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일은 추수감사절로 교회가 지킨다.
우리 교회는 3명절을 지키는 것으로 하고 있다.
성탄절, 부활절, 추수감사절이다.
우리는 농사를 짓지 않으니까 추수를 감사할 것은 없다.
그렇지만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영국에서 미국으로 건너간 청교도들이 첫 농사의 수확에 대해
감사예배 드린 것에서 시작되어 계속 그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자본주의 산업시대이다.
그래서 농사의 수확이 아니라 한해의 소득, 하나님이 한해 동안 베풀어주신 은혜에 대해
감사하는 예배로 추수감사절을 지키는 것이다.
성경적인 근거는 구약시대의 초막절이다.
오순절도 첫 수확을 기념하는 절기였지만,
모든 수확물을 저장하고서 지킨 것이 초막절이다. 오늘 본문이다.
(레 23:34-36)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라 일곱째 달 열닷샛날은 초막절이니
여호와를 위하여 이레 동안 지킬 것이라
첫 날에는 성회로 모일지니 너희는 아무 노동도 하지 말지며
이레 동안에 너희는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 것이요
여덟째 날에도 너희는 성회로 모여서 여호와께 화제를 드릴지니
이는 거룩한 대회라 너희는 어떤 노동도 하지 말지니라'
초막절의 특징은 나를 위해 지킨 것이 아니라, 여호와를 위하여 지킨다는 것,
하루만이 아니라, 이레 동안 지킨다는 것,
첫 날에도 성회로, 여덟째 날에도 성회로 모인다는 것,
화제(예배)를 드리고, 거룩한 대회로 지킨다는 것이다.
다음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면 오늘 예배부터 초막절 성회로 지키는 것이 맞다.
더 자세한 설명이 39절부터 이어진다.
(레 23:39-43) '너희가 토지 소산 거두기를 마치거든 일곱째 달 열닷샛날부터 이레 동안
여호와의 절기를 지키되 첫 날에도 안식하고 여덟째 날에도 안식할 것이요
첫 날에는 너희가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이레 동안 즐거워할 것이라
너희는 매년 이레 동안 여호와께 이 절기를 지킬지니 너희 대대의 영원한 규례라
너희는 일곱째 달에 이를 지킬지니라
너희는 이레 동안 초막에 거주하되 이스라엘에서 난 자는 다 초막에 거주할지니
이는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너희 대대로 알게 함이니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초막절의 또 하나의 특징은 이레 동안 초막에서 거주하라는 것이다.
아름다운 나무 실과와 종려나무 가지와 무성한 나무 가지와 시내 버들을 취하여
이레 동안 즐거워하는 데 그것으로 초막을 지어서 그 안에 거주하는 것이다.
좋은 집, 정든 집, 편리한 집 다 버리고 초막에서 초막절 명절을 지키는 것이다.
“이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게 한 줄을
대대로 알게 하기 위해서”라고 하나님이 말씀하신다.
초막절은 추수감사절이면서 동시에 애굽 땅 종되었던 집에서 구원해 주신 것을
기념하고 감사는 절기인 것이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때에 초막에 거주하였던 것을
왜 기념하며 추수를 감사하는 명절에 초막생활을 재연하라고 하시는 걸까요?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수면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리기 때문이다.
지금 가나안 땅에서 수확을 거두어 명절을 지킬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광야에서의 초막생활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추수로 수확하는 때에 이전에 하나님이 인도하신 광야 초막시절을 기억해야 한다.
광야 초막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수확의 명절이 있는 것이다.
광야 초막시절의 하나님의 역사가 있었기에 오늘 추수를 감사하는 하나님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또한 광야에서 초막생활은 하나님이 애굽에서 인도해 내신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추수감사절을 지키며 무엇보다 우리를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신 것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도 광야에서의 초막생활 시절을 기억하면서 우리는 오늘의 수확을 감사해야 한다.
우리가 한해 동안의 소득과 복주신 것을 감사할 수 있는 것도 이 구원이 있기 때문이다.
유월절 명절도 “네 평생에 항상 네가 애굽 땅에서 나온 날을 기억할 것이니라”(신16:3)고
하신다. 유월절도 초막절도, 애굽 땅에서 구원해 낸 것을 잊지 말라고 하신다.
명절일수록 우리를 구원해 주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고 감사해야 한다.
우리의 구원은 흑암의 권세에서 아들의 나라로 옮긴 것이다.
어둠에서 빛으로, 어둠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한 것이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옮긴 것이 구원이다.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으로 옮긴 것이다.
죄와 허물로 죽었던 자를 믿음으로 은혜로 살린 것이 구원이다.
죄가 사망안에서 왕노릇하던 신분에서 은혜가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는 신분으로 바뀐 것이다.
이 구원을 위해서 성자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잉태하여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미리 약속하신 것이었다.
우리의 구원이 우연히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구약 4천년 동안 약속하신 것이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것이다(갈4:4).
성자 하나님이 사람으로 오신 것은 인간이 고안해 낼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의 경륜이시다.
그분이 오셨기에 우리의 구원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탄절을 귀한 명절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분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친히 인간의 고통과 슬픔을 맛보시고
마지막으로 죽음을 맛보며 희생제물로 그분의 몸을 십자가에서 드리셨다.
그것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신 대속적 형벌적 제물이 되신 것이다.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시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해서 그분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다.
그래서 부활절을 귀한 명절로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분의 탄생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이 있게 된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역사로 믿음을 주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자녀로 삼아주셨다.
그래서 오늘의 나가 있게 된 것이고, 한해 동안의 나가 있게 된 것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여 무엇보다 우리의 구원에 대한 감사와 감격이 있어야 한다.
애굽땅 종되었던 집에서 구원받은 것을 감사하여 초막에 이레 동안 거하는 감사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심령을 광야로 옮겨 초막을 짓고 거하는 한 주일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히브리서는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2:1)라고 한다.
에베소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엡 2:1-8) '그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는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이 없었으면
우리의 구원이 있을 수 없기에 바울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다”고 하는 것이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하는 것이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오늘 우리에게도 사도 바울과 같은 고백과 작정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진 구원에 대한 감사가 먼저 있어야
오늘 이루어 가고 있는 구원에 대하여 실감나는 감사를 할 수 있다.
우리를 죄와 허물에서 살리시고 구원하셔서 자녀 삼으신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만드시고 통치하시고 인도하고 계신다.
우리는 하나님이 살아계시셔 역사하시고 상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은 부활하셔서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고,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아,
지금 우리의 모든 형편과 세상을 통치하시고, 우리를 위해 간구하고 계신다.
또한 우리 주님은 가셔서 성령을 보내시고, 그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심을 우리는 성경의 계시를 통하여 믿어야 한다.
천년왕국은 이미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그리스도가 문자 그대로 계신다고 하면서 성령을 부인하고
내재신론의 우주적 그리스도를 주장하는 뉴에이지적 신비주의를 경계해야 한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을 근심케 하면, 우리는 우리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를 근심케 하는 것이다.
성령은 성령 하나님이시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의 영이시기도 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우리 모든 구원의 보증이시고 확증이시고 보장으로 우리 안에 계신다.
삼위 하나님은 일체가 되어 우리를 만드시고 인도하시고 이루어가고 계신다.
아들을 안음 같이 안아서,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셔서, 가나안에 이르게 하신다.
그 과정에서, 하나님이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모습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시는 것이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고난과 형통을 섞어서, 어둠과 빛을 섞어서,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는 방법으로 만들어 가신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그로 인하여 율례를 배우게 되었노라’는 고백도 나오게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 만들어 가시는 과정과 방법은 구약의 대표적인 인물들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뭐, 잘 맞지도 않는 예언 받느라고 예언자들 앞에 쪼그리고 줄서서 기다릴 것 없다.
우리도 옛날에는 모르고 해보았지만 다 지지리 궁상들이다.
바울이 말씀한다.
(롬 15: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여러분이 지금은 고난과 슬픔 중에 있는가?
구약 또는 신약의 인물 중에 나와 비슷한 과정에 있는 사람을 택하여 대입하여 보면 된다.
내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지 대충 알 수 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 구약과 신약을 가리킨다.
우리 교훈을 위하여 기록한 것이다.
우리를 위해서 기록한 것이니까 거기서 교훈을 받아야 한다.
다른 데서 받아 봐야 다 흰소리이고 자기도 모르고 하는 소리일 뿐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예언이면 말씀을 통해 사람을 통해 하나님이 어떻게든 알게 하신다.
하나님이 모르게 하신 것을 알려고 하니까 예수 무당들, 거짓선지자들한테 사기 당하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성경에 기록된 것을 보면서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교훈도, 위로도, 인내도, 소망도,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 받으라고 하신다.
아브라함을 보고, 모세를 보고, 욥을 보고, 요셉을 보고, 다윗을 보고, 선지자와 사도들을 보고,
교훈을 받고 위로도 받고, 인내와 소망을 가지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반석이시고 방패시고 구원의 뿔이시다.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오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내가 힘들고 피곤하고 흔들릴 때마다 이 말씀을 외어서 읖즈리시기 바란다.
찬송은 406장(통일 464장)이 좋다. 가사를 생각하면서 음미하고 외워서 부르시기 바란다.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풍랑 일어도, 안전한 포구, 폭풍까지도 다스리시는,
세상 친구들 나를 버려도, 예수 늘 함께 동행함으로, 주의 은혜가 충만하리니,
나의 믿음이 연약해져도, 미리 예비한 힘을 주시며, 위태할 때도 안보하시는,
능치 못할 것 주께 없으니, 나의 일생을 주께 맡기면, 나의 모든 짐 대신 지시는,
주의 영원한 팔 의지해. 주의 영원하신 팔, 함께 하사, 항상 나를 붙드시니,
어느 곳에 가든지 요동하지 않음은, 주의 팔을 의지함이라.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서 교훈과 위로를 받고, 인내와 소망을 가지시기 바란다.
누가 뭐래도 우리는 가나안을 향해 가고 있는 도상에 초막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도 함께 하시며 위로와 힘을 주시며 붙들어주시는 구원에 감사하시기 바란다.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하신다. 그것이 오늘을 사는 지혜이다.
오늘 초막생활 속에서 이루어가고 만들어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의 손길을 보아야 한다.
그 손길을 보는 방법이 기도와 말씀이다. 이것을 게을리 하면 그 손길을 볼 수가 없다.
우리는 현재 도살 당할 양같은 처지에 있을 수도 있다.
종일 예수의 생명을 위해 죽임에 넘기우는 고난에 처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이 끊어져서 오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현재의 고난의 의미를 다 알 수 없지만 주님은 아시고
우리에게 현재 꼭 필요한 것으로, 꼭 겪어야 할 것으로, 주시고 만들어가고 계신다.
그 고난이,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어떤 것도 주님의 사랑의 손길 밖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님을 믿어야 한다.
우리의 현재 모든 일, 안에, 위에, 주님이 계시고, 통일하여 한 목적으로 가고 있다.
엡 4:6)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골 3:11)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오늘 우리의 처지가 세상 보기에는 처량하고 한심해 보일지는 모르겠으나
우리의 교훈과 위로와 인내와 소망을 위해 전에 기록한 바를 보면
우리의 현재의 과정과 미래의 도달점을 알 수가 있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오늘 범사에 감사하는 법을 다시 배우시기 바란다.
역시 바울에게서 배울 필요가 있다. 빌립보서이다.
빌 4:6)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먼저 감사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서,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빌 4:11-13)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그러나, 그러다가도,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이렇게 되어야 한다. 이러한 믿음의 자세를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
이제 우리는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면서 우리의 미래의 구원에 대해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미래는 보장되어 있다. 우리가 정말로 거듭났다면 말이다.
(아닌 사람은 거듭나는 일부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구하면 된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롬 5:2)
이 하나님이 영광이 바로 우리의 영화를 말한다고 로이드 존스 목사는 해석한다.
우리를 “부르시고 의롭다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신다.
우리는 부활하신 주님과 같은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화하여 영화롭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이룰 것이다'(고후4:17).
'주의 영광을 보며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후3:18).
(고전 16: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의의 면류관을 쓰고 주님과 아버지 하나님과 더불어 영원히 천국에서
영광, 영광, 영화롭게 살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미래의 구원이다.)
우리에게 이미 이루어진 구원, 현재 이루어가고 있는 구원, 앞으로 우리에게 이루어질 구원,
이 모든 구원을 하나님께 감사하며 성회로 모이는 것이 추수감사절 예배이다.
한 주일 동안 이 구원을 묵상하면서 다음 주일 성회로 모여 하나님께 거룩한 대회로 드리자.
감사하는 예물을 준비하셔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명절이 되기를 바란다.
(신16:16-17) '너의 가운데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번 곧 무교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여호와를 뵈옵되 빈손으로 여호와를 뵈옵지 말고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드릴지니라 '
예물 드릴 때는 항상 바울의 말씀을 기억하면서 드리시기 바란다.
(고후 9:6-8) 이것이 곧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도.
초막절을 추수감사절로 지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또한 초막절이 애굽 땅 종 되었던 곳에서 인도해 내신 구원의 감사인 것을 알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우리도 초막시절이 있었기에 오늘의 추수감사절이 있음을 감사합니다.
이미 이루어진 구원, 현재 진행되고 있는 구원, 앞으로 이루어질 구원을 바라보고
소망을 갖고 감사하는 우리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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