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강대식목사

연단의 불 시험 (벧전 4:12-19)

새벽지기1 2017. 6. 8. 07:10


“예수 믿으면 복 받아요” 하는 말은 한편 옳으면서도 한편 잘못된 것이다.

거쳐야 하는 어려운 과정을 생략하고 결과만 가지고 말하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사기성이 농후한 말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끝과 결론만 말씀하셔도 그 끝을 책임지시니까 괜찮지만

사람은 책임도 못지면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만 얘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가나안 기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이요, 우리의 소망이고 우리의 특권이다.

 

성경은 끝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고 과정도 또한 분명히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사람이 급한 목적에서- 그 또한 정욕의 산물이다- 복으로 사람을 꼬시고 책임도 못진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 그림으로 보여주셨음에도 우리는 구원의 여정을 안 받아들일려고 한다.

구원의 여정은, 애굽에서 나오고, 광야를 거쳐, 가나안으로 가는 것이다.

 

말씀을 자기 좋은 쪽으로만 받아들이고 자기 좋아하는 말씀만 받아들이고 착각들을 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 죄를 가지고는 다가설 수 없고 그분에게서 복을 기대할 수 없다.

광야에서의 훈련과 연단은 죄와 정욕을 처리하고, 거룩함으로 채우기 위함이다.

 

애굽에서 구출하였지만 몸과 마음에는 애굽이 그대로 남아 있다.

속에 탐욕과 악독으로 남아 있는 애굽성 죄악을 털어내고 하나님과 법도로 채워야

가나안에 입성하여 그 복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대부분이 광야에서 그 고난 중에 불순종하다가 멸망하였고,

가나안에 들어간 2세들은 가나안에서의 불순종으로 인하여 암흑의 사사시대를 살았다.

하나님께서 포로생활을 시켰는데도 돌아와서는 여전히 불순종한 결과 온 세상에 흩어버리셨다.

 

우리가 익히 아는 얘기인데도 우리는 세상사에 팔려서 세상의 가치관에 젖어 잊어버린다.

우리가 가야 할 구원의 여정을 깨우쳐주시고 바로잡아 주시는 것이 고난이다.

때로는 우리는 연단하시기 위해 불시험도 허락하신다.

 

결국 제 잘못으로 인하여 불시험이 왔는데 기겁을 하고 교회로부터 멀어지는 사람들을 보았다.

자기 죄와 허물로 인하여 불시험이 왔으면 회개하면 된다. 도망가고 원망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오는 불시험이 있다.

이 불시험은 믿음과 인내로 극복해야 하고 이를 통하여 우리의 거룩함과 복을 이루게 된다.

 

거룩함이 없이는 복과 영광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마음에 새기고 살아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선한 뜻이다.

우리의 성품과 삶에 어느 정도 이루면 하나님은 가나안의 기업을 허락하신다.

 

그것도 영원한 것으로 착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영원한 천국에서 누릴 것을 맛배기로 보여 주시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 온전함을 이룰 수 없을 뿐 아니라 이 땅에서 영원한 기업도 없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우리를 보시고 하나님은 긍휼히 여기셔서 복을 주신다.

그 최선도 보면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삼위 하나님이 은혜와 긍휼 가운데서 우리를 도우시고 인도하시니까 이루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구원도, 복도, 자랑할 것이 못 된다.

우리는 나아져 갈수록 그분 앞에 겸손해야 하고

할 일을 다하고서도 무익한 종임을 고백해야 한다.

다윗과 같은 사람도 넘어지게 마련이다.

 

그것을 보며 거울과 경계를 삼아야지, 자기 의도적인 죄를 합리화하는 데 써먹어서는 안된다.

존 베리지라는 청교도의 거성은 이렇게 말하였다.

“마음이 더욱 깨끗이 씻겨질수록 우리는 더욱 그 남아 있는 더러움에 민감해지게 된다.

우리가 낡은 외투의 여기저기에 묻어 있는 수백 개의 더러움보다

새 외투에 묻어 있는 단 하나의 더러움은 봐주지 못하듯 말이다.

인간이 더 악해지면 악해질수록

그들은 스스로의 부끄러움과 수치에 대해 더욱 둔감해진다.

그리고 사람이 거룩해지면 거룩해질수록

스스로를 더욱 혐오하게 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에서 말씀한다.

벧전4:12-13)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사도가 사랑하는 성도들에게도 연단하려고 불 시험이 온다는 것이다.

불은 태워버리는 것이다.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는 고난이 온다는 것이다.

딤후 3:10-12)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고난과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오늘날 복과 은혜만 가르치는 편중된 복음이 판치고 있어서

고난의 진리는 발붙이가 어렵게 되었다.

 

고난은 부정적인 것이니 긍정만 말하고 살자고 하지요.

누가 고난을 말하면 징그러운 벌레라도 만진 것처럼 고상한 이들은 질겁을 한다.

지금 부동산에 특권에 잘 나가고 있는데, 부정타게 스리 하는 거지요.

 

고난 받는 사람은 뭔가 모자란 것 같고, 믿음이 없는 것 같고, 당해도 싸다는 식이다.

아주 불쌍히 여기고 천하게 여기고 같이 놀 상대가 못된다는 식이다.

아파트 60평은 60평끼리, 외제차는 외제차끼리, 특권층은 특권층끼리 어울려야지요.

 

교회 안에서도, 교회끼리도, 알게 모르게 차별이 있고, 세상을 옮겨 놓은 판박이가 되어 간다.

야고보 사도가 말씀한다.

(약4:13-17)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어떤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머물며 장사하여 이익을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냐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할 것이거늘

이제도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하니 그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

그러므로 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하지 아니하면 죄니라

 

5장에 이어진다.

(약5:1-5) 들으라 부한 자들아 너희에게 임할 고생으로 말미암아 울고 통곡하라

너희 재물은 썩었고 너희 옷은 좀먹었으며 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이 녹이 너희에게 증거가 되며 불 같이 너희 살을 먹으리라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너희가 땅에서 사치하고 방종하여 살륙의 날에 너희 마음을 살찌게 하였도다

 

여러분, 있는 바를 족하게 여기고, 돈을 사랑하거나 부자가 될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그것이 성경의 말씀이다.

보물은 이 땅에 쌓을 것이 못되고, 하늘에 쌓아 두라고 하신다.

 

우리 인생의 목적이 부와 권력을 쥐는 것에 있지 않기를 바란다.

(벧전2:11) 사랑하는 자들아 거류민과 나그네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육체의 정욕이 죄악의 뿌리이다. 그 욕심과 악독이 사망을 가져 온다.

우리는 언제 이 땅을 하직해야 할지 모른다.

거류민과 나그네인 것을 명심해야 한다.

 

잠시 거하다가 나그네처럼 떠나가야 한다.

영원한 세상이 기다리고 있다.

믿는 자는 낙원으로 가서, 영생을, 믿지 않는 자는 지옥으로 가서, 영벌을, 살아야 한다.

 

우리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우리 육체의 정욕을 다스려야 한다.

거듭난 영혼으로, 성령을 힘입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정욕과 죄와 싸워 이겨야 한다.

롬8: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다시는 사람의 정욕을 따라 살지 않고 육체의 남은 때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 우리 주님이 고난을 받으시고 죄를 그치게 하셨다.

벧전4:1-3) 그리스도께서 이미 육체의 고난을 받으셨으니

너희도 같은 마음으로 갑옷을 삼으라

이는 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그 후로는 다시 사람의 정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육체의 남은 때를 살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향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따라 행한 것은 지나간 때로 족하도다

 

이러한 죄악으로 인하여서 오는 고난은 회개하여야 한다.

벧전4:15) 너희 중에 누구든지 살인이나 도둑질이나 악행이나 남의 일을 간섭하는 자로

고난을 받지 말려니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악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고난을 다 받으셨다.

그러나 그분의 몸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남겨 놓은 고난이 있다.

그 고난이 바로 우리의 몫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선한 뜻으로 오는 연단의 불시험은 이상히 여기지 말라고 하신다.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벧전4:14,16)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로다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너희 위에 계심이라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치욕을 당하면 복 있는 자라고 하신다.

고난 받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내버려 두시지 않고,

그 위에 영광의 영 곧 하나님의 영으로 함께 하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에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하신다.

연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겪으면서 그럴 수 있기를 바란다.

 

십자가 없는 부활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에게 고난 없는 영광은 없다.

요즘 나도는 형통의 복음, 믿음 신학, 신비주의의 감언이설에 미혹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이 쓰신 아브라함, 욥, 모세, 요셉, 다윗을 보면서 위로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고난의 시절에 영광의 영이 그들 위에 있었고, 그 영광은 현실이 되었다.

그리고 그 영광은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히 빛나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남은 생애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묵상하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시기 바란다.

 

이 불같은 고난의 연단을 통해서 우리는 거룩함을 입고 성숙해지고 주의 뜻을 이루게 된다.

하나님 나라는 고난을 통해서 세워가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인간의 바벨탑은 형통과 술수를 통해서 세워가는 것이 세상의 방식이다.

 

고난의 불시험을 당한 만큼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의 말씀이다.

눅6:20-26) 너희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지금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지금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

그 날에 기뻐하고 뛰놀라 하늘에서 너희 상이 큼이라

그들의 조상들이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지금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며 울리로다

모든 사람이 너희를 칭찬하면 화가 있도다

그들의 조상들이 거짓 선지자들에게 이와 같이 하였느니라

 

심판은 하나님의 집에서 먼저 한다고 하신다.

벧전4:17-18)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

 

'하나님의 집'은 교회이다.

심판이 성전에서부터 시작한다는 사상은 구약에서도 나타난다(사 10:12, 겔 9:6).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먼저 한다는 것은, 고난의 심판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먼저 있고,

비그리스도인들은 나중에 견딜 수 없는 환난의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을 말한다.

 

악인들의 형통을 보며 어찌 저럴 수 있느냐고 탄식하는 사람들은 먼저와 나중을 몰라서 그런다.

고난 중에 울던 사람들은 웃는 일만 남아 있고,

형통 중에 웃던 사람들은 우는 일만 남은 것이 심판이다.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는 이미 환난의 심판이 시작되어 진행 중임을 말하기도 한다.

'순종치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이 어떠하며'는 그리스도인도 심판을 받는데,

복음의 반역자들이 얼마나 심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인가로 강조하는 말이다.

의인도 그 고난을 통과하여 구원을 받는데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들은

어찌 그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는 강조이기도 하다.

 

우리가 받는 고난들은 하나님의 선한 뜻대로 받는 고난들이다.

이 고난 중에 우리는 선을 행하는 가운데에 우리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하라고 하신다.

우리는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렇지만 우리는 무한한 신뢰의 하나님, 미쁘신 하나님께 우리 영혼을 의탁하면서

믿음과 인내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한다.

특히 신약에서는 유일하게 '창조(조물)주'란 칭호가 여기에서 쓰인 이유는

피조물들을 보호하시는 능력과 사랑의 하나님을 강조한 것이다. .

 

고난이 왔다고 해서, 감당하기가 너무 힘들다고 해서, 자포자기 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이 미쁘신 하나님의 선한 뜻을 신뢰하면서 직임과 의무를 다해야 한다.

갈6:9) 선을 행하다가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것이 바로 믿음으로 사는 의인의 자세이고, 소망을 하나님께 둔 자녀들의 견고한 자세이다.

고전15:5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

하나님은 고난 받는 우리를 향하여 분명히 “하나님의 뜻대로 고난을 받는 자들”이라고 하셨다.

선을 행하는 가운데 그 영혼을 미쁘신 창조주께 의탁할 때 하나님은 책임지신다는 것이다.

고난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오, 그 고난을 해결하시는 분도 하나님임을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모든 약속을 신실히 이행하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히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들의 각자 처한 환경들이, 받고 있는 고난들이, 끝이 아니다.

그러니 어떤 환경에서도, 어떤 위기 가운데서도, 절망하거나 좌절할 필요가 없다.

환난 가운데 낙심하면 힘이 미약함을, 믿음이 연약함을, 드러낼 뿐이다.

 

나중에 하나님이 머리를 들게 해주실 때 부끄럽고 민망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래의 하나님의 약속과 보장들을 미리 바라보고, 그 눈을 통해서 오늘을 보아야 한다.

우리는 가나안으로 가는 도상에 있으며, 영광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기 위해,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의 잠시 받는 고난의 경한 것이 우리의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받게 하신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여 왕권을 얻을 것을 기억하라.

요셉도 연단하는 불시험을 겪은 후에 총리가 된 것을 기억하라.

 

모세도 광야의 연단 생활이 자그만치 40년인 것을 기억하라.

그러면, 우리의 현재 고난이 어떠하든 그것은 믿음으로 인내로 극복할 수 있다.

머지 않아 영광의 그 날이 올 것이고, 머지 않아 머리를 들게 하시는 날이 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