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눅 13:22-30)

새벽지기1 2017. 6. 13. 07:10


사람들은 좁은 문, 좁은 길을 싫어하고, 넓은 문, 넓은 길을 좋아한다. (군자대로행?)

거기엔 힘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고, 다들 좋아라고 몰려들어 가기 때문이다.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웬지 안심이 되고 설령 망하더라도 함께 이니 대수랴 하는 거지요.

 

누가 떴다! 이뤄냈다! 하면 우루루 사람들이 몰리고 그것만을 쳐다보고 부러워한다.

밴치 마킹해서 나도 이룰려고 달려들 간다.

그것만이 선이고 정의이고 그래서 강권하고 그 길로만 몰려든다.

 

유행에 미혹되고, 베스트 셀러에 끌려다니고 다수의 의견들에 영혼도 팔아 먹는다.

줏대가 너무 없다 보니, 진리는 주체성이라는 말이 귀하게도 들린다.

 

사람들은 진리도 다수결로 결정하고자 한다.

민주주의가 독재보다는 좋은 거지만, 대중의 선택이라는 것이 항상 옳은 것만은 아니다.

다수결로 결정한 것들이 지나고 보면 잘못된 것들이 허다하다.

 

오늘 본문에서 구원받는 사람들이 적으냐고 묻는 질문에

주님의 대답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신다.

구원의 문을 집 주인이 한 번 닫은 후에는 ‘열어 주소서!’ 해도 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마태복음에는 “찾는 이가 적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마 7:13-16)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들어가는 자들이 많은 반면에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다고 하신다.

왜 그런가? 인도하는 자들 때문이다. 선지자들 때문이다.

 

멸망의 길로 인도하는 자들이 누구냐 하면, 바로 거짓 선지자들이다.

앞 뒤 문맥을 살펴보면 넓은 문과 거짓 선지자의 관계가 분명해진다.

뒤이어 ‘거짓 선지자들’을 말씀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고

또한 각기 다른 길로 ‘인도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속아서 멸망의 길로 가느냐?

거짓 선지자들은 노략질하는 이리인데도, 양의 옷을 입고 나오기 때문에 그렇다.

양의 옷이 무엇인가?

 

크고 화려한 성전, 거룩한 의상과 의식, 뛰어난 용모와 학력과 경력, 빼어난 화술과 능력,

시대를 앞서가는 지혜와 리더십 등 사람들을 현혹하는 조건들을 다 갖추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로 채워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열매를 보면 알리라고 하셨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열매는 보지 않고, 거짓 선지자들의 감언이설에 그만 넘어가고 만다.

거짓 선지자들은 미혹의 영과 귀신의 가르침으로 사람들을 현혹한다.

 

(딤전4:1-2)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거짓 선지자들은 가르침이 잘못 돼있고, 영이 잘못되어 있다.

그렇지만 가르침이 잘못된 것, 영이 잘못된 것을 분별하기란 그렇게 쉽지가 않다.

저도 10여년을 헤메고서야 이제 좀 분별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할 정도이다.

 

진리를 모르면 넘어가게 돼 있다.

베드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한다.

그것이 바로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가지 않고 굳센 데서 떨어지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그러나 항상 배우나 진리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얀네와 얌브레들이 의외로 많은 것을 보았다.

배우긴 많이 배웠는데, 참 진리의 대한 사랑은 얻지 못하고 교만만 키우고 마는 사람들이다.

이 또한 그들이 맺는 열매를 보면 가히 알 수 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로 갈려면 참 선지자를 만나야 한다.

어떤 종류의 선지자의 가르침을 받고 인도함을 받느냐가 생명과 멸망으로 판가름이 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 일만 스승이 있으나 복음으로 가르치는 아비는 많지 않다고 하였다.

 

우리 나라에도 세계에도 유명하다는 이들 가운데, 영적 사기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유명해서 다들 좋아해서 저도 한 때 좋아했는데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서 보니까

잘못된 이들이었고, 거짓 선지자들이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찾는 이가 적다고 하는 것은

구원받는 사람들이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성경은 항상 남은 자 사상을 말씀하고 있다.

 

(롬 9:27-29)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자손들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으리니

주께서 땅 위에서 그 말씀을 이루고 속히 시행하시리라 하셨느니라

또한 이사야가 미리 말한 바

만일 만군의 주께서 우리에게 씨를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라면

우리가 소돔과 같이 되고 고모라와 같았으리로다 함과 같으니라'

 

이스라엘의 수(교회와 성도의 수)가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받을 것이다.

만군의 주께서 남겨 두신 씨만 구원받고 다 소돔과 고모라 같이 멸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노아 시대에 홍수로 인하여 구원 받은 사람은 여덟 사람에 불과하였다.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당할 때에도 구원 받은 사람은 롯과 두 딸 뿐이었다.

롯의 처는 미련이 남아 뒤돌아 보다가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다.

 

이사야서에 이런 말씀이 있다.

(사 51:1-3) '너희를 떠낸 반석과 너희를 파낸 우묵한 구덩이를 생각하여 보라

너희의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낳은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내가 그를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였느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세상에서 떠낸 반석과 파낸 우묵한 구덩이는 지극히 보잘 것 없다.

아브라함이 혼자 있을 때에 하나님이 부르고 그에게 복을 주어 창성하게 하셨다.

보잘 것 없는 반석과 구덩이에서 우리를 건져내어 하나님은 큰 역사를 이루신다.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을 보면 하나 같이 좁고 외로운 길을 갔다.

사람들이 많이 가는 넓은 길로 가다가는 구원을 잃고 멸망을 당하는 것이 성경의 역사이다.

좁은 길, 혼자 남은 길, 외롭다고 서러워하지 말라.

 

우리 주님 이 땅에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을 때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 하였다.

제도권과 유대종교를 장악하고 있던 대제사장들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즉 크고 넓은 문으로 가는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에 못 박게 하였다.

사람들이 기적을 보고 몰려 들었지만 예수님이 택한 제자는 열 하나 뿐이었다.

 

가는 사람이 적지만, 그것이 바른 길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길이면 두려워할 것이 없다.

천지의 기상은 분간할 줄 알면서 어찌 이 시대는 분간하지 못하느냐고 하신다.

어찌하여 옳은 것을 스스로 판단하지 아니하느냐고 하신다.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라고 하셨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하신다.

제도권에 몰려가서 거기서들 안심하고 있다가 함께 망할 날이 오고 만다.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항상 소수였다.

넓은 길로 가서 멸망하는 사람들은 항상 다수였다.

이들의 운명의 결말은 참으로 대조적인 것을 성경을 통해 알 수 있다.

 

넓은 길로 간 사람들은 영원히 죽지 못하는 벌레와 꺼지지 않는 유황불, 끊임없는 비탄과 울부짖음으로 사는 지옥으로 갈 것이다. 너무 뜨거워 손가락으로 찍은 물한방울이 그리운 곳이다.

좁은 길로 간 사람들은 예비된 영광과 영화된 몸으로 시들지 않는 면류관과 풍성하게 주시는 상급을 받아 누리는 천국으로 갈 것이다.

 

이 땅에서도 좁은 길로 간 사람들과 넓은 길로 간 사람들은 운명이 역전되는 것을 보게 된다.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안다는 말이 들어맞는 날이 오게 된다.

시편 1편 말씀대로 이루어질 날이 오게 된다.

 

복있는 사람이 바로 좁은 길로 가는 사람이다.

그들은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가지 않기 때문에

좁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기 때문에

그들은 좁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악인들은 넓은 길로 가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악인들의 꾀와 죄인들의 길과 오만한 자의 자리를 마다 하지 않으니까

넓은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운명은 역전되는 것으로 끝이 나는 것을 말씀하고 있다.

좁은 길로 간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이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되는 날이 오게 된다.

 

그러나 넓은 길로 간 악인들은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아질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다.

좁은 길로 간 의인들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넓은 길로 간 악인들은 망하고 만다는 것이

시편 1편 말씀의 결론이다.

 

사람들의 지혜로 달콤하게 속삭이는 거짓 진리와 다른 복음들을 곧이 들지 말고,

함부로 뇌까리는 저주의 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살아계시고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의지하시기 바란다.

좁은 길로 가는 의인들은 오직 믿음으로 구원받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이 말로만의 믿음이 아니고 성령이 거듭나게 하고 선물로 주신 믿음이라면,

우리는 좁은 길이지만 구원의 길이기에 굳건히 서서 이 길을 갈 수 있다.

주님은 우리가 생명으로 인도하는 이 좁은 길을 갈 수 있도록 은혜 주시고

환경을 조성해 주시고, 인도자를 붙여 주신다.

 

나의 나 된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남은 생애를 인도하시는 분도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다.

은혜가 주시는 평강을 누리며 우리는 굳건한 믿음과 온전한 인내로 이 좁은 길을 가야 한다.

 

우리를 위해 이 땅에서 그리고 영원한 세상에서 예비하신 복과 영광들을 소망으로 붙들라.

지금 풀리지 않는 환경들로 인해 낙심하지 말라.

우리보다 더한 역경들을 통과하면서 하나님 나라를 펼쳐 보인 믿음의 선진들을 본받으라.

 

진정으로 행복하고 형통한 인생을 살고 싶은가?

그러면 세상의 방법들과 지혜들을 그만 내려놓고 하나님의 방법과 지혜들을 붙들라.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섬기고, 이 하나님의 법도들을 기록한 성경을 사랑하고 아끼라.

 

성경 말씀대로 죄가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는 일에 힘쓰라.

주님을 닮아가는 성품을 이루고 주님의 향기를 풍기는 삶을 사는데 힘쓰라.

우리의 하루 종일 관심사와 집중하는 것이 무엇인가 돌아보고 우선순위를 바꾸라.

 

우리는 정말로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고 있는가?

그러면 우리가 염려하고 근심하는 먹고 사는 문제는 주님이 해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는 진공상태에서 철학적으로 구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내게 주어진 환경에서, 관계에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가야 한다.

내가 좌지우지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사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의 사고방식대로 산다면 누구라 그 길을 좁은 길이라고 하겠는가?

 

내 옳은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옳은 것, 그것이 그분의 의를 사는 것이다.

내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대로 사는 것은 넓은 길로 휘젓고 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좁은 길, 그 길은 하나님의 말씀이 기준이 되어 사는 길을 가는 것이다.

 

지혜와 능력이 되는 말씀을 자꾸 읽고 묵상하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그 기준을 살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업적을 이루는 것보다는

자신을 깨끗이 하는 일에 더욱 마음과 정성을 쏟을 것이다.

 

우리는 연약하여 넘어지고 게으르고 말씀을 소홀히 할 수 있다.

그렇지만, 다시 강하고 담대한 마음으로 일어서야 한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키고, 채찍질 하는 결단이 필요하다.

 

징계의 채찍을 맞고서야 울면서 후회하면서 세월만 까먹을 것이 아니라,

말씀을 통해 일찍 깨닫고 스스로 채찍질하면서 우리 앞에 당한 믿음의 경주를 잘하자.

사도 바울와 같은 멋진 고백을 할 수 있도록 우리 한평생의 삶을 다시 재조정하자.

 

(딤후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아무 생각 없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은 길로 갔다가는 그 끝이 멸망 외에 다른 것이 없다.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심판을 견딜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 끝에 소망의 열매가 열린다.

(눅16: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많은 사람들이 가는 넓고 큰 문으로 가다가는 멸망에 이르고

적은 사람들이 가는 좁고 작은 문으로 갈 때에 생명과 복과 영광이 있음을 믿자.

오직 진리와 믿음으로 은혜와 평강으로 우리의 생애를 역전시키는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