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행복과 형통을 원하면서도 그 길을 잘못 찾아가고 있다.
부와 소유를 많이 가지고 권력과 명예로 바벨탑만을 쌓을려고 한다.
인류의 긴 역사는 그것이 결코 행복과 형통의 길이 아니었음을 증거하고 있다.
중동에서 무너지고 있는 장기 집권의 독재자들의 최후가 보도되고 있다.
매체의 사극을 통해 권력과 부의 무상함을 보면서도 생각을 바꿔야 할 필요성을 못느낀다.
어린 양의 진노의 날, 세상의 자랑스러웠던 사람들이 무엇으로 그 진노를 가려달라고 하는가?
(계6:14-17) '하늘은 두루마리가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겨지매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모든 종과 자유인이
굴과 산들의 바위 틈에 숨어 산들과 바위에게 말하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얼굴에서와 그 어린 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은 반드시 온다고 성경은 말씀하는데, 그들은 아랑곳 하지 않는다.
그 최후의 운명을 예수님이 직접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로 말씀하셨지만, 믿지를 않는다.
(눅 16:23-25) '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 아브라함이 이르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그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괴로움을 받느니라'
모세가 노래했다.
(시90:9-10) '우리의 모든 날이 주의 분노 중에 지나가며 우리의 평생이 순식간에 다하였나이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베드로 사도가 말씀한다.
(벧전1:24)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세월은 참으로 유수와 같이 흘러간다.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다 가고 겨우 2주만 남겨놓고 있다.
그렇게 새해를 반복하다 보니 어느새 우리의 나이가 지금 현재에 이르렀다.
연말을 맞이할 때마다 우리 인생의 최후의 날을 생각해 봐야 한다.
세상 최후의 날을 생각해 보고 우리가 오늘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인생과 세상의 최후에 대해 우리가 믿고 의지할 곳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록된 성경 밖에 없다.
우리의 끝이 어디인지를 모른 채 무작정 달려가는 것처럼 무모하고 어리석은 것도 없다.
정말 잘 사는 것이 어떤 삶이냐? 행복과 형통은 어디로서 어떻게 오는 것인가?
그 답을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에서 찾아야 한다.
성경은 우리 인생이 세상 유행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살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렇게 사는 삶 배후에는 악한 영의 조종이 있다고 말씀한다.
내가 사는 것 같지만 마귀의 손아귀에 잡혀 쥐고 그가 흔드는데 따라 춤을 추는 것이 인생이다.
세상과 마귀와 육체에 취해 반수면 상태에서 끌려가는 인생에서 깨어나야 한다.
(롬13:11-14)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이 말씀을 듣고 4세기의 어거스틴은 깨어나서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다.
이 말씀이 비수같이 꽂혀서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는 역사가 일어나기를 소원한다.
곤두박질을 치는 인생을 살면서도, 내가 곧 어둠인 줄을 모르고 깨어날 줄을 모른다.
거룩함이 없이는, 죄를 처리하지 않고서는, 우리 인생을 절대로 바로 세울 수 없다.
우리 인생에 진정한 복을 주시는 분이 거룩하시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고난은 바로 몸과 마음에 벤 죄를 씻고 성결케 해서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하나님이 우리 인생에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우리는 부지런히 그분이 성령으로 쓰신 성경을 읽고 듣고 실천해야 한다.
그곳에 우리 인생의 형통과 행복의 길이 있다.
모세를 이어 하나님의 백성을 인도하게 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도
성경을 따라 사는 삶이다.
(수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여러분 성경을 사랑하시고 즐거워하십시오.
성경에 관한 경건 서적들을 읽기 위해 시간과 노력을 드리십시오.
거기에 우리 인생과 가정의 형통과 행복의 길이 있다.
시편 1편은 무어라고 하는가?
(시1:1-4) '복 있는 사람은 ---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
악인들은 그렇지 아니함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따라 살 때
우리는 거룩함을 이루고 복과 형통을 받을 수 있다.
우리의 고난을 바로 해석해 주는 것도 성경 말씀이요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주는 빛과 등불도 하나님의 말씀이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묵상하노라면 우리의 생각과 사고방식이 바뀌게 될 것이고,
따라서 우리의 말과 행동이 달라질 것이고,
그러면 우리의 관계와 일들을 대하는 자세와 태도가 달라질 것이다.
한 청교도의 말씀을 인용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항상 우리 앞에 두어 규칙으로 삼아야 한다.
말씀이 가르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믿지 말고,
말씀이 권고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으며,
말씀이 금지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미워하지 말고,
말씀이 명령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행하지 말아야 한다”.(헨리 스미스)
성공과 성취를 향해 뛰는 에너지의 절반의 절반만 갖다가, 성경을 읽고,
그 말씀대로 성결을 이루는 데 쓰기만 해도, 그 인생은 역전될 날이 올 것이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성취가 아니라 성결인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
성취의 복과 형통은 그 성결을 이루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위대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예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에게 복을 주신다.”(존 보이스)
오늘 우리는 다윗의 후손인 여호사밧 왕의 생애를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한다.
여호사밧 왕은 이스라엘 남과 북, 왕들 중에 몇 안되는 훌륭한 왕이다.
역대하 17-20장에는 여호사밧의 행적이 자세하게 기록되고 있다.
그의 생애는, 한 마디로 말씀대로 살아 형통하였고,
죄를 범하고 징계를 받았으나, 큰 구원을 경험하였고 회복하였다.
1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함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다윗의 처음 길’, 그의 나중 길은 밧세바로 인하여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하고 쇠태하였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할 정도로 믿음과 말씀과 찬양의 사람이었다.
‘다윗의 처음 길’은 그가 쓴 시 23편이 잘 말해 준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을 것을 믿었다.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실 것을 믿고 노래 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믿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자기를 안위하심을 믿었다.
내 평생에 주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를 것을 믿었고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 것을 고백했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셔서 내 잔이 넘칠 것을 믿고 노래했다.
다윗은 아둘람 굴의 시절에도 하나님만을 의지하며 때를 기다렸다.
사울왕을 죽일 두 번의 기회가 왔지만 하나님이 기름부은 자라고 죽이지 않았다.
다윗은 시글락의 위기에도 하나님을 힘입고 용기를 얻었다.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30:6)
다윗이 소년일 때 골리앗과 싸우며 하는 신앙고백을 보라.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삼상17:37).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게 나아가노라”(삼상17:45).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47)
하나님은 다윗의 범죄에도 불구하고 사울처럼 버리지 않으시고,
그 후손들을 축복하시고, 그의 혈통을 통하여 다윗의 후손으로 주 예수 그리스도가 오게 하셨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왕권을 ‘다윗의 왕권’이라 성경은 부른다. ‘다윗의 씨’라 부른다.
성경은 그후 여러 왕들의 행적을 평가할 때 다윗의 처음 길을 갔느냐 않았느냐로 기준 삼는다.
여호사밧은 “다윗의 처음 길로 행하여”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여호사밧은 성경에 기록된 계명을 지켜 행했고, 이스라엘의 반역행위를 따르지 아니하였다.
온 이스라엘이 풍요의 신 우상 바알에게 구하고 바알이 원하는 것을 행할 때
여호사밧은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바알과 세상을 의지하지 아니하였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바알과 세상에게 돈과 재물과 권력과 명예를 구하고 있다.
죠지 뮐러와 허드슨 테일러는 선교와 사역을 하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사람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만 구하며 산 것으로 유명하다.
여호사밧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였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추구하고 탐하는 것이 현대판 우상들이다.
야곱처럼 우상들을 다 땅에다 묻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하나님은 왜 당신이 쓰는 사람들에게 고난의 긴 세월들을 보내게 했을까요?
그것은 마음 속에 자리잡은 우상들을 제거하고 그곳에 하나님으로 채우고
그분의 법도로 새겨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을 배우게 하기 위함이었다.
여호사밧은 방백들과 레위 사람들을 보내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쳤다.
재판관들을 세우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행하게 하였고,(19:7)
백성들에게는 진실과 성심을 다하여 여호와를 경외하게 하였다.(:9)
2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침
이러한 여호사밧의 믿음과 행위를 보고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다’(17: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나라를 그의 손에서 견고하게 하시매
유다 무리가 여호사밧에게 예물을 드렸으므로 그가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쳤더라“
백성이 예물을 드렸다.
백성들이 바알에게 구하여 얻을려고 하던 것을,
하나님은 그 믿음의 행위를 보고, 부귀와 영광을 크게 떨치게 하셨다.
다윗의 처음 길로 간 여호사밧에게 복과 형통을 부어 주신 것이다.
3 범죄와 회복
태평성대로 그가 교만하여 하나님이 가장 미워하는 이스라엘의 왕 아합과 혼인관계를 맺었다.
그와 어울려서 전쟁에 나갔다가 죽을 고비를 겪고 돌아온다.
그 전쟁은 아합을 죽이시는 하나님의 진노의 전쟁이었다.
“하나니의 아들 선견자 예수가 나가서 여호사밧 왕을 맞아 이르되 왕이 악한 자를 돕고
여호와를 미워하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이 옳으니이까
그러므로 여호와께로부터 진노하심이 왕에게 임하리이다”
여호사밧의 범죄로 인하여 아랍족속들(모압, 암몬, 마온)이 대군대를 끌고 쳐들어 왔다.
백성들에게 금식을 선포하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한다.
“여호사밧이 두려워하여 여호와께로 낯을 향하여 간구하고 온 유다 백성에게 금식하라
공포하매 유다 사람이 모든 성읍에서 모여와서 여호와께 간구하더라”(20:3-4)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치러 오는 이 큰 무리를 우리가 대적할 능력이 없고
어떻게 할 줄도 알지 못하옵고 오직 주만 바라보나이다”(20:12)
대부분의 왕들은 적군들이 쳐들어오면 성전과 왕궁에 있는 보물들을 다 싸들고
이웃 강대국을 의지하러 달려들 갔다.
우리도 대체로 그렇게들 하지 않나요?
비록 여호사밧이 범죄하여 대적들의 큰 무리가 쳐들어왔으나
여호사밧과 백성들이 한 마음이 되어 겸비하여 낮아지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을 때
선지자를 통하여 응답이 떨어진다.
(대하20:17) '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대열을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유다와 예루살렘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내일 그들을 맞서 나가라 여호와가 너희와 함께 하리라 하셨느니라 '
여호사밧의 남은 생애는 하나님의 축복으로 그야말로 태평성대를 구가하다가 잠이 들었다.
(대하20:29-30) '이방 모든 나라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적군을 치셨다 함을 듣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므로
여호사밧의 나라가 태평하였으니 이는 그의 하나님이 사방에서 그들에게 평강을 주셨음이더라'
여호사밧 왕의 생애를 통해서 우리가 얻는 교훈이 이러하다.
“다윗의 처음 길”로 가야 한다.
그 길이 어떤 길이었는가?
바알들에게 구하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아버지의 하나님께 구하며
그의 계명을 행하고 이스라엘의 행위를 따르지 아니하는 것이었다.
그가 전심으로 여호와의 길을 걸어 산당들과 아세라 목상들도 유다에서 제거하는 것이었다.
우리 속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은 우상들을 제거해야 한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아끼는 것이 우상인 것을 알아야 한다.
여호와의 율법책을 가지고 유다에서 가르쳤다.
축복과 형통이 어디로부터 나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행복과 형통이 하나님께 있고, 성경에 기록된 대로 성결한 삶에 있는 것을 믿고
성경을 사랑하여 읽고 듣고 연구하고 그대로 사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란다.
성경과 함께 그 성경을 밝히 알게 해주는 경건서적들을 사랑하고 애독하시기 바란다.
우리의 생애를 년말을 마치듯 마치는 날,
세상과 그 방법들에만 매달려 살았던 것을 후회한들 그때에는 돌이킬 길이 없다.
오직 여호사밧을 본받아 ‘다윗의 처음 길’로 가셔서 복과 형통의 생애를 사시길 축원한다.
'좋은 말씀 > 강대식목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새 존재, 새해 (고후 5:17) (0) | 2017.06.30 |
---|---|
임마누엘 예수 (마 1:18-25) (0) | 2017.06.28 |
건축자들의 버린 돌 (눅 20:9-18) (0) | 2017.06.20 |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눅 13:22-30) (0) | 2017.06.13 |
연단의 불 시험 (벧전 4:12-19) (0) | 2017.06.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