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이재훈목사

그리스도의 사람들 (사도행전 11:19~26)

새벽지기1 2018. 1. 17. 07:17

 

안디옥교회처럼 언어와 민족과 문화가 달라도 포용하고,
복음을 전하고, 서로가 서로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오늘 본문은 사도행전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말씀입니다. 예루살렘에 핍박이 일어나 흩어진 성도들로 인해 안디옥교회가 형성되는 과정입니다. 당시  안디옥이라는 도시는 팔레스타인 북쪽지역에 있지만 로마와 알렉산드리아 다음으로 큰 도시였습니다. 대다수 도시들이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은 어느 시대이건 마찬가지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다양한 민족과 인종들이 모인 국제교역 도시였기 때문에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가치가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교회는 아직도 율법적인 문화에 사로잡혀서 이방인과 교제하기를 꺼렸습니다. 그래서 선교 중심적 교회가 되기는 어려웠습니다. 안디옥교회는 이방인들을 중심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에 세계선교의 중심지 된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지가 될 수 있었던 중요한 이유가 나옵니다. 안디옥에 있는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는 제자들, 성도들, 형제들, 믿는 사람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불렸습니다. 그런데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과 제자들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의 사람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크리티아누스’입니다. 당시 유행했던 언어적 문화가 있었습니다. 헤롯을 지지하고, 헤롯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는 사람들을 ‘헤로디아누스’라고 불렀습니다. 가이샤의 추종자들은 ‘가이사이누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을 ‘크리티아누스’라고 불렀습니다.
안디옥교회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사람,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선교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출발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역을 하고, 어떻게 복음을 전하는가 보다 중요한 것이 세상으로부터 어떤 평가를 받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모습이 얼마나 나타나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선교의 가장 중요한 출발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불리고, 우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떤 모습으로 보이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 유지

 

오늘 본문을 통해서 안디옥에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 예루살렘의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진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켜갔기 때문입니다.
“그 무렵 스데반의 일로 인해 핍박을 받아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페니키아, 키프로스 그리고 안디옥까지 건너가 유대 사람들에게만 말씀을 전하고 있었습니다”(19절).
하나님이 예루살렘 교회에 기대하신 것은 그들이 하나님 나라의 개척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대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 사마리아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될 것”을 기대하셨습니다. 예루살렘 교회에 성령 충만함과 기적이 나타났지만 유대 땅을 넘어서지 못하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빌립 집사의 사역으로 복음이 사마리아로 확산되고 있었지만 온 교회적인 확산이 일어나지는 않았습니다. 그때 핍박이 일어났습니다. 그 핍박이 성도들을 흩어지게 했고, 복음이 확산되는 효과를 가져왔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정체성은 모이는 것뿐만 아니라 흩어지는 것입니다. 모였을 때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 흩어져 있을 때에도 동일한 정체성이 유지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핍박으로 인해 흩어진 성도들은 정체성과 사명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흩어진 곳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고난을 피해서 흩어졌지만 사명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주님을 향한 섬김을 피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영적 새 생명은 환경이 바뀐다고 해서 달라지지 않습니다. 환경이 바뀐다고 믿음이 달라지는 것은 진짜 믿음이 아닙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어떤 상황에 처했든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을 때만이 아니라 어려울 때도, 병들었을 때도 신앙은 동일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영적인 새 생명입니다.
예루살렘에 거주하던 성도들이 일시적인 핍박으로 인해서 흩어졌습니다. 이 얼마나 큰 충격입니까. 당시 유대인들이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이방지역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 한다는 것만큼 힘겨운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경제적인 기반을 닦아야 하고, 앞일을 개척해야 되는 엄청난 도전 앞에서도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라는 정체성을 잃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들 안에 진정한 영적생명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위험을 피하기 위해서 흩어졌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이 왜 흩어지게 되었는지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핍박을 통해서 그들을 흩어지게 하시고, 복음이 확산되도록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시련이나 고난에도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과 섭리가 있습니다. 분명한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헤아리지 못하는 목적과 의도가 숨어있습니다. 그들의 흩어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복음이 이방세계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입니다. 이 일로 인해서 안디옥에 세계선교의 중심지가 되는 교회가 생겼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파


둘째, 소수의 제자들이 인종을 넘어서 안디옥에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인 몇 사람은 안디옥으로 들어가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주 예수의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셔서 많은 수의 사람들이 믿고 주께 돌아왔습니다”(20~21절).
흩어진 제자들이 계속 유대인에게만 말씀을 전했다면 선교의 한계가 있었을 것입니다. 이때 이방인들에게도 복음을 전한 소수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름도 알려지지 않은 몇 사람입니다.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인 몇 사람은 안디옥에 들어가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언제 변화된 사람들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에서 흩어진 성도들을 통해서 복음을 듣고 변화된 사람들일수도 있고, 오순절 성령의 역사 때 충만함을 받던 사람들에 의해서 복음을 듣게 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을 통해 믿게 된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예수님을 믿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이름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그리스 문화와 언어에 익숙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안디옥에 있는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유대인들만의 교회에서 이방인을 향한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예루살렘에만 머물러 있던 교회가 온 세상을 향한 교회로 변화되었습니다. 이름도 알지 못하는 소수의 성도들이 세계선교의 흐름과 패러다임을 변화시켰습니다. 여러분, 교회의 역사는 언제나 유명한 지도자에 의해서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소수의 성도들, 선교에 헌신하고 복음전도에 헌신한 소수의 성도들을 통해서 이뤄졌습니다. 무명의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의 역사가 이루어졌습니다.
만역 다른 인종, 다른 문화권에 있는 사람들을 품지 않는다면 안디옥까지 갔지만 유대인에게만 복음을 전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 패러다임을 바꾼 것이 바로 키프로스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입니다. 그들이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곳에 유대인들보다 그리스 사람들이 더 많았습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당연한데 같은 언어, 같은 인종, 같은 문화에 묶여 있기 때문에 그들을 전도대상자로 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창의적인 몇 사람을 통해서 새로운 역사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의 손이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 많은 사람들이 믿고 돌아왔습니다. 부흥의 역사는 주의 손이 함께하심으로 사람들이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전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주의 손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안디옥교회의 출연은 어느 한 사람의 지도자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소수무명의 성도들에 의해서 시작되었습니다. 지도자 한 사람의 카리스마와 양육에 의해서 이뤄진 것이 아닙니다. 무명의 성도들의 개척과 헌신에 의해서 이뤄졌습니다. 그들을 통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로 돌아왔습니다. 나중에는 그곳에 지도자를 파송했습니다.


셋째, 지도자들이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세워줬기 때문입니다.
안디옥에서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라는 지도자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습니다.
“이 소식이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전해지자 그들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보냈습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도착해 하나님의 은혜가 내린 것을 보고 기뻐하며 온 마음을 다해 주께 끝까지 충성하라고 그들 모두를 격려했습니다. 그는 착하고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주께 나오게 됐습니다(22~24절).
예루살렘 교회가 파송한 바나바는 아름다운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도록 성숙한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불리게 된 중요한 이유입니다.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바나바가 어떻게 했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주기 때문에 상세하게 기록된 것입니다.
바나바는 안디옥에 내려진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했습니다. 여러분, 영적지도자는 한 영혼, 공동체, 지역에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를 보고 기뻐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중요합니다. 영적지도자에게는 그 안목이 있어야합니다. 이 땅에 오셨던 많은 선교사들의 삶을 조명할 때 기뻐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생겨난 새 생명을 기뻐하는 것입니다. 세례식이 있을 때마다 얼마나 큰 기쁨이 있는지 스스로를 돌이켜 보아야 합니다. 한 영혼이 예수님을 믿는 것을 보고 기뻐하는지를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임한 것을 보고 기뻐할 수 있다면 우리도 그리스도의 사람들이라고 불릴 기초가 있는 것입니다
 

또한 바나바는 성도들에게 “주께 충성하라”고 격려했습니다. 그는 격려자였습니다. 바나바는 성도들이 자신을 바라보도록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던 소수의 성도들을 바라보라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님께 충성하라고 격려했습니다.바나바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서 사울을 데려와 성도들을 양육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바나바는 사울을 찾으러 다소로 가서 그를 만나 안디옥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그리하여 바나바와 사울은 1년 내내 그곳 교회에 머물면서 많은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안디옥에서 제자들은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불리게 됐습니다”(25~26절).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왔습니다. 사울이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다메섹에서부터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그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고 죽이려고까지 했습니다. 원수를 갚으려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사울이 어떤 경로를 통했는지는 모르지만 다소에 있었습니다. 아마 일정기간 그곳에 머물렀을 것입니다. 바나바가 다소에 있는 사울을 안디옥으로 데려왔습니다. 당시 그 어떤 유대지도자들도 사울을 교회의 지도자로 세우려고 하지 않았을 때 바나바는 사울이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사울이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을 양육하면 큰 유익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사울을 지도자의 위치로 세운 인물이 바나바입니다. 얼마나 훌륭한 태도입니까. 바나바가 사울을 안디옥으로 초청하지 않았다면 교회 지도자로 세우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 모릅니다. 바나바는 자신의 지도력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사울을 동역자로 세웠습니다. 그들은 1년 동안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을 함께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지로 성장하는데 큰 기여를 했습니다.

 

안디옥교회처럼


 지도자들이 성도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할 줄 알아야합니다. 성도들에게 “주님께 충성하라”고 격려해야 합니다. 지도자들이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세워줘야합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야 합니다. 바로 이것이 안디옥에서 사람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된 이유입니다. 바로 이것이 안디옥교회 성도들의 모습이었습니다.
여러분, 그 공동체가 어떤 공동체인지는 지도자들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도자들의 수준을 보면 공동체의 수준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신보다 나은 사람들을 지도자로 세우려고 하고, 동역하기를 기뻐하는 리더십가운데서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나옵니다. 영적인 영향력은 전혀 주지 못하면서 서로 나서려고 주장하고, 지배하려고 하는 지도자는 예수님을 닮은 인격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위해서 꼭 필요한 사람인데 세워줄 줄 모르고, 끌어내리려 하고, 질투하는 지도자들을 통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형성될 수 없습니다. 성도들이 은혜 받고, 도전 받고, 변화될 수 있다면 초청해서 동역하고, 서로를 세워줄 줄 아는 공동체가 바로 그리스도의 사람들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통해서 안디옥에 그리스도의 사람들이 세워졌습니다.


오늘 설교를 요약을 하면 이렇습니다. 예루살렘 교회 성도들이 핍박을 통해서 흩어졌습니다.  안디옥까지 흩어졌습니다. 안디옥에 있는 성도들이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을 전할 때 몇 사람이 그리스 사람들에게도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주의 손이 함께 하심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예루살렘 교회가 바나바를 안디옥으로 파송했습니다. 바나바는 다소에 있는 사울을 데려와서 함께 동역하면서 안디옥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도록 헌신했습니다.


여러분, 흩어지고, 상황이 바뀌어도 변하지 않는 믿음이 진짜입니다. 그것이 사명입니다. 복음은 언어와 민족과 문화를 뛰어넘어 전해집니다. 성도들의 영적성장을 위해서 서로를 세워주는 지도력이 있어야합니다. 이러한 요소들이 어우러져서 안디옥교회가 세계선교의 중심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추구해야 할 모델이 안디옥교회입니다. 안디옥교회처럼 언어와 민족과 문화가 달라도 포용하고, 복음을 전하고, 서로가 서로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그렇게 온 세상에 복음이 전해지는 일에 쓰임 받는 온누리교회가 되어야합니다. 흩어지더라도, 어떤 상황이라도 변치 않고, 어떤 민족이라도 품고, 복음을 전하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세우는 교회가 되어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