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말씀/-목회단상

예수님을 믿는 것과 이용하는 것의 차이

새벽지기1 2017. 5. 28. 08:20


지난 주일 설교에서 그리스도인 중에 예수님을 믿는 자가 있고,

예수님을 믿을 뿐 아니라 지혜롭게 이용하는 자들이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둘은 비슷한 듯 다르다고 말했다.

그것도 조금 다른 게 아니라 하늘과 땅처럼 다르다고 말했다.

 

그런데 정말 그럴까?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기독교 복음이거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결국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 아닐까?

예수님을 이용하지 않는 믿음이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 것 아닐까?

‘나는 예수님을 믿기만 할 뿐 이용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 아닐까?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 얻는 것이 기독교 복음의 중심인 이상

기독교는 예수님을 이용하는 종교라는 혐의를 벗지 못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속 깊은 진실을 보지 못한 피상적 이해에 불과하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건강을 얻고, 부자가 되고, 능력을 얻고, 성공을 거머쥐고,

대형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 복음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이 언뜻 살아있는 믿음 같아 보이지만

그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름을 도깨비 방망이처럼 휘두르는 것이 믿음이 좋은 것이고,

예수님과의 관계 또한 깊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결코 그렇지 않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믿음은 같은 믿음이 아니다.

삶의 양태와 믿음의 열매를 보면 안다.

 

먼저 삶의 양태를 보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예수님을 사랑한다. 날마다 예수님과의 로맨스를 즐긴다.

삶이 잔잔하고 평화롭다. 물 흐르듯 고요하다.

물 흐르듯 고요하되 시류에 편승하지 않는다.

그저 무소의 뿔처럼 세상을 가로질러 간다.

하나님의 영광을 낮은데서 발견한다.

반면에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는 예수님에게서 떨어지는 떡고물을 사랑한다.

예수님과의 로맨스가 없다. 삶이 아니라 생활에 집중한다.

시류에 편승한다. 항상 부산하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은데서 찾는다.

 

믿음의 열매를 보자.

예수님을 믿는 자는 성령의 열매를 맺는다.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 안식, 자유 등등

하나님나라에 속한 것들에 참여하는 복을 누린다.

진리와 자유가 어우러진 하나님나라의 삶을 살게 된다.

반면에 예수님을 이용하는 자는 육체의 열매를 맺는다.

건강, 부, 권력, 성공, 장수, 안락, 명성, 대형교회 등등 세상에 속한 것들을 쟁취한다.

성공과 부라는 복은 받을 수 있으나 진리와 자유가 어우러진 삶을 살 수는 없다.

 

이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과 예수님을 믿음으로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역사 속 기독교는 예수님을 이용한다는 혐의를 받기에 충분한 길을 걸어왔다.

‘예수님을 믿으면 천국에 간다’고 외장치는 전도에서부터 예배와 기도까지

온통 예수님을 이용하는 믿음으로 도배해왔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건강을 얻고, 부자가 되고, 능력을 얻고, 성공을 거머쥐고,

대형교회를 세우고, 하나님나라 복음사업을 확장시키는 것을 좋은 믿음이라고 치켜세웠고,

그런 믿음의 용사들이 교회를 지배해왔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