입니다. 그리고 루터의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더욱 힘을 얻어서 1526년에 영어 성경을 번역합니다. 그리고 구약을 번역하는 가운데 1535년에 네델란드에서 잡혀서 순교를 하게 됩니다.
사실 위클리프와 에라스무스는 종교 개혁 전야의 뜨거운 존재들입니다. 이들을 통하여 성경이 일반 성도들의 손에 오게 되었습니다. 마틴 루터는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성경 출판으로 인하여 독일어 성경을 번역하는데 가장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1522년1534년]. 성경이 사람들의 손에 들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틴데일은 자신이 성경을 번역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내가 복음서를 번역하게 된 동기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을 설명하는 것 자체가 불필요할 정도이다. 어두운 곳을 걷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넘어져 다칠까 봐 빛을 비추어 달라고 당연히 요청하지 않겠는가? 하물며 그 넘어짐이 영원한 심판을 초래할 수 있다면 더욱 그렇게 하지 않겠는가? 다른 사람이 이토록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을 갖는 것에 시기심을 품는 사람은 얼마나 사악한가?”
성경을 알지 못하면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은 가장 무지한 일입니다. 그런데 당시의 교회는 성경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사제들도 알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이 자국어로 번역되어지자 성도들이 각성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자신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성경을 읽자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이 교회에서 너무나 많이 실행되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지식인층에서 시작하여 일반 대중에게 알려졌습니다. 그러자 교회가 다시 보이게 된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이 롤라드파 성도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성경을 읽고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것을 멈추라고 교회에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하여 몰살당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하지만 이들의 각성은 교회를 깨어나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어두운 새벽을 깨울 한 사람을 준비합니다. 바로 독일의 수사 마틴 루터입니다. 1517년 마틴 루터의 반박문은 그 동안 각개 전투로 진행되었던 개혁의 물결이 거대한 파도처럼 몰려오게 됩니다.
이렇듯 종교개혁의 전야에는 이렇게 전운이 돌고 있었습니다. 위클리프, 후스, 롤라드파, 에라스무스, 틴데일 그리고 무수히 함께 하였던 동지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어두운 새벽을 살면서 동트는 그 시간을 위하여 인내하거나 생명을 내 놓았습니다. 역사는 그렇게 진행되는 것입니다.
개혁은 성경에서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이 사람을 깨우고 교회를 새롭게 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통하여 성령이 역사를 합니다. 성경은 목사들의 전유물이 아닙니다. 신학자들의 놀이터가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더구나 자국어로 주어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말로 주어진 성경을 무시하는 것은 중세 사제들과 같은 권위를 내세우는 것입니다. 모국어로 성경이 번역된 것은 교회를 위한 선물입니다. 성경은 읽고 듣기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있어도 읽지 않고, 듣지 않는다면 성도는 우매한 성도가 될 것이고, 교회는 타락하여 갈 것입니다. 교회 개혁은 성경에서 시작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성경을 통하여 세상을 볼 수 있고, 해석할 수 있으며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을 키우는 일입니다. 성경이 모국어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열심히 읽어야 합니다.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리고 자주 묵상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이 우리에게 진리를 알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성경은 목사와 신학자들에게 주신 것이 아니라 온 성도에게 주신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개혁은 말씀으로 깨어있는 성도로 부터 시작합니다. 그 한 사람이 누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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