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1.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네 발로 일어서라 내가 네게 말하리라 하시며
2.그가 내게 말씀하실 때에 그 영이 내게 임하사 나를 일으켜 내 발로 세우시기로 내가 그 말씀하시는 자의 소리를 들으니
3.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그들과 그 조상들이 내게 범죄하여 오늘까지 이르렀나니
4.이 자손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굳은 자니라 내가 너를 그들에게 보내노니 너는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5.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 가운데에 선지자가 있음을 알지니라
6.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7.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서론
사랑하는 형제 자매 여러분!
5월이 무슨 달이지요?
가정의 달 맞습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전도 집중의 달>입니다.
지난 주 장선교사께서 전도 훈련을 하면서
<전도 소책자 충분히 숙지하는 것과 두명 이상에게 읽어 주는> 숙제를 냈습니다.
여러분! 모두 숙제를 했겠지요?
다음은 어제 단톡방에 올라온 글입니다.
<방금 쌍둥이 누나랑 형이랑 아빠한테 읽어드렸어요!
누나가 요즘 신앙에 대해 반항심이 컸는데
제가 찬송가 틀어놓고 한번만 들어달라고 비니까 들어줬습니다!?ㅋㅋㅋㅋ
그리고 옆에 있던 형한테도 바로 하려고 하는데
형이 강력하게 거부해서 힘들겠다 했는데
옆에서 누나가 "아 오빠 한번만 들어줘라~~"하더니
형이랑 아빠까지 읽어줬습니다!!!
비록 할머니 병문안 가야하는 시간 때문에 1대1이 아니라
자동차에서 둘에게 큰소리로 읽어주는 방식으로 진행했지만
같이 신앙고백도 큰소리로 하고 그 분위기가 은혜롭고
주님이 진짜 함께하고 계셨어서 진짜 너무 좋았어요!!>
경훈형제의 글입니다.
순종하는 형제의 모습이 감동입니다.
에스겔은 BC597년 바벨론 포로 중에 이스라엘의 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선지자입니다.
에스겔이 하나님께 부름 받았을 때에도 큰 부담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에스겔에게 <사명 완수>를 촉구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내용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촉구한 말씀은
곧 오늘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 부름 받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본론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 세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첫째, 거룩한 부담감으로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인자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이 한 절에 ‘두려워 말라’는 단어가 가 무려 4번 반복되고 있습니다.
이 단어는 3장 9절에서도 두 번이나 반복해서 나옵니다.
“네 이마로 화석보다 굳은 금강석 같이 하였으니
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하시고”
에스겔이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포로 중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냄을 받았을 때
얼마나 두려워했는지를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이 두려움은 에스겔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이사야도 예레미야도 부름 받았을 때 그랬습니다.
이사야 41:10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예레미야 42: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는 너희가 두려워하는 바벨론의 왕을 겁내지 말라 내가 너희와 함께 있어 너희를 구원하며 그의 손에서 너희를 건지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12정탐꾼 중 한사람이었고, 일찍이 아말렉을 격멸했던 믿음의 용사 여호수아도
모세가 죽은 뒤 가나안 정복 명령을 받고 두려워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여호수아에게 ‘두려워 말라’ ‘담대하라’고 여러 번 강조하셨습니다.
수1:6절 강하고 담대하라 너는 내가 그들의 조상에게 맹세하여 그들에게 주리라 한 땅을 이 백성에게 차지하게 하리라
7.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9.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움’이 아닙니다.
‘두려움’은 사단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도가 부담된다고 합니다.
저도 마찬가지 부담이 됩니다.
하지만 거룩한 부담감이 없이 전도할 수 없습니다.
다음은 최근 쓴 제 칼럼 중 일부입니다.
<복음 전도! 아주 중요하다.
그리고 전도해야 할 이유는 명확하다.
하지만 그래도 전도는 부담이 된다.
학생들만 부담이 되는 것은 아니다.
솔직히 학생들에게 전도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실제 전도하도록 도전하는 일은 더욱 부담이 된다.
하지만 올해 나는 그 생각을 바꿨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마땅히>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을 때다.
내가 이렇게 열심히 전도에 매진했던 이유는
내가 캠퍼스 사역을 하는 본질적인 이유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전도에 대한 강한 도전을 준 사람은 사도 바울이다.
고린도전서 9:16 말씀이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사도 바울이 가졌던 전도에 대한 이 거룩한 부담감이 나에게도 있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본문 6절 말씀을 <인자 대신> 자신의 이름을 넣고 다시 읽겠습니다.
“민수야 너는 비록 가시와 찔레와 함께 있으며 전갈 가운데에 거주할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말을 두려워하지 말지어다
그들은 패역한 족속이라도 그 말을 두려워하지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지어다“ 아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염려’나 ‘두려움’이 아닙니다.
‘염려’와 ‘두려움’은 불신앙입니다.
두려움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1:7에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전도는 두려움이 아니라 기쁨이어야 합니다.
전도는 그냥 부담이 아니라 거룩한 부담이어야 합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으로 복음을 들고 캠퍼스를 누비는 D맨들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 세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둘째, 오직 예수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7절 하반 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아주 분명하고 심플한 명령을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말만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3장에서도 반복됩니다.
4절 그가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스라엘 족속(동족)에게 가서 내 말로 그들에게 고하라
17절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을 깨우치라고 하셨습니다.
따지고 보면 <전도>는 복잡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면 됩니다.
제 간증을 하겠습니다.
저는 77학번이니까 지금부터 꼭 40년 전인 대학 1학년 때 주님을 영접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복음을 들은 것은 그보다 2년 전인 고등학교 2학년 때입니다.
당시 어느 교회 젊은 전도사님을 만났는데 그 분이 내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거의 2시간 동안 정말 열심히 전했습니다.
제가 생각해도 참 똑똑하고 해박하신 분이셨습니다.
하지만 그 분은 나에게 ‘무엇을’과 ‘어떻게’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예수가 구원자다.’
‘예수를 인격적으로 영접해야 한다.’
정확한 이 한 방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년 후 대학에 들어갔습니다.
1977년 9월 12일 오후 1-2시경 벤치에 홀로 않자있는 제게 낮선 한 선배가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제가 10분만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기꺼이 10분을 할애 했습니다.
그 분은 제게 <이 전도 소책자>를 읽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제게 물었습니다.
“형제! 이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시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나도 모르게 ‘네’라는 말이 나왔고
나는 그날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영접했습니다. 할렐루야!
그 선배는 나를 설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신학적으로 기독교를 설명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단순하게 <복음 되신 예수 그리스도 만>전했을 뿐입니다.
나에게 복음을 전한 분은 기계과 2학년 선배였고
나를 양육한 분은 토목과 2학년 선배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내는 편지(고전3장)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이렇게 씨를 뿌린 사람과 물을 준 사람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래 전에 학생 때 저와 함께 캠퍼스 사역을 하다가
졸업 후 목회를 하는 선배 목사님 한 분을 만나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어느 날 교회 청년들고 캠퍼스 전도를 나갔답니다.
목사님도 전도를 했고 청년들도 전도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 전도를 마치고 모여 간증을 하는데 이제 갓 예수를 믿은 형제가
“오늘 제가 한 학생에게 전도 했는데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라고 기뻐하더라는 것이다.
그 날 목사를 포함한 청년부 중에서 그 초신자 형제가 전한 사람만 ‘영접’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목사가 전하면 예수님 영접하고 초신자가 전도하면 영접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복음의 원리입니다.
전도 훈련할 때마다 암기하도록 하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성공적인 전도 방법>입니다.
다시 한번 암송할까요?
-성공적인 전도는 성령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전에도 말했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부담스럽게 여기는 것 중 하나가
전도한 후 그 결과까지 책임감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성공적인 전도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더 잘 전하려는 욕심(?)>에
전도로 시작했다가 설득이나 설교로 이어집니다.
때로는 <논쟁>에 빠져 복음은 전하지 못하고 서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로 그런 문제를 없애게 위해 제작된 것이 바로 <전도 소책자-생명을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전도 소책자가 유용한 것은 성경지식이 없어도
목회자가 아니라도 누구나 복음의 핵심을 전할 수 있도록 한 <전도 도구>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꼭 기억 할 것은 “전도는 성령의 역사”라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전도하기 전에 반드시 성령의 인도하심을 기도해야 합니다.
전도란 성령 안에서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전하십시오.
그리고 그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영적 파수꾼으로 세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은 무엇인가요?
▶셋째,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전하라는 것입니다.
본문 7절 말씀을 다시 읽겠습니다.
“그들은 심히 패역한 자라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너는 내 말로 고할지어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은 패역한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은 얼마나 패역한 백성이었을까요?
겔3장 7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족속은 이마가 굳고 마음이 강퍅하여 네 말을 듣고자 아니하리니
이는 내 말을 듣고자 아니함이니라”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절한 백성이었습니다.
마음이 강퍅했던 백성이었습니다.
전도의 부담감이 생기는 이유 중 하나는 이렇게 복음을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자꾸 거절을 당하면 그 일이 두려운 법입니다.
에스겔도 그랬을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이처럼 패역한 백성, 듣지도 않는 백성에게 왜 그토록 애착을 가지셨을까요?
그것은 백성이 불쌍했기 때문입니다.
자식이 멸망하는 것을 볼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하나님 말씀 듣기를 거부하는 백성에게 에스겔을 보냅니다.
그리고 이렇게 격려하셨습니다.
겔3장 8-11절입니다.
“내가 그들의 얼굴을 대하도록 네 얼굴을 굳게 하였고 그들의 이마를 대하도록 네 이마를 굳게 하였으되...그들이 비록 패역한 족속이라도 두려워 말며 그 얼굴을 무서워 말라
(너는)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주 여호와의 말씀이 이러하시다 하라 하시더라.
하나님은 오늘도 복음 전도자를 이렇게 위로하시고 격려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전도의 주체는 성령>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에스겔이 보냄을 받은 대상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본문 3절입니다.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자손 곧 패역한 백성, 나를 배반하는 자에게 보내노라”
에스겔은 바벨론 포로 중에 있는 백성들을 위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당시 남유다에 보내진 선지자는 예레미야였고, 열방을 향한 선지자는 다니엘이었습니다.
그 이전에도 앗수르에 요나와 나훔선지자를 보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부르심은 각자 각자 사명이 다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다른 민족이 아닌 <내 조국, 내 캠퍼스, 내 이웃>에 보냄을 받은 영적 파수꾼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스겔과 우리는 동일한 시대적 사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캠퍼스에 보내진 제자들입니다.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것은 우리 소관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순종할 뿐입니다.
인삼은 언제 캐는 것이 좋은가요? 당연히 6년 근입니다.
그러면 산삼은 언제 캐는 것이 좋은가요? 보는 즉시 캐야 합니다.
이 예화 다 아는 이야기지요?
즉시 해야 할 것이 또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대한 순종입니다.
순종은 주님의 뜻을 깨닫고 기뻐하며 따르는 것입니다.
복종은 이해가 가지 않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셨으니 따르는 것입니다.
모두 순종함으로 복된 제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한국의 캠퍼스 수는 325개이며,
한국의 대학생 수는 300만 명입니다.
전국 대학생 중 기독학생은 약 35만 명이며,
이 중 선교단체에서 활동하는 학생은 약 5만 명입니다.
이 캠퍼스를 섬기는 선교단체는 약 20개입니다.
매년 신입생 수는 대략 50만 명입니다.
이 중 경기 지역 대학생 수는 약 17만 명이며
수원지역 대학생 수는 약 12만 명입니다.
에스겔을 이스라엘에 보내셨듯이
우리는 캠퍼스에 보내진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들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우리를 무조건 보내시지 않으셨습니다.
우리에게 주신 무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마10:1)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부어주셨던 이 권능을
오늘 우리에게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거룩한 부담감으로 복음 전도에 힘씁시다.
오직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만 전합시다.
비록 저들이 듣지 않을지라도 전합시다.
-(너는) 사로잡힌 네 민족에게로 가서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그들에게 고하라!-
복음 전도는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주님의 거룩한 명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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