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건축자들의 버린 돌 (눅 20:9-18)

새벽지기1 2017. 6. 20. 05:03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 돌이 되었느니라”.

건축자들이 누군가? 당시의 제도권의 힘있는 정치 종교의 지도자들이다.

그들은 세우자는 자들이고, 힘있는 자들이다. 그들은 항상 자기들 식으로 건축한다.

 

그들이 버린 돌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하나님 나라를 건축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이 건축하기 위해 보낸 머릿돌을 그들은 버리고 말았다.

 

어떻게 버렸는가?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이고 말았다.

하나님이 보내신 종들은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는 짓’(11절)을 하다가

아들을 보냈더니,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 것으로 만들기’(14절) 위해서였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을 율법으로 가장 잘 섬긴다는 건축자들이, 모퉁이의 머릿 돌로 보내신 돌을 버렸다.

십자가에서 처형하여 버렸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하나님을 가장 잘 섬기는 것으로 생각하였다.

신성모독죄를 범한 예수 그리스도를 도저히 묵과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예수님 공생애 처음부터 죽일려고 작정을 하였다.

 

예수님이 그 건축자들을 처음부터 그 위선과 탐욕과 죄악에 대해 책망하셨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그분의 말씀이 권위있고 하나님의 지혜로 말씀하셨기에 그분을 따랐다.

자기들의 기득권과 위상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기에 죽이는 방법 외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우리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었다.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다.

(행2:23-24) '그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거늘

너희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못 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시각과 세상의 건축자들의 시각은 이렇게 다르다.

하나님 나라와 세상 나라가 다른 만큼 그 세우는 방법도 다르다.

그러니 중심이 되는 모퉁이의 머릿돌도 다르다.

 

세상 권력과 종교 권력의 건축자들은

자기들이 좋아하는 돌로 머릿돌로 삼아 건축하려고 한다.

예수님 공생애 시절에는 두 권력을 대표한 것이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이었다.

 

그들은 유대 종교를 율법화하고 백성들을 어둠의 길로 인도하였다.

카톨릭 세력도 중세 천년 동안 예수 그리스도를 머릿돌로 하지 않고

다른 것을 머릿돌로 하여 온 세상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교황이 그 머릿돌을 대신하였고, 그들의 성경해석과 사상이 머릿돌을 대신하여

그들의 나라를 건축하였다.

종교개혁은 그 머릿돌을 원래의 돌로 돌린 것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의 건축자들은 또다시 다른 머릿돌로 건축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성경의 머릿돌을 버리고 세상의 돌들을 취하여 그것들로 머릿돌로 삼고자 한다.

성경과 예수 그리스도 외에 세상의 많은 지혜와 방법들이 동원되고 있다.

상담학, 경영학, 자유주의신학, 신비주의들이 들어와 세상 건축하듯이 교회를 건축하고 있다.

 

(딤전 4:1-2)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따르리라 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귀신의 가르침’은 성경의 복음과는 ‘다른 복음’들이라 할 수 있고,

‘미혹하는 영‘은 각종 성령 운동과 신비주의 방법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과 참된 성령의 역사는 찾아 보기가 어렵게 되었다.

말씀은 온갖 세상의 지혜와 방법들로 혼잡하고 섞어서 전하고 있다.

영성운동이라고 하는 것들이 대부분 잘못된 영들의 미혹에 지나지 않다.

 

(고후 2:17)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고후 4:2)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속임으로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추천하노라'

 

예수님도 말씀하셨다.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눅21:8)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마7:15)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자가 적음이라”(마7:13-14)

 

사도 요한도 모든 영을 믿지 말고 시험하여 보라고 했다.

(요일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분별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라'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우리는 오늘날의 건축자들이 무슨 돌을 버리고 있는지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들이 무슨 돌을 머릿돌로 쓰고 있는지 잘 살펴 보아야 한다.

 

항상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들은 안에서 권력을 쥔 자들이었다.

(롬 2:23-24)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하나님은 건축자들이 버린 돌을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시는 것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신다.

건축자들에게 버림 받은 것 같으나 그 돌이 모퉁이 돌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도 베드로도 같은 진리를 베드로전서 2장에서 말씀하고 있다.

(벧전2:4-8) '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

너희도 산 돌 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성경에 기록되었으되 보라 내가 택한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노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는 너희에게는 보배이나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건축자들이 버린 그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시고

또한 부딪치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었다 하였느니라'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도 버린 자들이 무엇인들 못 버리겠는가?

그러나 그들이 버린 그 돌이 그들에게는 부딪치는 돌, 걸려 넘어지는 바위가 되었다.

그 모퉁이 돌에 부딪혀 다 가루가 되어 흩어졌고, 이 돌 위에 떨어져 깨어졌다.

 

그들이 건축한 돌들은 그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고 말았다.

다른 머릿돌로 건축하는 자들은 어느 시대 어디에서나 다 그런 운명이 될 것이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날이 온다고 주님은 말씀하셨다.

(눅 23:30) '그 때에 사람이 산들을 대하여 우리 위에 무너지라 하며

작은 산들을 대하여 우리를 덮으라 하리라'

 

건축자들에게는 버림 받은 바 되었으나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께 나아가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모퉁잇돌을 시온에 두셨으니,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 먼저이다.

신령한 제사를 드리는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이 먼저이다.

축복이 먼저가 아니고, 신령한 집, 거룩한 제사장이 되는 것이 먼저이다.

 

그들이 버린 돌을 가지고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게 하신다.

모세를 보라.

세상은 그의 광야 생활 40년 동안 그를 버렸지만,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릿돌로 쓰셨다.

세상 건축자들의 방법대로 라면 모세는 40세에 쓰셔야 했다.

세상 눈으로 보면, 모세는 40세 때에 모퉁이 돌감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쓰지 않으시고 그때부터 40년 동안 광야에서 그를 훈련하고 연단하셨다.

그러고 나니까 그는 하나님이 쓰실 만한 모퉁이 돌이 되었다.

 

유대 건축자들이 십자가 못박아 버린 산 돌 그리스도가 하나님 나라의 모퉁이돌이 되었다.

유대 건축자들이 핍박하고 죽인 선지자들과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진정한 모퉁이돌이 되었다.

 

지금 세상 방법으로 세워진 건축물들을 부러워말라.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 하지 말라.

무너질 날이 온다. 돌 위에 돌 아나도 남지 않고 다 무너지는 날이 온다.

그러나 그들에 의해 버려진 돌들은 때가 되면 세워질 날이 온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성결이지, 우리의 성급한 성취가 아니다.

거룩함, 성결을 광야 고난의 인내와 연단을 이룬 자들을 하나님은 영광의 모퉁이 돌로 쓰신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오셔서 본을 보이셨고 우리는 그 자취를 따르는 사람들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은 아브라함, 욥, 요셉, 모세, 다윗도 다 그러한 과정을 밟았다,

 

롬 5장이 무어라 하는가?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 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믿음으로 견고하게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은 사람들이 그리스인들이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왕노릇하는 가운데 살고 있다.

비록 되는 것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의 은혜가 왕노릇하며 우리를 영광으로 인도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이 가나안이요, 우리의 영광, 영화이다.

그것을 바라보고 즐거워하는 사람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들이다.

세상 다른 것들을 바라보고 즐거워하지 말고, 이 영광을 소망하며 즐거워해야 한다.

 

그렇지만 그것을 이루어가는 하나님의 과정에서 우리의 거룩함을 이루어야 한다.

하나님은 환난과 고난을 통해 이 일을 이루신다.

믿는 자들에게 고난이 많은 것은 그 때문이다.

악인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무너질 것이고 그에 따른 형벌이 따를 것이다.

고난 중에도 즐거워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 고난이 우리의 인내를 이루고, 인내를 통해 연단을 이루기 때문이다.

 

고난을 통해 연단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 고난은 의미없는 고난이다. 세월만 까먹은 고난이다.

광야 40년을 살았어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연단을 이루지 못해 멸망하고 말았다.

 

연단을 통해 우리의 옛사람의 성품과 삶, 탐욕과 죄악들을 씻어내고 털어내야 한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삶을 닮아가야 한다.

그분의 형상을 닮게 하기 위해 우리를 미리 정하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예수 믿고 복 받는 것이 먼저가 아니고

예수 믿고 변화되고 성숙해지는 것이 먼저이다.

고난의 인내와 연단을 통해 이 거룩함을 이룬 자에게 가나안의 축복을 주신다.

 

악인의 형통은 이 거룩이 밑받침이 되지 않기 때문에 무너지고 마는 것이다.

거룩 후에 주시는 형통은 무너지지 않고 자손만대로, 영원으로 이어진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우리는 지금 인내하며 연단을 이룰 때이다.

어제보다 오늘, 우리의 성품과 삶이 주님과 같이 더욱 변화되고 성숙해져야 한다.

 

그럴려면 하나님의 주신 은혜의 방편을 잘 활용하고 수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은혜의 방편들을 통해 역사하신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사랑하고 마음에 새겨야 한다.

순수한 성령의 인도를 좇아야 한다. 우리의 탐욕과 성급함 때문에 성령을 근심케 말아야 한다.

 

예배를 사랑하고 예배를 통해 주시는 은혜와 기름부음과 정결케 하심을 받아야 한다.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한다.

 

죄가 우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고 사욕을 좇지 말아야 한다.

내 몸을 쳐서 복종시켜야 한다.

우리 몸과 마음에 남아 있는 옛사람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버려야 한다.

우리 지체를 하나님께 의의 무기로 드리며 거룩함에 이르러야 한다.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힘입어

날마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며 우리의 최선을 다해야 한다.

어떤 고난에도 환경에도 흔들리지 말고 요동하지 않으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해야 한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자들은 자기를 깨끗케 한다고 하셨다.

‘왜 안 이루어 주느냐’, ‘왜 안 풀어 주시냐’, 하지 마시고,

‘왜 이렇게 어려운 일을 겪게 하시냐’, ‘이게 꼴이냐 뭐냐’ 하지 마시고,

한나처럼, 다윗처럼, 요셉처럼, 웃을 날이 올 것을 아시고

부자 몸조심하며 의연함을 잃지 마시기 바란다.

 

거룩함이 우리의 삶의 동기와 목적이 되어 변화와 성숙을 이루어갈 때

때가 이르면 하나님은 반드시 축복하시고 영광을 주실 것이다.

세상은 버린 돌이지만, 하나님은 모퉁이의 머리 돌로 쓰실 날이 온다.

그 때가 되면 홍해가 갈라지고 요단이 갈라지고 여리고성이 무너질 것이다.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며,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철마다 열매를 맺을 것이다.

인생은 역전될 것이고, 우리의 잔은 넘칠 것이고, 원수들 앞에서 잔치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다윗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 때에는 되는 것이 하나도 없었는데,

때가 되니까 하는 전쟁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셔서 이기게 하시고 형통케 하시는 날이 도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